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과 4개 성당들: 이스라엘 하부 갈릴래아 지역

나자렛은 이스라엘 하부 갈릴래아 지역의 이즈르엘 평야 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즈불룬 지파와 이사카르 지파가 상속 받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강우량이 풍부해 비옥한 곳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고을인 나자렛과 이곳의 성당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자렛 지역의 지도

(이스라엘 하부 갈릴레아의 나자렛 지역 지도)

글의 순서



1. 나자렛 (Nazareth, [Ναζαρεθ], 가지, 새순)의 일반적인 정보

1) 나자렛의 위치: 32º 42’ 08. 79” N 35” 17’ 53. 91” E

오늘날의 나자렛 전경

(성모 영보 성당을 중심으로 한 나자렛 전경)

2) 나자렛의 특징과 역사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불리게 된 예수님이 성장하신 곳으로 여호수아 즈불룬 지파에 상속되었던 지역입니다. ‘나자렛’이란 이름은 신약성경에서만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이 이집트에서 돌아와 머무른 곳이기도 하지요(마태 2, 23).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자렛 예수(마르 1, 24)라고 불렀는데 나자렛은 소박한 고을로 좋은 평판을 지닌 곳은 아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요한 1, 46). 

성경은 나자렛을 예수님의 고향이으로 본동네(나자렛)라고 기록하였습니다(루카 2, 39). 나자렛에는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듣고 분노한 나자렛 주민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낭떠러지가 있습니다(루카 4, 24-30).

나자렛에는 이즈르엘 평야가 보이는 절벽이 있는 산봉우리를 낭떠러지 산(Mount Precipice)이라고 부르며 이곳은 나자렛에서 약 2km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을 예수님을 밀쳐내려고 했었던 절벽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나자렛에서는 중기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기원후 4세기까지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성당은 마리아님이 천사 가브리엘에게 잉태한 소식을 들은 곳으로 1층에는 동굴 구조로 된 마리아님의 집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옛 성당 터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의 북쪽에는 1914년에 십자군 시대의 성당 터 위에 건축된 성가정 성당이 있습니다.이 성당 지하에 있는 동굴은 성요셉의 집이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북쪽 출구로 나가면 나자렛에서 발견된 주거지가 있습니다. 2009년 12월 21일에 이스라엘 고고학 협회에서는 초기 로마 시대인 기원전 40년부터 기원후 70년의 주거지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주거지에서는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된 가옥과 저수조, 그리고 로마 시대의 토기 조각과 생활 도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자렛에서 기원후 1세기의 무덤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나자렛에는 고대 우물이 있는데, 이곳을 마리아의 우물이라고 부르며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이곳에 탄생 예고 기념 성당(St. Gabriel’s Greek Orthodox Church)를 세웠습니다. 나자렛 회당이 있던 자리에 회당(The Synagogue Church)이 있는데 그리스 정교회에서 1887년에 건축하였습니다.

나자렛은 나자렛 산악 시대의 중앙에 있는 분지에 있는 마을이며 남쪽에는 이즈르엘 골짜기가 있고 북쪽에는 벳 네토파 계곡(Beth Netofa Valley)가 있습니다. 나자렛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에는 갈릴래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인 치포리(Zippori)가 있으며, 북동쪽에는 요나의 고향인 갓 헤페르가 있습니다. 

3) 나자렛의 역할: 예수님의 고향으로서의 나자렛은 어떤 고을이었나?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이 성지이지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다 보면 나자렛은 그 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아마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언덕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양들과 놀고, 동네 꼬마 친구들과 놀이를 하셨을 겁니다. 아니면 부모님을 돕기 위해 일을 하고 동네 회당에서 토라를 배우곤 하셨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나자렛이란 마을에서 자라셨을까요? 시대의 흐름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와 장소들을 살펴볼 때, 1세기경 즉 예수님 당시 왜 나자렛이 예수님의 집으로서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을까요? 나자렛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의 공생애를 어떻게 준비하시도록 도와주었을까요?

