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발현지- 멕시코의 과달루페 (GUADALUPE, 1531)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 성지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성모님 발현에 대한 첫 공인을 받은 곳입니다. 과달루페에서의 성모님 발현 역사와 공인 과정, 그리고 성지에 대한 전반적인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과달루페 성지의 특징

멕시코의 과달루페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함께 세계 성모님 발현지 중 3대 성지로 인정받고 있지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성모님 발현을 공인한 이후로 최초로 공인을 받은 성지이기도 합니다. 과달루페에서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후 7년 동안에 거의 8백만 명이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는 기적이 일어났는데요. 이는 당시 멕시코 인구 전체와 비슷한 숫자라고 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는 성인품에 오르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첫 해 순방하셨고, 생전에 네 번을 방문한 성지이기도 합니다.

과달루페 성지 풍경

2. 성모님 발현

1) 첫 번째, 두 번째 발현 (1531년 12월 9일 토요일 새벽; 오후 5시 경)

가톨릭 신자가 된지 얼마 안되는 후안 디에고(당시 57세)는 1531년 12월 9일에 새벽 일찍 일어나 틀라텔로코에 위치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으로 미사를 봉헌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테페약 언덕을 넘어갈 때, 그는 언덕 정상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들었어요. 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답니다. 곧바로 “후안 디에고!”라고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언덕 정상으로 올라갔어요. 그곳에는 빛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구름 속에 서 있었지요. 그분은 디에고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하였습니다. 

테페약 언덕

그 여인은 멕시코 원주민과 스페인 백인의 혼혈 모습인 에스티소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와 갈색 피부를 하고 찬란한 황금색 별무늬가 그려진 청록색 망토를 입고 있었어요. 그 분은 원주민의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디에고한테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는 자여, 너는 내 말을 명심해 듣도록 하여라.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구원과 보호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곳에 하루 빨리 성전을 세우기 바란다. 나는 모든 사람이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너는 주교에게로 가서 나를 위한 성전을 세우도록 하고,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그래서 디에고는 1528년 12월에 멕시코의 첫 주교로 온 후안 데 수마라가를 주교관에서 힘들게 만났습니다. 디에고가 성모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지만 주교는 이해하지 못하고는 다음에 한가할 때 만나자고 했답니다. 디에고는 자신의 임무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깨닫고 그냥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 

디에고는 쉬지 않고 걸어서 오후 오후 5시경에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덕 정상에서 성모님이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는 주교관에서의 일을 성모님께 자세히 설명하고 자신보다 그분의 메시지를 더 잘 전해줄 덕망있는 사람을 보내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그를 선택하신 것은 이 일을 위한 것이라며, 내일 아침 다시 주교에게 가라고 하셨지요. 디에고 자신을 보낸 이는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라고 밝히면서 당신 메시지를 다시 전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디에고는 성모님의 말씀대로 다시 믿음을 갖고 주교님을 만나 수락 여부를 받아 알려 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러고 다음 날, 해가 질 무렵에 다시 뵈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2) 성모님의 세 번째 발현 (1531년 12월 10일 일요일 오후 3시경)

1531년 12월 10일은 주일이었습니다. 디에고는 미사를 봉헌한 후 주교를 만나러 갔지요. 그는 주교에게 성모님을 만나 대화했던 내용을 확신하며 상세히 설명하며 메시지를 다시 전달했어요. 그러나 주교는 디에고의 진지함은 이해했지만, 믿음이 가지 않았답니다. 그가 어떤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찾아 올 때는 성모 마리아라는 믿을 만한 표징을 가져오라고 했지요. 주교의 요구대로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러 테페약 언덕으로 오후 3시경에 올라갔습니다. 디에고의 말을 들으신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교가 요구한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줄 테니 내일 이곳으로 오너라. 네가 그것을 가져 간다면 더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일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3) 네 번째, 다섯 번째 발현 (1531년 12월 12일 화요일 이른 아침)

