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주간의 예루살렘: 과월절, 성주간 등 3대 종교의 도시 풍경

해마다 4월이 되면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의 구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분주해집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중요한 명절인 과월절이 있고, 그리스도교 인들에게는 부활절이 있기 때문이지요. 평일에도 구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종교적인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지만 4월이 되면 더더욱 그 느낌이 강해집니다. 투명하고 따사로운 햇빛, 시원하고 상쾌한 봄바람과 함께 성지 주일에 벳파게에서 예루살렘으로 행진을 하고, 성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아마 4월의 예루살렘 풍경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리브 산에서 바라 본 구 예루살렘



벳파게에서 올리브 산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전망대에서 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들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성당들과 모스크들이 있는 구 도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재물로 바치려 했다는 모리야 산 (창세 22, 1-19),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고 (1열왕 6, 1-38), 또한 2차 성전이 있었던 곳에서 마호멧트가 승천했다고 전해져 지어진 회교도의 황금 사원은 한낮의 눈부신 태양 아래 유난히 빛납니다. 다윗 왕은 7년 6개월 간의 헤브론에서의 통치를 끝내고, 여부스족들이 사는 성읍을 치고 (2사무 5, 6-12), 다윗 성을 건설합니다. 동쪽의 키드론 골짜기와 서남쪽의 힌놈의 골짜기가 깊이 형성되어 있어서 예루살렘은 높은 성벽 위에 세워진 요새의 도시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 후로 예루살렘은 약 3천 년 간 종교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와 시카리파 사람들이 모여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머무는 도시였을 것입니다. 명절 때가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이 축일들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와 도시는 사람들로 붐비고 성전에서는 끊임없는 제사와 기도로 사제들은 바빴을 것이지요. 이 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도 갈릴레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에 정기적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루카 2, 41-52). 오실 때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벌어지는 제사와 축제, 성전 내에 있는 잡상인들과 환치기(마태 21, 12-17; 마르 11, 15-19; 루카 19, 45-48; 요한 2, 13-22), 권력과 명예로 인해 배부른 사제들의 부패한 모습(마르 11, 18), 그리고 성전 가까이 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빈민굴에서 사는 초라한 서민들을 보시고 얼마나 가슴을 치며 고통스러워하셨을까요? 그래서 결국은 성전의 멸망을 예견하시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요? (마태 24, 3-14; 마르 13, 1-2; 루카 21, 5-6) 에쎄느파 사람들은 예루살렘은 부패하고 성전은 더럽혀져 하느님께서 버리셨다고 생각되어 일찍이 사해 북서쪽 광야에 모여 금욕과 기도로 정결한 생활을 하며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도시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다인들, 과월절이 되면 수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예루살렘 구 도시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다인들)

오늘날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예루살렘은 종교의 도시로 유다교, 그리스도교와 회교도의 성지로써 순례자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금요일 아침이면 수많은 회교도인들이 알 악사라는 회교 사원으로 예배하기 위해 모여 들어 구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는 모두 차단됩니다.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나 명절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날 오후가 되면 유다인들이 통곡의 벽으로 모여 들여 또한 북새통을 이루고 차들은 진입을 할 수 없지요. 이런 날 성당과 교회에서 투명하고 맑은 종소리와 회교 사원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코란 독경과 기도 소리가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울려 퍼집니다. 통곡의 벽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유다인들, 회교 사원에서 절을 하며 알라 신께 기도하는 회교도인들, 그리고 예수님 무덤 성당에서 전례를 하는 각 교회의 수도자들….

유다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종교적인 미묘한 갈등은 대부분 성전산 부근에서 표현되곤 합니다. 며칠 전 금요일 오전에는 다른 금요일 아침보다 유다인 경찰들이 구 도시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유난히 규제하고 단속하고 있었지요. 아랍인들의 휴일로써 성전산의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아랍 회교도인들의 수가 많아 교통 정리를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분위기는 너무 살벌해서 어떤 긴장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가 시온 산을 방문하고 나서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성전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온 회교도인들이 시위를 시작해 경찰과 대결하며 최루탄을 터트리는 등, 구 도시의 사람들을 긴장케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산 지하를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유다인 고고학자들이 아랍 모스크의 지하를 계속 파 내려가 모스크가 붕괴되어 무너질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회교도인들의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성전산은 유다인들이나 아랍인들에게는 너무 중요한 성지여서 결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제3차 성전을 성전산에 다시 지어 유다교 제사의 회복을 꿈꾸는 유다인들의 열망과 가장 오래된 성지인 황금 사원과 알 악사 모스크를 결코 내줄 수 없는 회교도인들의 굳센 다짐으로 인해 성전산에서의 평화란 아주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4월에는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4월의 정서가 남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셔서 과월절 축제가 시작되는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의 기도를 하시고, 대사제의 집에 갇혀 모욕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의 골고타 언덕으로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유다인들이 과월절에 문설주에 피를 바르기 위해 잡는 양처럼 그렇게 피를 흘리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요한 19, 30).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지켜보거나 지나쳤거나 그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저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 형을 당해서 죽었다고 입에서 입으로 무심히 전하였을 것입니다. 동네 밖에서 어느 순간에 일어난 일, 로마의 지배하에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빴던 사람들은 그저 남의 얘기로 흘려듣고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비애와 슬픔으로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를 걸어가는 순례자를 향해 “1 (one)달러 1(one)달러”를 외치는 오늘날의 아랍 회교도 상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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