복음사가 마태오는 예수님의 부모님이 헤로데 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 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들 아켈라오스가 유다를 다스리므로 그곳을 두려워하여 나자렛으로 가서 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오 2:19-23). 하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이 질문들에 답변을 해 주고 있습니다.

  • 나자렛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 5000년간의 기록된 역사를 통해 볼 때, 나자렛이 위치해 있던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 잇는 주요 도로 40킬로미터 정도 되는 지역(이즈르엘 평원)을 장악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거점을 확보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많은 중요한 전쟁들이 이곳에서 일어났지요. 예를 들면, 드보라와 그의 장수 바락과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투 (판관 4:1-5:31), 기드온과 미디안인들과의 싸움 (판관6:1-8:21),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 (1사무 31), 남 왕국 요시야와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와의 싸움 (2열왕 23,28-30)과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군이 아랍 군과 독립 전쟁을 했습니다.
  • 나자렛은 로마식 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이었습니다. 나자렛에서 북쪽으로 약 5km정도 떨어진 곳에 ‘세포리스’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 도시는 예수님 당시에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건설되어 기원후 18년에 그 중심지가 티베리야스로 옮겨지기 전까지 행정 도시로서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곳에 로마 제국은 거대한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이 도로는 나자렛과 갈릴래아, 그리고 다마스쿠스등 다른 나라로 연결해 주고 있어서, 이 도로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 소식이 로마 제국의 머나먼 곳으로까지 전해 질 수 있었습니다.
  • 나자렛은 피난처였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로마의 지배 아래 고단한 격동기에 사셨지만, 나자렛은 고리모양의 언덕으로 둘려 쳐져 있어서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양육되기에 적합한 피난처와 격리된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 갈릴래아 지역에 위치해 있는 나자렛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다양한 세상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해 주었습니다. 나자렛이란 조그마한 시골에 사시면서 농촌 생활과 목축 생활을 경험하시고, ‘세포리스’라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도시에서 다양한 이방 문화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풍부한 비유의 말씀들을 통해 엿볼 수 있지요.
  • 예수님은 아마 나자렛 근방의 들에서 일을 하시거나 ‘세포리스’ 지역에서 건축 일을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이런 시골과 도시 문화 체험들을 통해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많은 은유와 비유의 예로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 1세기에 유다를 통치했던 헤로데 왕국의 권력과 타락은 두려움과 물리적인 힘에 의해 세워진 지상의 인간 왕국은 사랑과 화해로 기초해 세워진 하느님 나라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 나자렛은 소박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은 암석 바위 투성이인 언덕에서 힘든 노동을 해야 했고, 무거운 세금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그리고 연민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나자렛에서 예수님 당시의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나자렛의 지형이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와 유적들을 통해 예수님 당시의 나자렛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셨던 카나 (요한 2:1-12), 거룩한 변모를 하셨던 타보르산 ( 마태오 17, 1-9; 마르 9,2; 루카 9,28-36), 그리고 죽었던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셨던 나인이란 동네가 있는 모레산 (루카 7,11-17)등이 나자렛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어서 그분의 행로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

2. 나자렛 탄생 예고 성당

2천 년 전, 로마가 찬란하게 빛날 때 지중해 연안에는 제국의 수도 로마에 견줄 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들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던 번영한 도시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테네, 코린토, 에페소, 시라쿠사,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그리고 옛 팔레스티나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번영한 도시 카이사리아와 예리코가 있었습니다.

