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까지는 19.3km 정도가 되는데요. 도보로 약 5~6시간 소요가 됩니다. 에스떼야를 출발하여 야예기, 아스께따,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그리고 로스 아르꼬스까지 각 도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의 순서
산띠아고 길: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까지
1. 엘 까미노 (El -Camino): 구간(Route) 줄거리
에스떼야에서 로스 아르꼬스까지 가려면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언덕으로 오르기 전까지는 다양한 마을을 지나야만 합니다. 이곳은 19세기 전통주의자들이 까를로스 7세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자유주의자들과 전투를 치렀던 에스떼야 분지의 비탈길입니다.

순례자에게 이라체 수도원으로 이르는 숲길은 세장피드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에 이르는 피레네 산맥의 언덕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스께따로 이르는 길에서는 개암나무로 만든 근사한 순례자 지팡이를 선사하는 빠블리또 노인을 만날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순례자는 언덕 위의 마을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단을 지나면서 외로움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로스 아르꼬스에 이르는 길에서 간간히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은 딜을 걷는 동료 순례자를 제외하면 드넓은 포도밭과 농장뿐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여정은 자전거 순례자에게는 축복과 다름없는 평탄함과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순례자에게 고독함과 외로움을 주는데요. 이것은 새로운 도전임을 잊지 말아야겠죠. 외롭게 홀로 떨어져있는 마을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단에서 일곱 번째 여정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꼬스까지는 12km가 넘습니다. 이 구간에서 순례자는 어떤 마을도 만날 수 없으므로 충분한 행동식과 훨씬 많은 물을 미리 준비하여야 하는데요. 일사병이 우려되는 씨에스타 시간을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에스떼야에서 첫 번째 마을인 아예기까지는 2km 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에스떼야의 알베르게를 나와 직진하면 두 개의 주유소와 아름다운 성당 건물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고나면 도시를 빠져 나오게 되죠. 포장된 도로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에스떼야와 거의 붙어있어 도시의 일부로 여겨지는 아예기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예기에서는 포도주 수도꼭지로 순례자에게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이 눈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아예기는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알베르게 체험을 하게해 주는데요. 바로 무료로 까미노의 첫 100km를 해냈다는 증명서를 제공합니다. 아예가에서 순례자는 두 번째 마을인 아스께따로 직접 가는 오른쪽으로 난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몬떼후라 산 가까이에 있는 아라체 수도원을 거쳐 아스께따로 가기 위해 오래된 N-111 고속도로를 건너가는 직진도로를 택합니다. 아예기에서도 까미노 싸인을 잃어버리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하는데요. 하지마 ㄴ이라체 수도원을 지나는 것을 제외하고 두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라체 호텔 부근에서 다시 만나게 되므로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순례자들은 까미노를 계획하면서 책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가장 많이 보았던 장소인 보데가스 이라체에 도착하게 됩니다. 또한 포도주의 땅으로 들어온 것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한 잔의 포도주와 한 잔의 샘물은 순례자의 마음을 풍족하게 적셔주는데요. 어쩌면 이러한 것은 까미노를 빙자한 포도주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세시대 이 길을 힘없이 걷는 굶주린 순례자에게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는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지요.
나바라의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 하나인 이라체 수도원은 평지에 있는 보데가스 이라체를 지나야 합니다. 수도원을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한번쯤 머물고 싶은 이라체 호텔에 도착하게 됩니다. 호텔의 뒤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산 미겔 들판을 지나 자동차 전용도로 아래를 지나는 터널을 통과하면 까미노는 바위투성이 산 위에 펼쳐진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으로 난 구부러진 길을 따라 가면 이내 언덕 위의 작은 마을 아스께따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스께따는 마을광장 근처의 시원한 샘물 이외에 특별한 서비스는 없습니다.
아스께따에서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까지는 1km가 채 되지 않는데요. 마을을 지나는 자동차 도로를 왼쪽으로 두고 마을을 나와 농장지대로 나서기 위해서 마을을 오른쪽으로 돌아나갑니다. 포도밭으로 난 까미노를 따라 걷다 보면 두 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는 무어인의 샘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샘터를 지나고 일곱 번째 여정의 가장 높은 마을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단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이 마을은 언덕 위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조그만 까미노 마을로 성벽에 맞대어져 있는 바로크의 화사한 탑이 있는 아름다운 성 안드레아 성당이 인상적입니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단을 떠난 이제 끝날 것 같지 않는 아득한 까미노를 따라 아주 큰 포도밭 사이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르비욜라와 N-111 도로를 검정 버드나무 숲의 왼쪽으로 보면서 걷기 시작하는 이 길에서는 까미노 싸인이 잘 표시되어 있으며 직진으로 나가는 넓은 농지를 지나기 때문에 로스 아르꼬스까지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3시간이 넘게 탁 트인 공간을 침묵하면서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 길을 가기 전에 물통을 채울 수 있는 기회는 아루비욜라(Urbiola)에서 올레후아(Olejua)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와 만나는 교차점에 있는 우물입니다. 로스 아르꼬스에 도착하기 약 2km 전 왼쪽에 있는 소나무 숲 이외에는 따가운 스페인의 햇살을 피할 그늘조차도 없기 때문에 해가 따가운 시간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스 아르꼬스는 15세기와 16세기를 거치면서 가스띠아 왕국과 나바라 왕국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로서 두 왕국 어느 곳에도 세금을 내지 않으며 두 왕국의 상업적 특성을 잘 이용해 부를 축척했던 마을이었습니다. 발코니가 있는 아름다운 집들 사이의 조그만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길은 어느새 조그만 광장 왼쪽으로 아름다운 산따 마리아 성당을 지나 까스띠아 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알베르게는 무네스로 향하는 도로를 건너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면 정면에 보입니다.
