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기또/ 하닷 림몬/ 타아낙 (이스라엘 북부 이즈르엘 계곡의 므기또 지역 2)

므기또는 므나쎄 지파의 영토로 이즈르엘 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해, 무역과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하닷 림몬과 타아낙은 이스즈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하고, 이사카르에 속한 땅이었는데요. 성경에 언급되는 이들 성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므기또, 하닷 림몬, 타아낙이 위치한 이즈르엑 평야 지역 지도

글의 순서



1. 므기또 (Megiddo, [מגדו ], 침입하다, 부대/ 텔 므기또 [ Tel Megiddo])

1) 므기또의 위치: 32º 35’ 06. 19” N 35” 11’ 03. 74” E

텔 므기또 언덕 유적

(텔 므기또 언덕 모습)

2) 므기또의 특징과 역사

므기또는 하르마게돈 전쟁지로 알려진 전략 요충지에 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정복한 영토에서 최초로 기록된 곳이었지요(여호 12, 21). 므나쎄 지파가 이사카르 지파와 아세르 지파의 경계 안에서 상속받은 고을 중 하나로 언덕 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여호 17, 11). 텔 므기또(Tel Megiddo)라고 불리는 므기또에서 므나쎄 지파는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여 가나안 사람들이 당시에 계속 살고 있었지요. 이스라엘이 강력해진 후에야 내쫓지 않고,그들에게 노역을 시켰습니다(판관 1, 27-28).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열두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할 때 바아나가 다스렸으며(1열왕 4, 12), 솔로몬은 므기또를 건축하였습니다(1열왕 9, 15). 예후사 반란을 일으킬 때 유다 임금 아하즈야를 구르 오르막길에서 공격하였고, 부상을 입은 아하즈야 임금은 므기또에서 죽었습니다(2열왕 9, 27; 2역대 35, 22). 요시야 유다 임금은 이집트의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를 정벌하러 가는 것을 므기또에서 막아 내려다가 전사했습니다(2열왕 23, 30). 

므기또는 남북으로 지나가는 ‘해변의 길’과 아코와 벳 스안을 연결하는 동서의 연결 도로가 교차하는 요충지에 있었던 까닭에 매우 중요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즈르엘 평지에 위치해 있어 종종 큰 전쟁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나폴레옹은 1799년 튀르키예 군과 싸웠고, 1차 세계대전 중에 알렌비 장군이 튀르키예 군을 격퇴하였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므기또에서 하르마게돈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언했습니다(묵시 16, 16). 이는 히브리어의 하르 므기또(הר מגדו/ Har Megiddo)가 그리스어로 음역 표기되었기 때문에 므기또와 하르마게돈은 같은 장소로 볼 수 있지요.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발굴이 이루어져 여러 시대에 걸쳐 남겨진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석동기 시대의 신전 유물, 철기 시대의 건물, 솔로몬 시대의 방어벽이 있는 성문과 마구간, 아합 임금 시대의 거대한 지하 수로, 예로보암 시대의 곡식 저장소 등이 발견되었지요. 

기원후 14세기부터 지금의 텔 므기또는 구약성경의 므기또와 같은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이 장소는 역사, 지리, 고고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장소가 되었습니다. 므기또는 북이스라엘의 곡창지대인 이즈르엘 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카르멜 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데요. 중요한 국제 도로인 ‘해변의 길’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업과 교통의 요지에 자생적으로 거주지가 된 석동기 시대부터 1948년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가장 중요한 전투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 외의 다른 역사 문헌에도 므기또는 기원전 15세기의 투트모세 3세의정복 도시 기록에서 시작해, 타아낙 서신, 아마르나 서간들, 세티 1세의 정복 목록, 파피루스 아나스타시1, 파라오 시삭의 정복 목록 등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도시였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다. 

