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 2세기의 교회와 성지에 대하여…

기원후 1 세기의 교회는 바오로 사도와 예수님 제자들의 열정적인 전교 활동을 바탕으로 확장해 갔습니다. 복음은 유다인 공동체의 회당을 기반으로 전파되었습니다. 2세기 경에는 교회와 유다교가 분열되어 각기 전교에 힘을 썼습니다.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기원후 1, 2 세기의 교회 모습

1) 기원후 1세기의 교회

“그래서 내가 에스파냐로 갈 때 지나는 길에 여러분을 보고, 먼저 얼마 동안 여러분과 기쁨을 나누고 나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그곳으로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 15, 24)”

기원후 1세기의 교회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 내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지리적인 분포도를 살펴보면 바오로와 그 동료 사도들이 디아스포라 유다인 공동체의 회당을 기반으로 전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인인 이들은 자유롭게 회당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들의 가르침은 때로 분쟁을 일으켜 지역 공동체를 갈라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추방되거나 떠난 후에는 거의 언제나 소규모의 그리스도인들이 남겨져 교회의 존재를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공동체들은 서신서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바오르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성실하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전교를 통해 믿는 이방인들이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이 점차 그들에게 흡수되어 갔습니다. 유프라테스 건너편의 에뎃사(Edessa)를 제외하고, 기원후 1세기에는 교회가 로마 제국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그중에서도 소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곳에는 이미 오래전에 유다인 공동체들이 세워져 주변에 반쯤 유다교로 개종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집단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구약 성경을 재해석한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뿌리 내린 곳이 바로 이들 공동체였습니다. 서방에서는 로마와 그 일대에만, 어쩌면 스페인에도 이러한 초기 단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네로의 통치 시기에 최초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났으나 짧게 끝났고 교회의 성장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2) 기원후 2세기의 교회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사도 10, 34-35)”

기원후 2세기의 교회

기원후 2세기, 특히 바르 코크바 항쟁기를 지나면서 교회와 유다교가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르 코크바 전쟁 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다인들이 유대아에서 추방되면서 (여기에 예루살렘의 주교직이 이방인에게 이임되자) 이러한 양상은 가속화되었습니다. 그 무렵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민족적 참사를 당하면서 유다교의 이방인 전교가 막히게 되자 교회는 큰 이익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원후 2세기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서쪽과 북쪽, 골(Gaul, 갈리아 즉 프랑스)과 독일로 확산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도 수많은 모임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기원후 3세기에 강력한 아프리카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집트에서도 그리스도교가 알렉산드리아를 넘어 지방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더 많은 공동체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에서는 교회가 반도 북부와 동부까지 확장되었지요. 안토니우스가 황제들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누렸고, 더 이상 당국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세는 그리스도교가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라 유로포스에 있는 교회 평면도

(두라 유로포스에 있는 교회 평면도)

2. 성지에 대하여… (고대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지금까지 발견된 고고학 정보를 제외하면, 기원후 3세기 말 로마 시대의 팔레스타인 정착과 관련된 주요 정보는 교회 역사가이자 카이사리아의 주교였던 에우제비오 팜필리우스(Eusebius Pamphili)의 증언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용어집, The Onomasticon: 성경에 나오는 지명들’뿐 아니라 모세오경과 예언서들(열왕기서까지)에 언급된 모든 지명들이 철자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모음집은 알파벳 별로, 그리고 각각의 하위 지명들은 그들이 등장하는 성경 목록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에우제비오는 마치 그곳이 동시대에 존재했던 것처럼 당시 지명과 더불어 지역인지 마을인지, 혹은 매우 큰 마을인지 도시인지, 또는 성읍인지 등의 특성을 기록해 두었으며, 때로는 유다인, 그리스도인 또는 사마리아인 등 주민 유형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구약의 장소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논란이 많기 때문에, 그가 이미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을 유다인의 저서를 참조하여 기록하였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용어집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비잔틴 제국이 설립되기 적어도 20년 전에 편찬된 것이어서 예루살렘, 베들레헴 또는 나자렛 등의 성지들을 기념하는 고대 교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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