2. 아예기(Ayegui)
아예기는 해발 440m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산초 가르세스 4세의 양도로 이라체 수도원에 소속된 중세 교회의 영지였던 아예기는 이웃한 에스떼야의 도시화에 밀려나지 않고 전원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근처에 에스떼야가 있고 몬떼후라, 이라체 수도원 등이 있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도 있습니다. 특히 이라체 포도주 창고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맛 좋은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데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한 잔의 포도주는 힘든 길을 걷는 순례지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줍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까미노의 수호성인 성 베레문도
성 베레문도(San Veremundo)는 11세기에 이라체에서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가 되고 싶었지만 거절당한 후 수도원의 문지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수도원에서 나오는 빵 조각을 조금씩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수도원장이 옷 속에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린 베레문도는 약간의 빵 조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그 빵 조각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때마다 빵 조각이 커져서 나왔다고 합니다. 성 베레문도는 순례자를 돕고 흑사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힘썼다는 내용이 많이 전해집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 많은 내용은 그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을 개선하기 위해 많이 노력을 했는데요. 나바라 정부가 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도원 병원을 세우고 까미노가 지나는 지역에 사람들을 거주하게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성 베레문도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와 함께 순례자를 위해 헌신했던 동시대의 3대 까미노 성인 중 하나입니다. 그들 덕에 순례자가 지나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많이 좋아졌다고 전해집니다.
ii)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
수도원을 나오다 보면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한 수도꼭지가 나옵니다.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요. 한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보통 수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수도꼭지에서는 포도주가 나옵니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다녀온 순례자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 잔의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2)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이라체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ia de Irache)
베네딕토 수도회의 오래된 수도원인 이라체 수도원에 대한 기록은 958년부터 나옵니다. 공식 명칭이 산따 마리아 데 이라체 수도원인 이 수도원은 근처에 에스떼야와의 연결로 점점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곳의 전성기는 11세기에 수도원장 베레몬도가 이곳을 순례자를 위한 병원으로 바꾸었을 때였다고 하는데요. 바로 순례자를 위한 나바라의 첫 번째 병원이었습니다.
12세기에 오늘날의 성당 건물을 건축하기로 계획하면서 전성기는 계속되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12세기 중반에 후진과 십자가상도 완성되었습니다.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수도원 건물에는 새로운 양식이 시도되었는데요. 성당 동쪽에 붙어 르네상스 양식의 회랑이 추가되었고, 다른 건물들도 생겼습니다. 17세기 초에 베네딕도 수도회의 학교가 생겼고 대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이곳은 까를리스타 전쟁 중에는 전시 병원이었는데요. 몰라 장군이 주재한 모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수도원 건물은 방치되었지만 1885년엔 유럽의 스콜라 철학 단체가 자리를 잡았었습니다. 지금은 국영 호텔인 빠라도르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드리드의 산 로렌조 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커다란 탑은 에게라 스타일이며 세 개의 회랑은 17세기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해줍니다. 이라체 수도원의 플라테레스코 양식 회랑은 독특함을 갖고 있습니다. 회랑의 처음 반은 트리엔트 공의회 직전에 건축되었고 나머지 반은 공의회 직후에 지어졌습니다. 반종교개혁이 진행된 공의회에서는 주두 장식을 제한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회랑의 처음 반은 누드 인물화도 자주 나타나고 해부학적으로도 세심하게 묘사된 주두가 있으며 나머지 반은 완전히 종교적인 장면으로만 가득합니다.
ii) 포도주의 샘(Fuente del Vino)
까미노를 대표하는 이 수도꼭지는 보데가스 이라체라는 포도주 제조업체가 만들었습니다. 네모난 돌 위에 새겨져 있는 문구처럼 싼띠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3. 아스께따(Azqueta)
아스께따는 해발 570m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언덕 위에서 농경지에 둘러싸여 있는 아스께따에서는 평온함과 조용함을 느낄 수 있고요. 로까스 한 우르바사 산, 몬떼후라 산, 몬하르단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스께따와 인접해 있는 푸엔떼 데 라 뻬냐(Fuente de La Pena)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 샘이 있다고 합니다.

