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교회 역사와 이해: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Ethiopian Oriental Church)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는 이집트와 이웃으로 접해 있으면서 이집트 콥틱 교회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만의 독특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솔로몬 왕이라고 믿고 있지요(1 열왕 10, 1-13)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의 특징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자리한 여러 그리스도교의 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북 쪽 성벽의 새 문(New Gate) 앞에 자리한 프랑스계 가톨릭 호텔과 성당이 있는 노트르담, 동북 쪽에 자리한 아름다운 바실리카 양식의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 이탈리아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병원과 숙소, 에티오피아 교회의 독특한 건축 양식, 그리고 스웨덴 선교사가 지었다는 스웨덴 신학교 건물 등등… 이들은 19 세기 말경부터 20세기에 초에 일제히 세워진 곳들이지요. 이곳들을 방문하고 견학을 하면서 약 150년 전부터 열을 다투어 팔레스타인을 향한 선교에 박차를 가했던 동 서방 교회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무엇보다도 에티오피아 교회였습니다. 눈에 익숙한 서방 교회의 건축물들과 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예루살렘 신시가지의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모습)

십자가의 길 9처를 끝내고 지름길을 통해 무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에티오피아 경당을 지나야 합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계단을 따라가다가 검은 옷을 입은 검은 피부색의 수사님이 “God Bless You!!”라고 축복을 해 주시던 모습에 익숙해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방문한 교회는 독특함과 신비한 경험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요!

예루살렘 무덤 성당의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경당

(예루살렘 무덤 성당의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경당 내부)

예루살렘 신시가지와 접해 있는 에디오피아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둥근돌 돔 형식의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넉넉한 정원에 간간히 심겨 있는 올리브 나무들이 더운 여름날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흰 옷에 흰 천을 얼굴까지 둘러 쓴 여인들이 침묵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랍 여인들의 복장과 비슷했지요. 오후 전례와 기도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주변은 고요와 평화로움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에티오피아 교회의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붉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팔각 정자 모양의 둥근 건물이 교회 건물의 전체였습니다. 지붕은 이슬람의 회교도 사원과 비슷한 원형 모양을 하고 있고, 사자가 아로새겨진 문설주가 독특하게 보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경내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당 내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서방 교회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답니다. 제대는 교회의 맨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유다인들의 성전의 지성소를 상징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대사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와 같은 가장 거룩한 곳에 일반 신자들은 접근할 수 없도록 철창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제대 밖으로 많은 이콘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검은 피부의 흑인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기도 시간이어서 그들의 기도 전례 광경을 살펴볼 수 있었지요. 제대 앞의 사제석에 수도자와 사제들이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 서서 있었고, 일반 신자들도 서서 기도를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기도 시간에 갑자기 이방인들이 들어와 무례하게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고 기도를 하시던 수사님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빨리 나가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용감히(?) 반대쪽으로 돌아 나간다는 표시를 한 후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기도를 할 때 이방 사람들이 들어와 돌아다니거나 서성거리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예의 없이 그들의 기도를 방해했음에 미안함을 느끼며 에티오피아 교회에 관한 부연 설명을 들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 불리는 서쪽 지역과 홍해의 사이에 자리한 나라입니다. 나라 대부분이 산악 지역에 자리를 하고 있으며, 인구의 절반은 그리스도교인이고 절반은 모슬렘에 속했었지만 이슬람의 영향 아래 그리스도교인들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에티오피아 교회는 이집트와 이웃으로 접해 있으면서 이집트 콥틱 교회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만의 독특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솔로몬 왕이라고 믿고 있지요(1 열왕 10, 1-13). 솔로몬 왕이 스바 여왕과의 결혼을 통해 낳은 자녀들이 에티오피아 왕족들이고, 유일신 사상은 이때부터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셈족 어인 ‘에티오피안(Ethiopian)’은 ‘거무스름한, 가무잡잡한(dark)’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흑인(black)’이란 말과는 구별됩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인종적으로 셈족과 아프리카 인들의 혼혈이지만 얼굴이나 몸매는 흑인과는 무척 다릅니다. 그들은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편이고, 얼굴 또한 갸름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아담해 미인 미남형에 속합니다.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들 중에 하나는 강한 종교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신심이 깊고 경건하며,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강한 편입니다.

