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카르탄/ 라캇/ 라쿰/ 티베리아스/ 함맛 (요르단 지구대의 갈릴래아 지역 2)

막달라, 카르탄, 라캇, 그리고 함맛은 갈릴래아 호수 지역 서쪽에 위치한 성경의 지명들입니다. 라쿰은 ‘키르벳 알 만수라(kh. al-Masurah)’로 보고 있지만, 갈릴래아 호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신빙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납탈리 지파가 상속 받은 장소들이기도 하지요. 이들 성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막달라, 카르탄, 라캇, 라쿰, 티베리아스, 함맛이 있는 갈릴레아 호수 지역 지도

(요르단 지구 갈릴래아 지역의 막달라, 카르탄, 티베리아스, 라캇, 라쿰, 함맛 위치 지도)

글의 순서



1. 막달라 (Magdala, [Μαγδαλα], 탑, 키르벳 메즈델 [Kh. Mejdel])

1) 막달라의 위치: 32º 49’ 29. 42” N 35” 30’ 54. 54” E

막달라의 기원후 1세기의 회당 유적

(기원후 1세기, 예수님 당시의 회당 유적)

2) 막달라의 특징과 역사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향인 막달라는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 이야기로 알려진 곳입니다(마태 27, 56; 27, 61; 28, 1; 마르 15, 40; 15, 47; 16, 1; 16, 9; 루카 8, 2; 24, 10; 요한 19, 25; 20, 1; 20, 11; 20, 18). 마가단(마태 15, 39)은 막달라와 같은 장소이거나 막달라 지방의 한 구역으로 보입니다. 다른 지명을 갖고 있지만 막달라와 마가단은 같은 장소로 추정됩니다. 또한 달마누타(마르 8, 10)도 역시 막달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막달라는 갈릴래아 바다의 주변 도로와 평야로 가는 도로의 교차점에 있어 수비 탑이나 망루 역할을 했기 때문에 ‘탑’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탈무드에서는 막달라가 티베리아스 북서쪽에서 약 5km 떨어진 곳이며 미그달 눈야(Migdal Nunya)라고 불렸습니다. 미그달 눈야는 ‘물고기 탑’이란 뜻으로 소금에 절인 물고기를 공급했던 어촌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지요. 막달라는 갈릴래아 바닷가에 있는 키르벳 메즈델(Kh. Mejdel)과 같은 장소로 보입니다. 

이곳에 1세기 때의 로마 시대 도로와 유다교 회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기원후 132년의 제2차 유다인 항쟁의 중심지가 되어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곳에 막달라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묘지가 있습니다. 

레지오 수도회에서 막달라의 해변가에 막달라 센터 건립을 위한 공사를 진행 중에 거대한 막달라 유적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2009년에 유다교 회당이 발견되었는데요. 갈릴래아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후 1세기의 회당으로는 유일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돌 의자와 바닥의 모자이크가 발견되었고, 회당 중앙에서는 ‘막달라 돌’이라고 부르는 메노라(촛대) 문양이 새겨진 돌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후 1세기의 주택 유적과 도로가 발굴되고, 동전과 그릇들이 출토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막달라

  • 마태 27, 56: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 마르 8, 9-10: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2. 카르탄(Kartan, [ קרתן], 도시지역/ 키르야타임/ 텔 랏캇[Tel Raqqat])

1) 카르탄의 위치:  32º 48’ 24. 48” N 35” 31’ 32. 66” E

2) 카르탄의 특징과 역사

카르탄은 납탈리 지파에게 상속된 도피성읍으로 레위 지파 게르손 자손에게 주어진 세 성읍 중 한 곳입니다(여호 21, 32). 갈릴래아 케데스는 도피성읍이었고, 함몬과 카르단은 레위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카르탄은 1역대기 6장 61절의 키르야타임으로도 불렸습니다. 키르야타임은 같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다른 장소인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루우벤 지파의 성읍이었던 곳도 있습니다(민수 32, 37; 여호 13, 19). 카르탄의 추정지는 이스라엘에 한 곳, 또 레바논에도 한 장소가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카르탄