12월 10일, 디에고는 숙부 베르나르디노가 열병으로 인해 매우 위독한 상태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숙부의 병이 악화되어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요. 저녁 때, 숙부는 임종이 다가 왔다고 생각하여 디에고에게 내일 병자 성사를 집전해 줄 신부님을 모셔와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12일 아침에 신에고는 신부님을 모시러 테페약 언덕을 지나 가다가 혹여 성모님을 만나면 시간이 지체되어 숙부의 병자성사를 놓치게 될까봐 다른 길로 돌아 가기로 했지요. 그러자 디에고가 가고 있는 언덕 중턱까지 성모님이 오셔서 그에게 물으셨답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디에고는 당황하고 부끄러웠지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은 “잘 알아 두어라. 이제 네가 두려워할 일은 없다. 숙부의 병은 이미 나았음을 믿어도 된다. 가거라. 네가 나를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있을 테니 그것들을 따서 이곳으로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12월이었고 테페약 언덕은 바위투성이로 된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디에고는 장미가 피어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언덕으로 가 보니 놀랍게도 장미가 피어 있었습니다. 디에고가 장미를 따서 자신의 틸마(망토처럼 생긴 원주민의 겉옷)을 앞쪽으로 펼쳐 장미를 담아 가져왔어요. 그러자 성모님은 “이 장미를 주교에게 가져가 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에고는 장미를 담은 틸마를 가지고 주교에게 갔습니다. 낮 정오 즈음에 그가 주교 앞에서 탈마를 펼치자 장미꽃들이 떨어지면서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한겨울에 디에고가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 지역에서 피는 장미를 가져오고, 장미를 담아 온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믿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지요. 틸마를 자신의 기도소에 보관하고 디에고와 함께 테페약 언덕으로 갔습니다. 디에고가 성모님이 나타나신 곳을 알려주자 주교는 그곳에 성모님의 명령에 따라 우선 작은 경당을 세우기로 했지요.

디에고가 주교를 찾아간 동안 성모님은 병 중에 있던 숙부 베르나르디노에게 다섯 번째로 나타나셨습니다. 성모님은 그를 위로하시며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답니다. 성모님은 테페약 언덕에 성전이 세워지면 틸마에 새겨진 당신 모습이 담긴 성화를 그곳에 안치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이름을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부르도록 하셨지요. 성모님은 ‘(돌) 뱀을 물리친 여인’이란 뜻의 아즈텍어인 “테 과틀라소페우” (Te Coatlaxopeuh)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베르나르디노가 ‘테 과달루페’로 알아들어 그때부터 계속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즈텍어로 ‘테(Te)’는 돌, ‘과(Con)’는 뱀, ‘틀라(Tla)’는 명사형 어미 the, ‘소페우(Xopeuh)’는 ‘쳐부수다’라는 뜻이라고 해요. 병에서 회복한 숙부는 디에고와 함께 주교에게 성화의 이름을 전해주었습니다.

3.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 당시의 시대 상황

1519년 2월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하기 위해 병사 508명 원정대를 이끌고,  배 11척, 말 16필로 유카탄반도에 상륙하여 부족들을 점령해갔습니다. 1521년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클란을 무너뜨려 제국은 멸망하였습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1531년은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 였습니다. 스페인은 그동안 먼저 금을 채굴, 수탈했는데요. 금이 점자 소진되어 가자 직접 금광을 개발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력을 착취했지요. 거기다가 스페인은 금뿐만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광물을 모두 빼앗아 가고 농산물도 수탈해 원주민은 더욱 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원주민들의 반발이 증가해 1531년은 정복자인 스페인과 피정복자 멕시코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때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테노치티틀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테페약 언덕은 아스테카 제국에서 섬기던 신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대지의 어머니 토난친의 신전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토나친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므로 원주민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여신이었지요. 

그런데 스페인은 정복하자마자 토난친 신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더 이상 신을 섬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토난친을 더 이상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원주민들에게 제국이 정복을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어요. 토난친은 그들의 삶을 유지해 주는 풍요와 생산력을 보장해 주었었는데요.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상실감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매래를 잃고 경제적으로도 수탈을 당한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던 바로 그 때 성모님이 발현하신 겁니다. 

4. 성모님 발현 장소 및 성당 건축 역사와 성모화

성모님은 멕시코의 ‘테페야 언덕’에서 발현하셨습니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테페야 언덕을 대지의 여신 ‘토난친’을 숭배하는 신성하고 거룩한 장소로 여기고 있었지요.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토난친 신전을 파괴하자 그들은 크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성모님께서 바로 그곳에서 발현하신 것이죠. 이는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그들의 미래가  다시 보장됨을 알리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테페야 언덕이 아닌 다른 장소에 발현하셨다면 7년 만에 거의 8백만 명이나 되는 원주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수 있었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에 발현하셔서, 가톨릭 교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1) 과달루페 성당의 역사

수마라가 주교는 디에고가 가져온 성모님 모습이 새겨진 틸마를 즉각 성물로 지정했습니다. 또한 이 틸마를 보존하려고 언덕 정상에 작은 경당을 세웠어요. 이 경당은 1531년 12월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경당은 햇볕에 말린 찰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해 건축되었고, 크기는 가로 세로 모두 4,5m였습니다. 원주민들과 스페인 사람들이 14일 동안 함께 세웠다고 합니다. 이전의 여신 토난친이 세워졌던 테페약 언덕에 성모님 발현을 기념하는 경당이 세워진 것이지요. 

