게라사/ 아펙2-1,2,3/ 텔 하다르 (요르단 지구대의 갈릴래아 지역 3)

게라사는 데카폴리스의 한 도시 였습니다. 성경 속에서의 아펙은 같은 이름으로 여러 고을이 나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 지역의 고을 중 세 군데가 아펙으로 추정되는데요. 텔 하다르는 예수님께서 사 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장소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고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게라사, 아펙, 텔 하다르 지역 지도

(게라사, 아펙, 텔 하다르가 위치한 갈릴래아 호숫가 지역 지도)

글의 순서



1. 게라사인들의 지방 (Gerasa, [Γερασηνος])/ 가다라 (Gadara, [Γαδαρηνος])/ 쿠르시 (Kursi)

1) 게라사의 위치: 32º 39’ 15. 12” N 35” 40’ 38.60” E

게라사의 수도원 성당 유적

(게라사 유적의 수도원 성당 유적)

2) 게라사의 특징과 역사

갈릴레아 호수 북동쪽 골란 고원으로 올라 가는 길 입구에 가파른 벼랑에 현무암으로 지어진 성당 유적이 보입니다. 이곳은 예수님 당시 데카폴리스 중의 하나였던 가다라 또는 게라사 지방에서 약간 떨어진 장소였는데요. 오늘날 이 지역은 쿠르시(Koursi 또는 Kursi)로 불립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그 영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신 곳입니다(마태 8, 28-34; 마르 5, 1-20; 루카 8, 26-39). 세 공관복음이 이 기적을 언급하고 있는데, 마태오복음사가는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이 ‘가다라인들의 지방’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반면에 마르코 복음과 루카복음은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언급합니다.

쿠르시는 골란 고원에서 가장 긴 시내 중 하나인 사마흐(Samakh) 시내의 남쪽 유역 근처에 위치합니다. 시내는 상당한 양의 모새를 운반해 갈릴레아 호수로 수백 미터 돌출된 혀처럼 생긴 만을 만들어 줍니다. 이 만을 예전에는 ‘쿠르시의 머리(Kursi Head)’로 알려졌지요. 이 강어귀 지역에는 3km 정도인 좁고 비옥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강어귀는 낚시하기에 알맞은 곳으로 알려져 있고, 아랍어로 ‘물고기 강(Wadi Samak)’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어귀는 골란까지 가는 고대 경로였기에, 쿠르시가 중요한 거점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오리게네스는 ‘게르게사(Gergesenes), 즉, 순례나 싸움에서 온 사람들’이란 의미로 표현합니다.

성경의 버전에 따라 이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 약간씩 다르지만, 신약성경 복음서에 “게르가사, Gergasa; 그리스어로 Γεργεσα,/ 가다라/게라사의 나라”는 갈릴레아 호수 동쪽 해변의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을 이름은 호숫가에 있는 고을인 ‘게라사(Gerasa),’ 그다음으로 큰 도시인 ‘가다라(Gadara),’ 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시인 ‘게라사(Gerasa)’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게라사와 가다라는 갈릴레아 호수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셈족이라기보다 그리스인 시민들이 모여 사는 ‘이방인 도시’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인의 음식 정결례 법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돼지를 방목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유다인의 지역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쿠르시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데카폴리스 도시들 한 곳인 히포스(Hippos), 수시타(Sussita, 그리스어, 히브리어로 ‘말’ 머리 모양처럼 생긴 언덕이라 하여 말의 의미를 담은 이름)가 있지요. 이 도시 유적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그리스 문화 영양을 받아 건축된 도시 유적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맛, 게라사, 그리고 가다라, 이들 고대 도시 모두는 카이사리아 필리피의 바로 남쪽에 있는 그리스-로마 도시인 데카폴리스 지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비잔틴 시대 (324-613)

비잔틴 시대에 그리스도교 수도사들은 히포스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호숫가에 있는 장소를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장소로 기념했습니다. 이곳은 깎아지른 것처럼 언덕이 상당히 가파르게 호숫가로 이어지는 비탈입니다. 마태오의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라는 설명과 유일하게 잘 어울리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수도사들은 이곳의 비탈진 벼랑을 기초로 경당을 지었는데 동쪽에서 갈릴레아 호수를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평지 쪽에서는 큰 성당 유적과 그에 딸린 올리브 압착기와 기름틀, 우물터가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가까운 곳에 그리스-로마 목욕탕 등을 포함한 건물터가 발굴되었는데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사산 왕조에 의해 파괴되었고, 614년 페르시아가 점령한 후 일부가 재건되었지만 749년 큰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쿠르시에서 발굴된 유적의 유물과 잔해들은 골란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요.

