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성조 아브라함, 이사악, 그리고 야곱 이야기

우리 믿음의 성조 아브라함, 이사악,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 이후부터 전개됩니다.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따라 그들의 이동 과정과 삶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글의 순서



1. 성조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동 경로

전승에 따른 성조 아브라함의 가나안 땅으로 이주

이스라엘의 믿음의 성조 아브라함의 이주 기사는 그들이 고대 근동의 위대한 두 하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문명과 연관되어 있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나왔으며, 후에 이집트와 관련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칼데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의 달 신(god)인 신(Sin)을 숭배하는 유서 깊은 도시로 기원전 3천 년 대 말에 한동안 거대한 무역 제국을 다스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유목민이었던 칼데아인들이 철기시대 초에 이곳에 정착해서 기원전 7세기 무렵 바빌론에 수도를 정하고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하란은 메소포타미아 상부의 주요 교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어요. 족장의 가족이나 친척들 중 몇 명의 이름은 이 하란 부근 도시들과 같은 이름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란과 나호르는 기원전 18세기 마리 문서에, 텔 테라(Tell Terah)와 스룩은 후기 아시리아 문헌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스켐)에 거주하였”(창세 12,6)으나 이집트의 초안보다 칠 년 전에 세워졌다는 헤브론에는 아모리(아무리)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초안은 기원전 11세기 무렵 페르라메수(피람 세스) 부근의 수로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삼각주의 새 수도로 건설되었습니다. 족장 일행이 가나안에서 접촉하게 된 다른 민족은 미디안 사람들(이스마엘 사람들)과 필리스티아 사람들이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람세스 3세가 기원전 1174년경 (재위 8년) 에게해 지역 침략과 더불어 지중해 동부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기원전 10세기에 목초지 지역에 나타났지요.

가나안 땅의 아브라함과 이사악 경로

성조들은 트랜스요르단(오늘날의 요르단)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고, 시스요르단(오늘날의 이스라엘)에서는 스켐에서 베텔을 경유하여 헤브론에 이르는 산지의 분수령 경로로만 이동 했습니다. 이들은 네겝 곧 브에르 세바와 그 부근에서도 거주했지요. 이들의 생업은 소규모를 가축을 치는 일로 계절마다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며, 스켐과 그라르, 그리고 베텔과 헤브론 같은 중심 도시들과 공생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브에르 세바에서 “케데스와 수르” 사이의 시나이 광야를 여행했는데, 이런 모습은 이집트 삼각주 동부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니던 세이르 산의 에돔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은 그라르 땅에서도 머물렀다. 이사악은 도시에 거주지를 얻어 곡물 생산을 하자 지역 주민들의 시기로 방해를 하자 다시 브에르 세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에르 세바는 그라르 왕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영토 주변에 위치했던 것 같습니다. 족장들은 그라르 사람들과 별다른 충돌이 없이 그곳에 살 수 있었지만, 그라르 왕은 계약을 맺어 관계를 합법화하고자 했지요. 가뭄이나 기근이 들면 족장들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2.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

네 왕이 “평지에 있는 도시”의 다섯 왕들-소돔 임금 베라, 고모라 임금 비르사, 아드마 임금 신압, 츠보임 임금 세므에베르, 그리고 초아르 임금-을 치러 오는 창세기 14장 사건은 성경에 보존된 가장 오래된 군사 전승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 형성 이전의 지리 정보를 담고 있는데, “벨라 곧 초아르”와 같은 예로 성읍 대부분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은 고대 전승을 존중하는 동시에 당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처럼 옛 지명에 당대의 이스라엘 지명을 함께 언급하고 있지요. 이 전승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도 역사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며, 소돔이나 고모라 등의 성읍도 고대 근동 문서들에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이동 경로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 관한 족장 이야기 후반부의 활동 무대는 거의 중앙 산악지대에 제한되어 있어요. 에사우는 당시 세이르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유다와 타마르 이야기에는 양을 치는 가나안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 무대는 세펠라 북부 지역, 즉 세펠라(평지)와 유다 산지를 가르는 ‘골(trough)’ 모양의 지형인 엘라 골짜기의 교차점 부근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와는 다르게 야곱은 트랜스요르단(오늘날의 요르단)을 경유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명확히 그려주고 있습니다. 야곱과 식솔들은 하란 지역에서 나왔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접촉한 세계는 이집트였지요. 요셉은 도탄 계곡을 지나는 무역대상에게 팔렸는데, 이 계곡은 투트모스 3세가 기록해 놓은 것과 같이 이즈르엘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쪽 경로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먼저 이집트를 오가다가 마침내는 야곱 자신도 식솔을 거느리고 삼각주 동부 고센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라메세스(창세47,11)’에서 가장 좋은 “고센 땅”이라는 곳에 살도록 허락을 받았지요. 라메세스(‘람세스의 집’이라는 뜻)은 전에 힉소스 왕조의 수도인 아바리스가 있던 곳에 세워진 도시로, 제19,20 왕조의 북부 수도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원전 12세기 말 라메세스 옆쪽 나일강 지류가 토사로 막혀 버리면서 제21 왕조의 파라오들은 초안(타니스)에 새로운 수도를 세워야 했지요. 그들은 폐허가 된 라메세스에서 수많은 조각상, 석비, 건축 장식물 등을 뜯고, 헐어서 새로운 수도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제22 왕조도 삼각주 지역 부바스티스에 수도를 건설하였는데, 이번에도 라메세스의 폐허에서 조각상 등을 옮겨다 놓았지요. 기원전 4세기 동안에는 초안과 부바스티스 두 곳에서 신격화된 라메세스 숭배가 이루어졌으며, 펠루시움이 이집트의 관문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후대의 유대 저술가들은 초안을 라메세스(시편 78, 12.43)이나 비톰(타르굼)으로, 펠루시움을 라메세스(타르굼, 요세푸스)과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희랍어 70인 역 성경은 비톰을 헬레오폴리스(성경의 ‘온’)로 라메세스 지역의 고센은 와디 투밀라트(Wadi Tumeilat)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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