므기또는 1903-1905년 사이에 슈마허의 지도 아래 처음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25-1939년 사이에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 의해 므기또 전체의 정착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장소에 대한 발굴이 지연되다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이갈 야딘의 주도 아래 발굴이 되었습니다. 1992년도 이후에는 우시쉬킨과 핀켈슈타인의 감독 아래 다시 므기또 발굴이 재개되어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발굴 작업을 통하여 신석기 시대부터 페르시아 시대까지 총 20여개의 거주 지층이 발견되었습니다. 각 지층, 관련 연대,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층고고학 연대추정 연대주요 발견물 및 관련 사건
I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50-332년도시 성벽과 성문이 없음
II IIIA후기 철기 시대 말기원전 620/610-550년 기원전 732-620/610년요시야 시대, 느코에 의한 요시야 전사/ 아시리아 행정도시
IIIB IVA후기 철기 시대 중 후기 철기 시대 중기원전 790-732년 기원전 925-790년곡식 저장소/‘예로보암의 종 쉐마’인장/ 마구간/수로시설/도시 성벽과 성문에 의한 요새(오므리와 아합 시대의 ‘전차 도시’
VA-IVB후기 철기 시대 초기원전 980-925년두 개의 궁전/성문/하수로/이집트 임금 시삭의 침공에 의한 파괴
VB후기 철기 시대 초기원전 1050-980년다윗 시대의 성읍
VIA VIB초기 철기 시대기원전 1100-1050년 기원전 1140-1000년다윗에 의한 가나안 도시 파괴(망대와 신전?)
VIIA후기 청동기 시대 말/ 후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1250-1100년라메세스 6세의 카르투쉬?/가나안 도시의 연속성
VIIB후기 청동기 시대 중기원전 1380-1250년
VIII후기 청동기 시대 초/중기원전 1520-1380년궁전과 성문/길가메쉬 서사시 토판?/아마르나 시대와 그 이후의 가나안 도시 국가
IX후기 청동기 시대 초기원전 1590-1520년
X중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1650-1590년‘망대 신전’ 건설
XI중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1730-1650년
XII중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1850-1730년
XIII중기 청동기 시대 중기원전 2000-1850년
XIV중기 청동기 시대 초/ 중기 청동기 시대 중기원전 2200-2150~200년
XV초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2350-2200년쌍둥이 신전
XVI초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2500-2350년도시 성벽, 제단을 지닌 신전 건설
XVII초기 청동기 시대 말기원전 2650-2500년도시 성벽, 제단을 지닌 신전 건설
XVIII초기 청동기 시대 중기원전 2900-2650년도시 성벽, 제단을 지닌 신전 건설
XIX석동기 시대/ 초기 청동기 시대 초기원전 3500-3000년
XX신석기 시대기원전 5000년기원전 6000년 이전 토기 신석기 시대의 유물/토기 이전 신석기 시대의 유물

3) 성경 속의 므기또

– 여호 12, 7-9. 21절 중 21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르단 건너편 서쪽, 레바논 골짜기에 있는 바알 가드에서 세이르 쪽으로 솟은 할락 산에 이르기까지 그 땅의 임금들을 쳐 죽였는데, 그 임금들은 이러하다. 여호수아가 지파별 구분에 따라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소유지로 나누어 주었는데, 산악 지방, 평원 지대, 아라바, 비탈 지대, 광야, 네겝으로서,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의 땅이다. 그 임금들은 예리코 임금 하나, 베텔 근처 아이 임금 하나,… 타아낙 임금 하나, 므기또임금 하나….

– 여호 17, 10-11절 중 11절: 이렇게 남쪽은 에프라임의 소유이고 북쪽은 므나쎄의 소유인데, 바다가 그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아세르에 닿고 동쪽으로는 이사카르에 닿는다. 이사카르와 아세르에도 므나쎄의 소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엔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므기또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다. 셋째 성읍은 바로 네펫이다.

– 판관 1, 27-28: 므나쎄 지파는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그리고 도르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 므기또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가나안족은 계속 그 땅에서 살기로 작정하였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다음에 가나안족에게 노역을 시켰지만, 그들을 쫓아내지는 않았다.

– 판관 5, 19: 임금들이 모여 와 싸웠네. 그때에 므기또의 물가 타아낙에서 가나안 임금들이 싸웠네. 그러나 은 노획물은 얻지 못하였네.

– 1열왕 4, 11-13절 중 12절: 또 솔로몬의 딸 타팟을 아내로 삼은 아비나답의 아들이 도르의 고지대 전체를 맡고,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타아낙과 므기또, 이즈르엘 아래 차르탄 곁에 있는 벳 스안 전체와, 벳 스안에서 아벨 므홀라에 이르는 지역, 곧 요크므암 건너편까지를, 그리고 게베르의 아들이 라못 길앗을 맡았다. 그의 지역은 길앗에 있는 므나쎄의 아들 ‘야이르의 부락들’과, 바산의 아르곱 지역에 있는, 성벽과 청동 빗장을 갖춘 큰 성읍 예순 개였다.