나자렛의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모습

(나자렛의 주님 탄생 예고 성당)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자렛은 세상 사람들 대부분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었습니다. 갈릴래아 하류 지역에 험준한 바위산 구석에 자리한 몇 채 안 되는 집들은 그 지역에서 조차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 지역의 거의 모든 교육 활동이 성행하던 세포리스가 걸어서 두 시간 거리에 있었습니다. 세포리스에는 잘 지어진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그리스-로마의 지식인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나자렛은 아람어만 할 줄 아는 얼마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나마 전부 합해도 백여 명 남짓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길렀지만 요셉 같은 장인들도 있었지요. 근면하고 손재주를 타고 난 요셉은 목수와 대장장이들 사이에서도 일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촌락,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꿀 사람을 보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곳에서, 역사상 그 어떤 사람 보다도 가장 놀라운 존재가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모송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 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루카 복음사가는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영광스러운 순간을 아주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천사의 인사, 놀라는 마리아, 이어지는 응답: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몇몇 교부들의 전하는고대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친척들 일부가 2 세기에 나자렛에 여전히 살고 있었고,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온 방과 어린 예수가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살았던 집을 보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리아가 마을의 어느 연인들처럼 물을 길어 갔던 우물도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4세기 무렵 나자렛의 그 집을 방문했던 순례자들의 문헌 증거의 따르면 그때 이미 제단까지 갖춘 채 그리스도교 신자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세기에는 그 집 터에 비잔틴 성당이 지어졌는데, 11세기 말에 십자군 전사들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노르만 출신의 기사 탕그레드(Tancred) 갈릴래아 공이 원래 집 터 위에 새로운 성당을 집도록 명령했지만 그 건물 역시 1263년 바이바르스 (Bainars) 술탄의 침략으로 파괴되었습니다.

1620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아랍 왕으로부터 성당과 동굴 유적을 넘겨 받았고, 1730 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그 자리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1877 년에는 성당 건물을 증축했고, 그 후 1955년에 기존의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중동에서는 가장 큰 그리스도교 성당인 현재의 성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새로운 성당을 짓기 전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서연구소(Studium Biblicum Franciscanum)는 유적에 대한 고고학 조사를 실시하여 특히 예배 장소로 쓰이던 건물을 발견했어요. 건물에는 그리스어로 XE MAPIA라는 글귀와 ‘마리아의 성지’를 언급하고 있는 글귀를 포함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표식인 그라피티(Graffitti 벽이나 바닥 등에 새겨진 글이나 낙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원래의 건물과 그라피티(Graffitti)는 3세기 이전에 것으로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발견을 보안해 주는 연구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이탈리아 로레토 (Loreto)에 있는 싼타 카사 대성당에서 진행 되었는데, 연구에 따르면 싼타 카사 대성당의 일부분이 나자렛의 주인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의 구조물과 일치 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게다가로래토(Loreto) 에 보존되어 있는 성가정 집의 벽에 적힌 그라피티(Graffitti) 의 필체와 연대가 나자렛의 Graffitti와 같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지요. 현존하는 문헌 자료 와 고고학적 유저과 더불어 이러한 발견 덕에 순례자들이 나자렛의 예수 탄생 예고 기념 대 성당과 로레토(Loreto)의 싼타 카사 대성당 양쪽에서 말씀이 육화 되신 실제 현장을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역사적으로도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나자렛의 성가정 성당

고고학자들은 2천 년 전 갈릴레아 지역에 속한 이 마을의 집들이 어떠했을지 규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집들이 바위에 난 동굴에 정면만 덧댄 간단한 구조로 지어졌지요. 지하실이나 곡식 창고 또는 저수조를 지하에 갖추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집들은 대체로 어두컴컴하고 비좁았습니다.

나자렛에는 주님의 현존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 있지요.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인 곳은 예수 탄생 예고 기념 대성당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다른 곳들로는 유다인 회당과, 예수님이 설교를 듣고 난 뒤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내몰았는지 떠올리게 만드는 절벽 산(Mount of the Precipice)이 있습니다. 또한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가 물을 길어 다녔다고 전해지는 마리아의 우물도 있습니다. 거룩한 가장인 요셉 성인이 묻힌 것으로 전해 오는 의인의 무덤(Tomb of the Just Man), 수백 년에 걸쳐 성가정의 집으로 생각되어 온 집터 위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 등도 있습니다.