3) 눈여겨볼 만한 유적들과 유물들



a. 비잔틴 수도원과 성당 폐허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도원과 성당은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수도원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돌담(145x123m)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큰 수도원 중의 하나입니다. 이 공동체 건물에는 수도사들과 인근 호숫가 유다인들의 정착촌과는 다르게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원 마당에는 공공건물, 주택, 농가건물, 농어업 시설물들과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등이 있었습니다.



코린토 양식으로 건축된 대성당 내부는 여섯 개의 주랑이 중아에 두 줄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석조 기둥과 대리석엔 십자가로 장식되었지요. 발굴을 통해 수도사나 신자들의 유물을 보관했던 작은 돌 궤짝이 제단이 있던 곳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당의 양쪽에 방이 있었고 제단은 단일 후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방의 문지방에는 585년 모리셔스 황제 시대에 모자이크 바닥이 완성되었다고 기록된 모자이크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작은 방은 아기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지요. 본당 측면에 있는 방들 중 한 곳 지하에서 30여 개의 남성 해골이 발견되었는데요. 이곳이 매장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b. 모자이크 바닥

성당 바닥, 특히 통로에서 화려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습니다. 수평아리, 거위, 비둘기, 가마우지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과 갖가지 식물을 아름답게 장식한 모자이크이지요. 동물의 형상이 많이 훼손이 되기는 했지만 식물들은 대부분 그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유자, 무화과, 석류, 그리고 과일나무와 포도송이들은 잘 식별이 되는 상태입니다. 모자이크 그림 중에서 한 쌍의 비둘기는 인상적이지요. 그리스도교에서 비둘기는 성령, 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순결,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을 상징합니다.

c. 성스러운 바위

1980년에 성당 동쪽 언덕 주변에서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바위 근처에서 작은 경당이 발견되었으며, 그 후진은 비탈의 동굴로 이어져 있었지요. 그리스도교 전통은 동굴과 예수님이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난 장소였을 것으로 봅니다.

d. 모래 운문

모래 상자에 놓인 큰 팽이가 있지요. 순례자들은 팽이를 돌려서 신약에 등장하는 마귀가 돼지 뗴 속으로 들어간 기적을 여러 언어로 새기며 졸 수 있습니다.

e. 목욕탕 유적

2011-2013년에 성당 북쪽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에서 비잔틴 시대의 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4) 성경 속의 게라사인들의 지방

  • 마태 8, 28: 예수님께서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 마르 5, 1-20: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 루카 8, 26-37: 그들은 갈릴래아 맞은쪽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저어 갔다. 예수님께서 뭍에 내리시자, 마귀 들린 어떤 남자가 고을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옷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집에 있지 않고 무덤에서 지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서 그분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 더러운 영이 그를 여러 번 사로잡아, 그가 쇠사슬과 족쇄로 묶인 채 감시를 받았지만, 그는 그 묶은 것을 끊고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군대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에게 많은 마귀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지하로 물러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청하였다. 마침 그 산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마귀들이 예수님께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그 일을 보고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나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들이 떨어져 나간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은 마귀 들렸던 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알려 주었다. 그러자 게라사인들의 지역 주민 전체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주십사고 요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셨다. 

2. 아람 영토의 아펙 2-1 (Aphek, [אפק ], 요새/ 텔 엔 게브(Tel Ein Gev)

1) 아펙 2-1의 위치: 32º 47’ 07. 04” N 35” 38’ 16. 86” E

아펙으로 추정되는 텔 엔 게브의 유적

(아펙으로 추정되는 텔 엔 게브 유적)

2) 아펙 2-1의 특징과 역사

아펙 2-1은 아람 왕 벤 하닷이 이스라엘과 전쟁할 때 대치했던 곳에 있는 아람의 성읍으로 패전한 아람 군대가 후퇴한 곳입니다.아람 군대가 퇴각할 때 성벽이 무너져 이만 칠천 명이 죽었고, 벤 하닷은 도망쳐 골방에 숨어 들었습니다(1열왕 20, 26-30). 