– 1열왕 9, 15: 솔로몬 임금이 주님의 집과 자기 궁전과 밀로 궁을 짓고, 예루살렘 성벽과 하초르와 므기또와 게제르를 세우려고 부역을 시킨 이야기는 이러하다.

– 2열왕 9, 27: 유다 임금 아하즈야는 그것을 보고 벳 간 길로 도망쳤다. 예후는 그의 뒤를 쫓으며 “저자도 쏘아라.” 하고 일렀다. 병사들은 병거를 타고 가는 아하즈야를 이블르암 근처의 구르 오르막길에서 쏘았다. 아하즈야는 므기또로 도망쳤으나 거기에서 죽었다.

– 2열왕 23, 29-30: 요시야 시대에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 임금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을 향하여 올라갔다. 요시야 임금이 그와 맞서 싸우러 나가자, 파라오 느코는 므기또에서 요시야를 보고 그를 죽여 버렸다. 신하들은 죽은 요시야를 병거에 실어 므기또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와서, 그의 무덤에 묻었다. 그 뒤에 나라 백성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즈를 데려다가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 뒤를 이어 임금으로 세웠다.

– 2역대 35, 20-24절 중 22절: 이런 일이 모두 일어난 다음, 곧 요시야가 주님의 집을 다시 정비한 뒤에, 이집트 임금 느코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있는 카르크미스에서 싸우려고 올라왔다. 요시야가 그에게 맞서 싸우러 나가자, 그가 요시야에게 사절들을 보내어 말하였다. “유다 임금이여,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나는 오늘 그대를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나와 싸움을 벌이는 왕실을 치러 온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서두르라고 하셨소. 그러니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거스르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멸망시키실 것이오.” 그러나 요시야는 그에게서 물러서지 않고, 그와 싸우려고 변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느코의 말을 듣지 않고, 그와 싸우려고므기또 평원으로 진군하였다. 그때에 궁수들이 요시야 임금을 쏘아 맞혔다. 임금은 부하들에게 일렀다. “나를 여기에서 옮겨라. 내가 크게 다쳤다.” 그의 부하들은 그를 병거에서 옮겨 그의 두 번째 병거에 태우고는 예루살렘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요시야는 죽고 말았다. 요시야가 자기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 묵시 16, 12-16절 중 16절: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해 돋는 쪽의 임금들을 위한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귀들의 영으로서 표징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온 세계 임금들을 찾아 나섰는데, 전능하신 하느님의 저 중대한 날에 일어날 전투에 대비하여 임금들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처럼 간다.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아,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부끄러운 곳을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세 영은 히브리 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임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2. 하닷 림몬 (Hadadrimmon, [חדד-רמון]/ 루만네 [ Rummaneh])

1) 하닷 림몬의 위치: 32º 31’ 29. 28” N 35” 12’ 25. 63” E

오늘날 하닷 림몬(루만네)의 모습

(하닷 림몬으로 추정되는 오늘날의 루만네 마을 모습)

2) 하닷 림몬의 특징과 역사

하닷 림몬은 즈카르야의 예언에서 “그날에 므기또 벌판에서 하닷 림몬을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곡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란 비유에서 언급된 곳입니다(즈카 12, 11). 

하닷 림몬을 바알 신과 연결 시켜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므기또 계곡의 성읍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습니다. 하닷 림몬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학자들은 타아낙과 므기또 부근에 있는 루만네(Rummaneh) 마을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랍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 중심지에 오래된 무덤이 있는 언덕이 있습니다.

루만네 마을은 아랍인들의 거주지로 고대의 유적인 바위로 깎아 만든 저수조와 동굴, 그리고 우물이 남아 있습니다. 빅터 괴랭(Victor Guerin)이 1863년에 답사한 후 이곳을 ‘하닷 림몬’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예로니무스 성인은 하닷 림몬을 막시미아노폴리스(Mximianopolis)로 보고 있는데요. 이곳은 림몬2(즈불룬 지파의 영토)으로 추정하고 있는 루만나입니다. 