1533년에는 작은 경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더 큰 경당이 세워졌으며, 3년 후에는 지성소를 만들어 봉헌했습니다. 

1660년에 다시 성모님 발현을 기념하는 경당이 건축되었는데요. 이 경당이 오늘날의 세라토 경당입니다. 성모화는 경당 제단에 모셔져 있고, 경당 양쪽 벽에는 성모님 발현에 관한 여섯 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지요. 세리토 경당에서는 과달루페 성지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1709년 4월에 대성당이 건축되었습니다. 세라토 경당의 성모화는 대상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 성당이 지반이 침하로 붕괴될 수 있어서 1976년에 1 만년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2) 성모화

1709년 4월 27일 대성당이 세워지고, 틸마와 성모화가 이 성당으로 옮겨졌는데요. 그런데 이 성당이 지반 침하로 인한 붕괴 위험으로 1976년에 다시 건축되었습니다. 이때 성모화도 다시 신축된 성당으로 이전되었지요. 성모화를 보기 위해서는 제단 옆에 있는 경사로로 내려가 무빙워크웨이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이곳에 보관된 성모화는 디에고의 틸마에서 오려 낸 천 조각이지요. 선인장 섬유로 만들어진 보통 천 조각은 그 수명이 20~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디에고의 천 조각은 500년이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디에고의 틸마는 크게 3개의 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2개의 천 조각에 성모님이 그려져 있지요. 성모화가 그려진 1개 천 조각은 폭이 53cm이고, 길이가 198cm인데요. 성모화의 크기는 약 85cm의 폭과 150cm의 길이로 되어 있습니다. 

과달루페 성지의 성모화

(과달루페의 성모화)

1791년에 성모화에 암모니아가 쏟아졌지만 저절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1921년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 성모화가 없어질뻔 했지만, 그때 디에고의 동상과 함께 성모화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해요. 틸마에 그려진 성모화는 진짜인지 여러번 정밀 조사를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이 결과 붓질의 흔적이 전혀 없고, 안료 역시 학계에서 보고 되지 않은 지구에는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1979년, 미국 과학자들이 우주광학 장비를 사용해 탈마 속 성모님의 눈동자를 2,500배로 확대해 보았습니다. 장미꽃이 담긴 망토를 펼치는 디에고와 수염이 달린 노인 모습을 한 주교, 짙은 피부색을 한 여인, 디에고를 바람보는 13명의 스페인 사람 등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틸마에 그려진 성모화가 드러났던 그 순간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성모님 발현 공인 과정

1531년 12월 12일 수마라가 대주교는 성모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틸마를 성물로 지정하고 발현 기념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1555년 멕시코의 두 번째 대주교였던 알론소 데 몬투파르는 성모님의 발현을 공인하는 교령을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1666년, 1723년에 다시 주교들에 의해 공식 조사가 있었습니다. 공인 제도가 처음 도입된 시기라서 이때의 공인 과정이 조금 미흡한 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후에 교황의 언급이 있었고, 봉헌과 순방이 계속 되면서 교황청의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 따라서 과달루페 성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급증해 갔습니다.

공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님을 성모님을 누에바 에스파냐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나) 1895년에 교황 레오 13세가 성모화의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다) 1910년 교황 비오 10세가 과달루페 성모님을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성인으로, 1945년 교황 비오 12세가 멕시코의 여왕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성인으로,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모든 아메리카 주민의 어머니로 선포했습니다.

라)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성모화를 보관하는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황금 장미장을 수여했습니다.

마) 1979년 1월 25~3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첫 번째 해외 사목 방문지로 과달루페를 방문했으며, 1990년 5월 6일 성지에서 후안 디에고를 시복하였습니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지어 축성하였고, 1999년 1월 22일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을 아메리카 대륙 교회 전체의 축일로 지정하였으며 다음 날에는 루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2002년 7월 31일, 1천 2 백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후안 디에고의 시성식을 거행했지요. 이와 같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에 시작해 1990년, 1999년, 2002년까지 총 네 번이나 과달루페 성지를 순방하였습니다. 성모님이 디에고의 틸마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습을 나타낸 12월 12일은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발현하신 축일로 정해졌답니다. 