전례에 참여하는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신자들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 신자들의 전례)

2.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의 기원

에티오피아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시기는 서기 340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통에 의하면 당시 대 교부였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the Great)에 의해 후르멘티누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새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한 수도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역사는 수도원 제도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5 세기말 이전에 성 파코미우스(St. Pachomius)의 수도 규칙서와 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교회 역사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기 480년은 아홉 성인들(Michael Aragawi, Libanos Johannes, St, Tekla Haymanot 등이 대표적인 수도원 설립자들임)의 출현으로 인해 교회와 수도원이 보급, 전파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됩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암하릭(Amharic)’이란 셈족 어를 현재 사용하지만 전례에서는 고대어인 ‘게-즈(Ge’ez: 그리스, 콥틱, 그리고 시리아어로 된 전례서를 ‘게-즈’어로 번역해서 사용해왔다)’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에티오피아 동방 교회의 전파와 역사

에티오피아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시기는 서기 340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통에 의하면 당시 대 교부였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the Great)에 의해 후르멘티누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새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한 수도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역사는 수도원 제도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5 세기말 이전에 성 파코미우스(St. Pachomius)의 수도 규칙서와 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교회 역사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기 480년은 아홉 성인들(Michael Aragawi, Libanos Johannes, St, Tekla Haymanot 등이 대표적인 수도원 설립자들임)의 출현으로 인해 교회와 수도원이 보급, 전파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됩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암하릭(Amharic)’이란 셈족 어를 현재 사용하지만 전례에서는 고대어인 ‘게-즈(Ge’ez: 그리스, 콥틱, 그리고 시리아어로 된 전례서를 ‘게-즈’어로 번역해서 사용해왔다)’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4. 동방 교회들(Oriental Churches)을 마치며…

동방 교회(Oriental Churches)들의 기원과 아주 간략한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위에서 다룬 시리아, 콥틱, 아르메니아, 그리고 에티오피아 교회 외에 다루지 못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재 레바논에 많은 신자들을 갖고 있는 야콥 교회(Jacobite Church), 남 인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는 성 토마스 교회(St. Tomas Church), 그리고 레바논을 주축으로 있는 중동의 소수 교파인 마로나이트 교회(Maronite Church) 들입니다. 이 외에도 한때 존재했었지만 이슬람 제국의 침입 이후로 박해에 견디지 못해 사라진 교회들도 있습니다. 교부들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 즉 아오스팅과 터툴리아누스, 그리고 치푸리아누스 성인들의 마을 ‘카르타고(Carthago)’ 와 ‘싸이레나니카(Cyrenaica) 또는 펜타폴리스’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5개 도시들, 그리고 이집트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던 누비야(Nubia)등이 이런 곳들입니다.

동방교회들의 독특한 그 기원과 전승들은 나름대로 창시자 또는 수호 성인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부흥과 쇠퇴기는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 이후 사도들을 주축으로 복음이 불길처럼 세계로 전파되면서, 비잔틴 시대에 그 절정에 다다릅니다. 비록 동방과 서방이 신학적 노선을 달리 하고 각기 길을 갖지만 동방 교회들의 지칠 줄 모르는 선교 열정은 아시아의 땅끝인 중국, 일본까지 미쳤습니다(사도 1,8 참조). 하지만 이슬람 국가 침입으로 교회의 전성기는 종말을 고하고 대대적인 박해 속에서 1천 년 이상의 어둡고 긴 역사의 터널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초 서방 국가들의 선교에 힘 입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서방 교회의 선교는 그들 조상들의 끈끈한 신앙에 결속됨과 토착화에 대한 도전에 실패를 하고 물러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들은 이슬람 세계 안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경우 90% 이상이었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지금은 20%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슬람교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에 비해 하등 종교로서 언젠가는 이슬람에 의해 정복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암리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해지는 불평등과 박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지요. 얼마 전에 라말라라는 도시에서 한 그리스도교인 아버지가 자기 딸을 직접 살해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딸이 이슬람 청년과 사귄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이슬람이 되게 하느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나자렛 서북쪽에 아랍인 마을과 그리스도교 신자 마을이 이웃해 있는데, 한 번은 아랍인들이 그리스도교인 마을을 공격해 집들을 부수고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 그리스도인 청년이 아랍 마을의 처녀를 욕보이고 인터넷에 올렸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는 이들이 서로 얼마나 증오를 품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지요. 정말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종교 간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동방 교회 신자들은 그분 안에서 그들의 지상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분이 주시는 평화의 나라가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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