3) 성경 속의 하닷 림몬

– 즈카 12, 11: 그날에 므기또 벌판에서 하닷 림몬을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곡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3. 타아낙 (Taanach, [תענך ], 모래로 된 땅/ 텔 타나크 [Tell Tanakh])

1) 타아낙의 위치: 32º 31’ 19. 85” N 35” 13’ 14. 59” E

텔 므기또에서 바라 본 타아낙 평지

(텔 므기또에서 바라 본 타아낙 평지)

2) 타아낙의 특징과 역사

타아낙은 바락이 가나안 왕들과 전투를 했었던 므기또 물가에 있는 곳입니다. 여호수아가 물리친 가나안 성읍들 중에 들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거주하는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성읍이었는데요(여호 17, 11; 판관 1, 27; 1역대 7, 29). 후에 타아낙은 레위 사람 크핫 자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여호 21, 25). 이스라엘은 힘이 강력해진 후에야 이곳을 통치할 수 있었지요(판관 1, 28). 

타아낙은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승전을 노래할 때 가나안 임금들이 므기또 물가에 있는 타아낙에서 싸웠지만 은을 탈취하지 못한 싸움이었다고 한 장소입니다(판관 5, 19). 이곳은 솔로몬의 행정구역에서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은 구역에 포함되었습니다(1열왕 4, 12). 

타아낙은 텔 타아낙(Tell Tanakh)과 같은 장소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코 평야와 제닌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와 벳 스안에서 사론 평야를 연결해 주는 도로의 교차로에 있었지요. 또한 므기또와 제닌의 중간 지점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약 80두남 크기의 큰 텔(Tell)로 발굴과 지표 조사를 통하여 초기.중기.후기 청동기, 초기.후기 철기, 페르시아 시대의 지층과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1966년의 발굴을 통해 기원전 10세기의 점토로 만든 53m의 높이가4층으로 된 제단이 발견되었어요.  이 제대 1층에는 사자와 벌거벗은 여인, 2층은 천사들 형상, 3층에는 산양 두 마리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4층에는 태양 모양의 원반을 업고 있는 송아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형상들이 새겨져 있기에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타아낙

– 여호 12, 7-9. 21절 중 21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르단 건너편 서쪽, 레바논 골짜기에 있는 바알 가드에서 세이르 쪽으로 솟은 할락 산에 이르기까지 그 땅의 임금들을 쳐 죽였는데, 그 임금들은 이러하다. 여호수아가 지파별 구분에 따라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소유지로 나누어 주었는데, 산악 지방, 평원 지대, 아라바, 비탈 지대, 광야, 네겝으로서,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의 땅이다. 그 임금들은 예리코 임금 하나, 베텔 근처 아이 임금 하나,…타아낙 임금 하나, 

므기또임금 하나….

– 여호 17, 11: 이사카르와 아세르에도 므나쎄의 소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엔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므기또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다. 셋째 성읍은 바로 네펫이다.

– 여호 21, 1-2. 25절 중 25절: 그때에 레위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엘아자르 사제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가문 우두머리들에게 다가갔다. 가나안 땅 실로에서 레위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살 성읍과 가축을 키울 목초지를 내주라고,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셨습니다.”… 므나쎄 반쪽 지파에서는 타아낙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갓 림몬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두 성읍을 내주었다.

– 판관 1, 27-28:므나쎄 지파는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그리고 도르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 므기또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에 사는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가나안족은 계속 그 땅에서 살기로 작정하였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다음에 가나안족에게 노역을 시켰지만, 그들을 쫓아내지는 않았다.

– 판관 5, 19: 임금들이 모여 와 싸웠네. 그때에 므기또의 물가 타아낙에서 가나안 임금들이 싸웠네. 그러나 은 노획물은 얻지 못하였네. 

– 1열왕 4, 11-13절 중 12절: 또 솔로몬의 딸 타팟을 아내로 삼은 아비나답의 아들이 도르의 고지대 전체를 맡고,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타아낙과 므기또, 이즈르엘 아래 차르탄 곁에 있는 벳 스안 전체와, 벳 스안에서 아벨 므홀라에 이르는 지역, 곧 요크므암 건너편까지를, 그리고 게베르의 아들이 라못 길앗을 맡았다. 그의 지역은 길앗에 있는 므나쎄의 아들 ‘야이르의 부락들’과, 바산의 아르곱 지역에 있는, 성벽과 청동 빗장을 갖춘 큰 성읍 예순 개였다.

– 1역대 7, 29: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므기또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도르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은 므나쎄 자손들의 손에 돌아갔다. 이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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