아펙 2-1은 엘리사 예언자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마지막 예언을 할 때 아펙 2-1에서 아람 군대를 무찌를 것이라고 예언한 곳이기도 합니다(2열왕 13, 17). 

고고학자 아하로니는 아펙2-1를 갈릴래아 바닷가에 있는 텔 엔 게브로 추정합니다. 이곳은 키부츠 엔 게브 안에 있는 유적인데요. 이곳은 키르벳 엘아스헤크(Kh. el-Asheq)로 불렸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선사, 후기 철기, 헬라 시대의 유물과 철기 시대의 공공 건물을 포함한 거주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텔 엔게브는 두 번에 걸쳐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61년, 1990-2005년에 네 개 또는 다섯 개의 주요한 지층이 발견되었습니다. 

지층 1에서는 로마, 비잔틴, 헬라, 페르시아 시대의 것이 혼합되어 나타났지요. 가장 오래된 지층은 고고학자 마자르가 발견한 지층 4와 지층 5입니다. 이곳에서는 공공 건물이 발굴되었고, 이 건물 한쪽은 부엌이 있었고, 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지층 3에서는 길이가 35m가 되는 벽이 텔의 북동쪽에서 발견되기도 했지요. 이곳에서는 7개의 방이 드러났고, 모든 바닥은 돌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둥 열주로 3개로 나뉜 공공 건물 3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각 건물마다 높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둘은 같은 시대의 건물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층 2에서는 이전 시대의 건물이 사용되지 않고 대신 두 개의 새로운 기둥의 건물들이 남쪽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이 건물은 이전 시대의 바닥과 건축물의 돌들을 사용해 다시 지은 것 같습니다. 새 건물은 이 텔의 북동쪽에서 발견되었고, 이전 것보다는 약간 좁게 건축되었지요. 이 건물의 바닥에 세워진 기둥 중 하나의 꼭지 부분이 지층 1의 가욱의 바닥 높이에 다다릅니다. 이 지층의 건물 바닥에서 나온 소수의 토기는 기원전 8세기의 것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지층 3에서는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세기)의 지층 유적이 발견되었지요. 이 시기에 팠던 몇 개의 구덩이들이 있지만 건축물 유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구덩이들은 기원전 10-9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층 4 또는 지층 3은 기원전 9세기에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므로 이 장소가 벤 하닷이 아합 군대로부터 도망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1열왕 20, 30). 

일본 게이오  대학 발견 층위마자르 발굴 층위일본 대학의 발굴 층위주요 유물주요 유적
지층 KI발견되지 않음지층 J3-J1구덩이 (페르시아 시대), 거주 건물과 망대?(헬라 시대), 석회 가마들 (로마 시대)
지층 KII 지층 1지층 M2-M1지층 J4기둥이 있는 건물들, 석회 바닥(뜰?)
지층 KIII지층 M3, 지층 M4-M2지층 J5기둥을 가진 건물들, 요새, 상자 모양, 벽돌아람어 비문
지층 KIV 지층 M5지층 M4발견되지 않음 부엌을 겸비한 큰 공공 건물, 옹벽인장

3) 성경 속의 아펙 2-1

  • 1열왕 20, 26-30: 해가 바뀌자, 벤 하닷은 아람군을 소집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아펙으로 올라갔다. 이스라엘 자손들도 소집되어 양식을 지급받고는 그들을 치려고 나아갔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람군 앞에 진을 쳤으나, 들판을 가득 메운 아람군에 비하면 마치 작은 두 염소 떼 같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임금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람군은 주님이 산악 지방의 신이고 평야의 신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저 대군을 모두 너의 손에 넘겨주리니,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양쪽 군대는 서로 마주 보고 이레 동안 진을 치고 있다가, 이레째 되는 날에 드디어 싸움에 들어갔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날 하루 만에 아람군의 보병 십만을 쳐 죽였다. 나머지 적군은 아펙 성읍으로 도망쳤는데, 마침 성벽이 나머지 이만 칠천 명 위로 무너져 내렸다. 벤 하닷도 도망쳐서 성안의 어느 골방으로 들어갔다. 
  • 2열왕 13, 15-17절 중 17절: 엘리사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활과 화살을 가져오십시오.” 임금이 활과 화살을 가져오니, 엘리사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활을 당기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이 활을 당기자 엘리사는 자기의 손을 임금의 손에 얹고, “동쪽 창문을 여십시오.” 하였다. 임금이 창문을 열자 엘리사가 “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이 활을 쏘니 엘리사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베푸실 승리의 화살입니다. 아람을 이기실 승리의 화살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아펙에서 아람을 쳐서 그들을 전멸시키실 것입니다.” 