바)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3년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두 번째 황금 장미장을 수여했고, 2016년 2월 13일에 직접 순방하기도 했습니다.

5. 성모님 발현의 의미

성모님의 발현과 메시지로 테페약 언덕에 있었던 토난친의 신전을 대신해 성모님을 위한 성전이 건축되었고, 성모님이 멕시코인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정복자 스페인의 수탈로 고통과 절망 속에 빠져 있던 멕시코 원주민들이 성모님을 믿으며 800만 명이 개종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지요. 성모님의 발현은 정복자와 원주민들 사이의 깊은 갈등을 해소한 것입니다. 이제는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느끼도록 해 준 것이죠.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대규모 개종은 다른 중남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쳐 가톨릭이 아메리카 대륙의 주요 종교로  인식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 국민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의 독립을 선언한 사제 미구엘 이달고 신부는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여, 영원하라. 나쁜 정부에게 죽음을!” 그들은 모두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새겨진 깃발을 들어 올렸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비록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닐지라도 과달루페 성모님을 믿지 않는다면 진정한 멕시코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199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도 과달루페 성모님은 이제 멕시코 국민들의 정신적인 요람과 국가적인 행운의 대상으로 유일무이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성모님을 ‘과달루페노(Guadalupeno)’라고 부른다고 해요. 이는 멕시코 사람 전부를 과달루페노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과달루페 성모님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6. 과달루페 성모 발현 성지 소개

과달루페 성지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성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지입니다. 넓은 광장과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이 있지요. 그리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성당과 경당이 일곱 장소가 있고요. 성지 광장 주변으로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 옛 대성당, 세례소, 포치토 경당, 산타 마리아 주교좌 성당과 옛 원주민 성당 등이 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과 옛 대성당 사이에는 과달루페를 네 번씩 방문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소 옆에는 테페야 언덕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올라온 길의 맞은 편으로 내려가면 제물의 정원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야외에 세워진 대형 성모상과 수마라가 주교, 후안 디에고, 그의 숙부인 베르나르디노, 그리고 제물을 바치는 원주민들의 동상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물의 정원에서 광장 방면으로 가면 포치토 우물 경당이 있는데요. 경당 안으로 들어가면 실제로 커다란 우물이 있습니다. 이 우물은 아스테카 시대부터 사용해 왔는데, 유황 성분이 들어 있는 이 물은 치료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성모님께서 바로 이 곳에서 후안 디에고에게 네 번째로 나타나셨고,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이 물에 강복하셨다고 믿고 있답니다. 후에 이 우물 위에 경당을 지어 봉헌한 것이죠. 다시 광장 쪽으로 가면 디에고의 오두막이 있던 곳에 세운 옛 원주민 성당이 나옵니다. 원주민들은 후안 디에고와 그의 숙부 묘지가 있어서 17세기 무렵부터 자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원주민 성당으로 불렀다고 해요. 스페인 사람들은 이 성당에는 절대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 원주민 성당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성지 광장 쪽으로 나오면 디에고가 수마라가 주교에게 틸마를 펼치는 모습의 동상과 대형 십자가 모양의 시계탑이 보입니다. 1991년에 세워진 시계탑의 위 부분에는 작은 종들이 달려 있고, 양쪽에는 일반 시계와 태양 시계가 있습니다. 매시간마다 시계와 연결된 종이 울릴 때 동시에 십자가 하단에 만들어진 원통을 통해 성모님 발현에 관한 인형극을 보여 줍니다.

7. 성지 방문 안내

과달루페 성지는 멕시코시티의 중심지 소칼로 광장에서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6호선 라 빌라바실리카(La Villa-Basilica) 역에 내려 걸어서 5분 정도 가면 성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6호선은 멕시코시티 북부를 동서로 연결하는 노선이기에 이용이 쉽지 않는데요. 그러므로 도시를 남북으로 지나는 3호선이나 4호선을 타고 나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습니다. 

지하철을 나가면 넓은 도로가 나옵니다. 성지로 이어지는 보행로가 있어 쉽게 이동이 가능하지요. 성지로 가는 길 양편으로 성물을 파는 가게들이 있으니 한번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버스는 성지 서쪽에서 6번, 7번, 115번의 정류장이 있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합니다.

구글지도(Google Map)에서 Basilica de Guadalupe 를 검색하고 따라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