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 사이다/ 메로즈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 하초르 지역 2)

벳 사이다와 메로즈는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 하초르 지역에 속하는 고을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벳 사이다로 추정되는 장소가 두 곳이 있습니다. 메로즈는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하초르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전쟁할 때 참여하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지요. 이번에는 벳사이다 추정지와 메로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의 주변 도시들- 벳 사이다 추정지인 엣 텔과 엘 아라즈)

글의 순서



1. 벳 사이다 1 (텔 베이트 체이다, Tel Beit Tseida)

벳사이다(어부의 집)는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 자주 방문하셨던 세 개의 고을(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 중의 한 곳으로 4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부 출신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가 이 고을 출신입니다.

벳 사이다의 추정지인 엣 텔 유적지 모습

1) 위치: 32º 54’ 37. 05” N 35” 37’ 50. 43” E



사실 벳사이다의 위치는 거의 2천 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비잔틴 시대 때부터 방문했던 수많은 성지 순례자들, 십자군들, 그리고 학자들이 정확한 장소를 찾아 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와 비로소 베네딕도 수도회의 바르질 픽스너(Father Bargil Pixner) 신부에 의해 이곳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발견된 장소가 바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픽스너 신부의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고학 발굴을 통해 벳사이다 지역이었던 것이 밝혀졌지요.

현재에도 벳사이다를 가 보면 갈릴래아 호수에서 너무 멀리 위치해 있어 예수님께서 물위를 걷는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지…? 혹시 성경에 묘사된 벳사이다가 맞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생깁니다.

2) 엣 텔 (Et-Tell)로 불리는 벳 사이다

벳 사이다로 추정되는 엣 텔은 오늘날 현무암으로 지어졌던 건물 폐허만 남아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상태입니다. 한때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가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에서 많은 활동을 하시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마르 8,22-26; 루카 9,10). 눈먼 이를 고치시고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던 곳이기도 하지요. 우리 기억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장소이지만, 안타깝게도 서기 1세기가 지나면서 그 역사적인 현장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 엣 텔을 벳 사이다로 볼 수 있는 가능성들

  • 1)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요르단 강이 흐르는 깊은 계곡을 끼고 위치해 있는 까닭에 시리아-아프리카 단층 지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진에 의해 벳사이다가 갈릴레아 호수에서 밀려 올라갔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2) 갈릴래아 호수는 고대보다 해수면이 많이 내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주변에 거주 인구가 증가하고, 농경지에 필요한 관개수로 이용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막달라에서 발견된 항구를 통해 그 때 당시 해수면이 지금보다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3) 지질학자들은 이제까지 일어났던 지각 작용과 요르단 강에서 쌓인 퇴적물들에 의해 언덕이 형성되어 이 지역이 호수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지금은 현재의 벳사이다를 부인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확실히 예수님의 활동지이며 베드로의 고향으로 판명이 된 것이지요.

3) 벳 사이다(엣 텔)의 고고학 역사



1)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통해 이곳은 기원전 10세기 경에 이스라엘 통일 왕조 시대에 다윗과 정략결혼을 했었던 그수르 왕 탈마이의 딸 마아카의 고향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아카는 압살롬의 어머니입니다. 압살롬이 제일 큰 형인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 숨었던 장소가 바로 외할아버지 그수르 왕의 영토였던 것이지요(2 사무 3, 3; 14,32).

고고학 용어로 엣 텔(Et-Tell)이라 알려진 이곳은 청동기와 철기 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했습니다. 고고학 유적 5번층에서 그수르 이후 8세기의 도시 성문이 발견되었는데요.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흔적으로 보아 성문은 기원전 10세기의 그수르 성문에 더 흡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제2 철기 시대 요르단 계곡 동쪽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도시였을 겁니다.

2018년 7월 발굴 때에 도시 성문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성문은 제1 성전 시대의 성경의 ‘제르(Zer)’였을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지요.