나자렛의 성가정 성당 벽화

(나자렛 성가정 성당 제대 위의 성가정 벽화)

하느님 가족의 일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당은 예수 탄생 예고 기념 대성당으로부터 10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성당은 옛 터에 1924년에 신로마 양식으로 지어졌지요. 그곳에는 십자군 시대(12세기)에 이미 성당이 있었는데 13세기에 무슬림이 완전히 초토화 시켰습니다. 11600년 무렵 나자렛에 당도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성 요셉 성당(아기 예수가 자란 곳이었으므로 양육 성당으로도 알려져 있다)이 요셉 성인의 작업 작업장이자 집터였던 곳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08년에 진행된 발굴로 15,1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비잔틴 양식의 성당 유적이 드러났습니다. 유적 안 동굴에는 고고학자들이 1,2세기의 것으로 추정하는 집의 흔적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바위를 파낸 지하실, 저장실, 일곱 계단만 내려가면 바닥에 보이는 세례당 흔적과 모자이크가 있는 저수조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발견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곳이 성가정이 실제로 살았던 집이라고 고고학자들이 확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성지들의 경우처럼 사실로 입증을 하려면 더 많은 옛 자료들이 필요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유서깊게 내려오는 인기 있는 전승을 근거로 우리는 성 요셉 성당의 동굴로 들어가 예수께서 지상에서 30년의 생애를 보낸 나자렛의 집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4. 나자렛의 회당 경당

나자렛의 회당 경당은 그리스도교 전통에 의해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공부하고 기도했었던 고대 나자렛 회당의 폐허 위에 세워진 경당입니다. 또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곳이기도 합니다(마태 13, 54-58; 마르 6, 1-6; 루카 4, 16-30).

나자렛의 회당 기념 경당 내부 모습

(나자렛의 회당 기념 경당)

회당 경당은 그리스 가톨뢱 교회(Melkite Greek Catholics)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요. 그리스 가톨릭 성당은 1887년에 건축되었습니다. 570년에 순례를 했던 이탈리아 순례자는 나자렛 회당에는 예수님께서 앉으셨던 벤치를 포함해 원본 성경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시대에 건축된 회당 경당은 그리스 가톨릭 성당 뒤쪽에 인접해 있습니다. 현대 성당보다 1미터 이상 낮으며 바닥으로 내려가는 7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두 개의 고대 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회당 경당은 아치형의 메인 홀과 성당 제단, 그 바닥은 1.5m 정도 움푹 들어가 있지요. 아마 12세기 경에 지어진 십자군 시대의 성당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5. 나자렛의 그리스 정교회 성모 영보 기념 성당

나자렛에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이 총 18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성 가브리엘 그리스 정교회 성당은 나자렛의 동방 정교회에 속한 주님 탄생 예고 성당입니다. 이 성당 지하에는 샘물이 흐르고 있지요. 이는 실제로는 17미터의 오르막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고 합니다. 동방 정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 탄생 예고를 알려 줄 때 마리아가 물을 긷고 있던 곳입니다(루카 1, 27-35). 샘물의 물은 Jabal as-Sikh로 알려진 산에서 솟구쳐 나와 바위의 지하 수로를 통해 17m정도 흐르다가 성당 내부 지하로 흘러나와 140m 떨어진 마리아 우물로 흘러갑니다.

나자렛의 성 가브리엘 그리스 정교회 성당

(나자렛 그리스 정교회의 성 가브리엘 성당 내부 샘물이 흐르는 경당)

루카 복음사가는 나자렛 마을을 언급하고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2세기 경의 외경인 야고보의 원시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녀가 물을 길으러 나갔다. 그러자 그녀에게 소리가 들렸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본문은 마리아가 계속 둘러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아 마리아가 집으로 돌아가 물동이를 옆에 두고 물을 잦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해야 할 소명을 알려 주었답니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은 아마도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인 후기 로마 시대인 4세기에 나자렛 마을의 유일한 물 공급원이었던 샘터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1106-1108년 사이에 성지 순례를 한 러시아 정교회 사제 아봇 다니엘(Abbot Daniel)과 1185년에 순례를 한 그리스 수도자였던 존 포카스도 성 가브리엘 성당 지하에 물이 솟아나오는 것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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