  • 여호 21, 32: 납탈리 지파에서는 살인자의 도피 성읍 갈릴래아의 케데스와 거기에 딸린 목초지, 함못 도르와 거기에 딸린 목초지, 카르탄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세 성읍을 내주었다.
  • 민수 32, 37-38: 르우벤의 자손들은 헤스본, 엘알레, 키르야타임, 나중에 이름이 바뀐 느보와 바알 므온, 그리고 시브마를 세웠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성읍들에 이름을 붙였다.
  • 여호 13, 15-21: 모세가 르우벤 자손들의 지파에게 씨족에 따라 상속 재산을 주었는데, 그들의 영토는 아르논 강 가에 있는 아로에르에서 시작하여, 그 강 중간에 있는 성읍, 메드바 곁의 고원 지대 전체, 헤스본, 그 고원 지대에 있는 모든 성읍, 곧 디본, 바못 바알, 벳 바알 므온, 야하츠, 크데못, 메파앗, 키르야타임, 시브마, 골짜기의 언덕에 있는 체렛 사하르, 벳 프오르, 피스가 기슭, 벳 여시못, 그리고 고원 지대의 모든 성읍,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족 임금 시혼의 왕국 전체이다. 모세가 이 시혼을, 또 그 땅에 살면서 시혼의 봉신으로 있던 미디안족의 제후 에위, 레켐, 추르, 후르, 레바를 쳐 죽였다. 이들은 그 땅에 살던 시혼의 제후였다.

3. 라캇 (Rakkath, [רקת ], 해변가/ 텔 락카트 [Tel Raqqat])

1) 라캇의 위치: 32º 48’ 24. 48” N 35” 31’ 32. 66” E

2) 라캇의 특징과 역사

라캇은 납탈리 지파에게 상속된 곳으로 성경에 한 번 언급됩니다(여호 19, 35). 이곳은 갈릴래아 바닷가에 있는 함맛과 킨네렛 사이에 있었던 성읍으로 보입니다. 라캇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텔 락카트(Tel Raqqat)와 티베리아스(Tiberias) 입니다. 미쉬나와 탈무드는 라캇의 위치를 현재의 티베리아스의 자리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요. 라캇의 추정지로 키르벳 엘 쿠네이티레(Kh. El-Qunitireh)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이곳은 아인 엘 훌리예(Ain el-Fuliyeh) 바로 위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초기, 중기, 후기 청동기 시대와 철시 시대, 페르시아 시대, 비잔틴 시대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을 카르탄( 키르야타임)으로 추정하기도 하지요. 텔 락카트는 티베리아스에서 북쪽으로 1km 지점의 갈릴래아 바닷가에 있는 언덕 위의 요충지에 있는 견고한 요새같은 성읍입니다.

3) 성경 속의 라캇

  • 여호 19, 32-39절 중 35절: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그리고 요새 성읍은 치띰, 체르, 함맛, 라캇, 킨네렛, 아다마, 라마, 하초르, 케데스, 에드레이, 엔 하초르, 이르온, 믹달 엘, 호렘, 벳 아낫, 벳 세메스, 이렇게 열아홉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이것이 납탈리 자손 지파가 씨족별 상속 재산으로 받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4. 라쿰 (Lakkum, [ לקום], 방해, 길을 막다/ 키르벳 만수라 [Kh. Mansurah])

1) 라쿰의 위치: 32º 41’ 53. 30” N 35” 33’ 07. 78” E

2) 라쿰의 특징과 역사

라쿰은 납탈리 자손의 영토 경계선에 있었던 성읍으로 성경에 한 번 기록되었습니다(여호 19, 33). 야브느엘과 요르단 강 사이의 납탈리 지파의 경계선이 있었지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라쿰을 키르벳 엘 만수라(Kh. El-Mansurah)로 보고 있는데요. 그런데 요르단 강에서 너무 멀성으리 떨어져 있어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3) 성경 속의 라쿰

  • 여호 19, 32-39절 중 33절: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그리고 요새 성읍은 치띰, 체르, 함맛, 라캇, 킨네렛, 아다마, 라마, 하초르, 케데스, 에드레이, 엔 하초르, 이르온, 믹달 엘, 호렘, 벳 아낫, 벳 세메스, 이렇게 열아홉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이것이 납탈리 자손 지파가 씨족별 상속 재산으로 받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5. 티베리아스 (Tiberias, [Τιβεριας], 티베리우스)