3. 아펙 2-2 (텔 소렉, [Tel Soreq])

1) 아펙 2-2의 위치:  32º 46’ 15. 83” N 35” 40’ 33. 46” E

2) 아펙 2-2의 특징과 역사

엔 게브에서 아픽(Afik)으로 올라가는 계곡의 북쪽에 있는 초기, 중기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9-8세기 청동기 시대의 요새화된 곳이나 유적의 규모가 너무 작기에 아펙으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철기와 헬라 시대의 유물도 발견되었지요. 텔 소렉 가까이에 데카폴리스 중의 하나인 히포스(수시타, Hippos)가 위치해 있습니다. 

4. 아펙 2-3 (아픽, Afik/ 키부츠 아픽 (Afik)

1) 아펙 2-3의 위치:  32º 46’ 44. 59” N 35” 41’ 54. 34” E

2) 아펙 2-3의 특징과 역사

현대 마을 아픽은 아펙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 아펙의 추정지로 보기도 합니다. 교회 학자인 에우제비오는 이곳을 아펙으로 생각했으나 고고학적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키부츠 아픽(Afik)은 1972년에 갈릴래아 동쪽의 골란 고원에 세워졌지요. 1972년 5월 8일에 폐허가 된 시리아 마을 피크(Fiq) 부근에 설립된 것입니다. 이 마을의 고도는 349m입니다. 

 2017년에 295명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이 키부츠는 고대 아펙에 세워졌으므로 성경 지명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크는 고대 마을 자리에 있어 라틴어와 헬라어로 된 문구들이 발견되었으며,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교통로에 있어 13세기의 숙소인 칸 엘 아카바(Khan al-Aqabah)가 있었습니다.

5. 텔 하다르 (Tel Hadar)

1) 텔 하다르의 위치: 32º 51’ 00. 79” N 35” 38’ 58. 45” E

텔 하다르의 사 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하는 비)

(텔 하다르의 사 천명을 먹이신 기적 기념 비)

2) 텔 하다르의 특징과 역사

 텔 하다르는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던 곳으로 알려졌습니다(마태 15, 32-39; 마르 8, 1-10). 이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잘 알 수 없지요. 하지만 겐네사렛 땅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단이나 또는 달마누타로 배를 타고 떠나셨다는 기록을 보면 갈릴래아 바다의 동쪽 지역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 지역을 순례하는 안내 지도(The Survey of Israel. 2000 Pilgrim’s Map)를 보면 텔 하다르를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장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968년에 발견되어 1987년에 텔 아비브 대학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지요. 이곳은 발굴에 의하여 초기 철기 시대 거주지, 재건축된 초기 철기 시대 거주지, 기원전 11세기의 화재에 의한 파괴층, 기원전 9세기의 재건축된 거주지, 초기 철기 시대 후기 철기 시대에 아시리아에 의한 파괴층이 포함된 6개의 지층이 드러났습니다. 로마 시대에 이곳은 테카폴리스 지역에 속했었습니다. 

이곳은 1968년에 발견되었고, 조사를 거친 후 1987년에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은 고고학자 코카비(M. Kochavi)와 베크(P. Beck)의 지도로 발굴되었는데요. 기원전 9-8세기와 기원전 11세기의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기 청동기, 후기 청동기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중 성벽이 발견되었는데 내벽은 2.5m이고 외벽은 4m에 이릅니다. 텔 하다르는 엔게브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농경 마을이었으며, 기원전 733년- 기원전 732년에 파괴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텔 하다르

  • 마태 15, 32-39: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배를 타고 마가단 고장으로 가셨다.

  • 마르 8, 1-10: 그 무렵에 다시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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