2) 헬레니즘, 로마 시대

엣 텔은 기원전 1세기 경에는 청동기나 철기 시대보다는 적은 인구가 거주했습니다. 발굴을 통해 1세기의 그물과 그물을 수선하던 그물코, 그리고 고기잡이 도구들이 발견되었지요. 이런 유물들은 갈릴래아 호수가 대부분의 고을들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이 경제의 근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기원전 143년 경에 주조된 두 개의 은화와 슬라브 구리, 하스모니아 왕조의 알렌산더 얀네우스 시대(기원전 103년-76년)에 주조된 구리 동전들, 바산 지역을 다스렸던 필립보 시대(기원전 4년-기원후 34년) 동전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울란과 바산 지역의 영주였던 헤로데 필립보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딸인 율리아의 이름 따라 이곳 이름을 ‘벳사이다 율리아스(그리스어로 Ἰουλιάδα)’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4) 성경 속의 벳 사이다

  • 요한 1,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 요한 12,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 마르 8, 22: 그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 마태 11, 20. 21와 루카 10, 13-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 벳 사이다 2: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발견된 고을 터, 알 아라즈(Al-Araj, Beit HaBeck)



‘벳사이다’의 또 다른 후보 유적이 갈릴래아 호숫가 북쪽 주변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유적은 ‘알 아라즈(Al-Araj)’라 불리는데요.

(벳 사이다 추정지인 알 아라즈 유적 모습)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래비우스에 의하면, 기원전 30년 또는 32년 경에 헤로데 필립보 2세는 가울란 하부 지역에 벳사이다를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라 ‘율리아스’로 바꾸었습니다. 이곳은 요르단 강이 흘러들어 가는 갈릴래아 호수 입구에 가까이에 있지요. 벳사이다 율리아는 요르단 강 동편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인적이 드문 목초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잠시 쉬시려고 이곳으로 오셨습니다(마르 6,31; 루카 9,10). 군중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습니다.(마르 6, 33)” ‘외딴 곳’은 아랍어로 가축들을 방목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푸른 풀밭(마르 6,39),’과 ‘ 풀이 많았다(요한 6,10)’라는 표현을 보면 높은 초원이 그리 많지 않은 높은 골란 고원보다는 풀이 많이 자라는 비옥한 토양인 어떤 특정한 장소를 ‘벳사이다’로 볼 수도 있습니다.

2017년에 고고학자들은 엘 아라즈에서 로마 제국에 한 도시 유적임을 증명해 주는 로마식 목욕탕을 발견했습니다. 이 목욕탕은 250-300년에 무너졌던 것으로 보이는 비잔틴 시대 유적의 진흙과 덤불에 가려져 있었지요.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유적도 발굴했습니다. 이는 성당은 기원후 750년 순례를 했던 여행자들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이런 고고학 증거물로 보았을 때, 고고학자들은 엘 아라즈(el-Araj)가 벳사이다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3. 메로즈(Meroz [מרוז] )/ 키르벳 마루스(Kh. Marus)

1) 메로즈의 위치: 33º 01’ 53.96” N 35” 31’ 50. 28” E

2) 메로즈의 특징과 역사

메로즈는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주님의 천사가 주님을 도우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하라는 성읍으로, 성경에 한 번 기록된 곳입니다(판관 5, 23). 메로즈는 드보라의 군대가 싸우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았음에도 도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독한 저주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메로즈는 하초르 부근에 있는 키르벳 마루스(Kh. Marus)로 추정됩니다. 키르벳 마루스는 호르밧 마리스(Horbat Parish)라고 불리기도 하며, 제 2 성전 시대의 거주지와 기원후 66년의 로마 항쟁 기간에 요새화된 거주지였으며 기원전 4-5세기에 지어진 유다교 회당의 유적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에는 유다인들의 거주지였지만 16세기 부터는 무슬림들이 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1948년 이후에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메로즈

  • 판관 5, 23: ‘메로즈를 저주하여라.’ 주님의 천사가 말한다. ‘그 주민들을 저주하여라. 그들은 주님을 도우러, 용사 되어 주님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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