1) 티베리아스의 위치:  32º 47’ 24. 97” N 35” 32’ 25. 63” E

십자군 시대 성벽이 남아 있는 티베리아스

(십자군 시대의 성벽이 남아 있는 티베리아스 유적)

2) 티베리아스의 특징과 역사

티베리아스는 납탈리 지파의 영토에 있는 신약시대의 도시 이름입니다(요한 6, 23). 하지만 갈릴래아 바다를 가리키는 티베리아스 바다(요한 6, 1; 21, 1)와 티베리아스 호수(요한 21, 1)와 이름이 같은 성읍입니다. 갈릴래아 바다와 같은 장소를 의미하는 티베리아스 바다는 “갈릴래아 호수 즉 티베리아스 호수”로 번역이 되고 있지요(요한 6, 1). 

티베리아스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 중 하나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기원후 18-22년에 건설하여 갈릴래아 지방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도시를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라 티베리아스(Tiberias)라고 불렀지요. 기원후 61년의 아그리빠 2세 때에 티베리아스는 카이사리아 필리포의 구역에 편입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카파르나움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유다 전통에는 라캇의 추정지로 보고 있습니다. 미쉬나와 탈무드는 라캇의 위치를 현대의 티베리아스의 자리에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기원후 70년 이후) 많은 유다인들이 티베리아스로 이주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후 67년 유다인 1차 항쟁 때 지금도 남아 있는 성벽이 건축되었지만 로마군에게 함락되었지요. 기원후 100년에 로마의 행정 구역에 편입되었고, 하드리아누스 시대에는 하드리아누스를 위한 신전이 건축되기도 했습니다.

기원후 132-135년의 바르 코크바 혁명 이후에는 유다인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곳에서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기원후 218-222년의 엘라가 발루스가 통치할 때에 로마의 도시로 격상되었어요.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티베리아스는 유다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티베리아스는 갈릴래아 바다의 중심 도시이며 상업 휴양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로마 시대의 목욕탕, 시장, 거리, 공공건물이 발견되었고, 북쪽에서는 6세기 경의 회당 건물이 드러났습니다. 이와 함께 비잔틴 시대의 성벽과 십자군 시대의 성당이 발견 되었고요. 도시 남쪽의 발굴을 통해 로마 시대와 아랍 초기 시대의 성문을 비롯해 8-11세기 때의 건물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티베리아스

  • 요한 6, 1-2a: 그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 요한 6,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 요한 21, 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6. 함맛 (Hammath, [חמת], 온천 돌/ 함몬1/ 함못 도르/ 함맘 타바리예 [Hammam Tabariyeh])

1) 함맛의 위치:  32º 45’ 57. 90” N 35” 33’ 02. 51” E

온천장으로 알려진 함맛 유적

(온천이 흘러 나오는 함맛 유적)

2) 함맛의 특징과 역사

함맛은 납탈리 지파의 견고한 요새였던 성읍으로 갈릴래아 지역에 있었으며 성경에 한 번 언급이 되었습니다(여호 19, 35). 함맛은 함몬2(1역대 6, 61)과 함못 도르(여호 21, 32)와 다 같은 장소로 볼 수 있는데요. 함몬1 (레위)은 아세르 지파의 영토로 레바논에 있는 함몬2(아세르)와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입니다. 

함맛은 함맘 티베리예(Hammam Tabariyeh)와 같은 장소로 보고 있지만 로마 시대 이전의 유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근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함맘 타바리예는 갈릴래아 바닷가에 있는데 티베리아스 남쪽으로 3km 지점에 있는 온천이 나오는 곳입니다. 

이곳은 하초르로 가는 교역로가 지나가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코와 타보르 산으로 가는 도로가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함맛

  • 여호 19, 32-39절 중 35절: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그리고 요새 성읍은 치띰, 체르, 함맛, 라캇, 킨네렛, 아다마, 라마, 하초르, 케데스, 에드레이, 엔 하초르, 이르온, 믹달 엘, 호렘, 벳 아낫, 벳 세메스, 이렇게 열아홉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이것이 납탈리 자손 지파가 씨족별 상속 재산으로 받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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