1)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산 뻬드로 아뽀스톨 성당(Iglesia de San Pedro Apostol)
산 뻬드로 아뽀스톨 성당은 13세기에 건축된 중세의 성당 건물을 16세기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바꾸어 재건축한 것입니다.
4.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Villamayor de MonJardin)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은 해발 673m에 위치한 산자락에 있는 마을입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마을인데요. 싼 에스떼반 성의 폐허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나바라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이 성을 점령했었으나 이슬람의 왕 바누 까시에게 빼앗겼는데요. 이 사건으로 인해 에브로 강의 비옥한 분지를 차지하기 위한 레콩키스타가 시작되었습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십자가의 팔과 양치기 팔의 전설
산 에스떼반 상에서 이슬람인들을 정복했던 전투가 일어났던 날 새벽에 나바라의 왕 산초 가르세스 1세에게 아름다운 십자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왕은 전투가 어떻게 될지 확신이 없었고 혹시 이슬람교도들에게 십자가를 빼앗길까 봐 십자가를 숨겨놓았는데요. 전투가 끝난 후 왕은 십자가를 다시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그 후 한 목동이 가시나무 앞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까지 잊혀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목동은 해로운 짐승이 숨어 있는 줄 알고 가시나무를 향해 돌을 힘껏 던졌습니다. 자기가 던진 돌에 아름다운 십자가의 한쪽 팔이 부서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동이 절규하며 “십자가에 돌을 던지기 전에 제 팔을 말라붙게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라고 하자, 목동의 팔이 말라붙어버렸다고 하는데요. 그 후 십자가를 다른 장소로 옮겼으나 십자가는 계속해서 처음의 가시나무 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성안드레아 성당으로 불리는 비야마요르 성당을 짓게 되었고 신심이 돈독한 목동의 팔은 회복되었습니다.
ii) 샤를마뉴와 죽은 기사들의 전설
나바로의 장군 프레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샤를마뉴는 하느님께 부하 중 누가 죽게 될 것인가를 알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이 사를마뉴 기사 150명의 갑옷에 빨간 십자가를 표시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샤를마뉴는 이 기사들을 쉬게 하고 다른 기사들과 푸레를 치고 돌아왔으나 이미 그 150명의 기사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iii)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Iglesia de San Andress Apostle)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은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신랑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반원형 후진이 있습니다. 신랑의 천정은 궁륭으로 덮여 있고 반원주의 주두 장식은 양식화된 식물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과 아치, 키로, 아름다운 주도 장식과 더불어 성모자상, 기사들의 전투를 표현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탑은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입니다. 성당 안에는ㄴ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행진용 대형 십자가가 은으로 싸인 성자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이 십자가는 나바라의 로마네스크 양식 금은 세공 작품 중 가장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iv) 몬하르딘 성(Castillo de Monjardin)
9세기에 지어진 몬하르딘 성은 10세기에는 데이오 빰쁠로나 왕조의 요세로 10세기에 산초 가르세스가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요새입니다. 산 에스떼반 데 데이오 성(Castillo San Esteban de Deyo)으로도 불리는 이 성은 14세기에 보수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v) 무어인의 샘(Fuente de los Moros)
무어인의 샘은 바이마요르 데 몬하르딘으로 들어오기 전 까미노 위에 있는 13세기 풍의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진 샘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로 들어서기 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5.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로스 아르꼬스는 덤블과 로즈마리, 침엽수가 있는 언덕 발치에 위치한 마을(해발 447m)인데요. 조그만 농업 도시이기도 합니다. 옛날부터 까스띠야와 나바라 왕국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현명왕 산초가 발데곤 전투 후에 쿠르노니움의 로마 시대 마을이 남아 있던 곳에 로스 아르꼬스를 건설했습니다. 도시가 건설되고 왕은 마을 사람들의 용기를 치하하여 활이 그려진 그림을 하사하며 이 마을을 아르꼬스(Arcos: 활 모양)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 후 프랑크 왕국의 상인이나 환전상 등 유다인ㄷ르이 이곳에 많이 살았는데요. 이들은 2,3층으로 석재와 벽돌로 만들어진 집에 살았습니다. 이 집들은 모두 발코니가 있으며 문장이 새겨져 있고 난간이 있는 집이었다고 합니다.
로스 아르꼬스는 까롤리스따 전쟁, 독립전쟁까지 수많은 군대가 지나간 곳입니다. 리베르 페레그리나티오니스라는 책에서는 로스 아르꼬스에 대해 에스떼야와 관계가 안 좋고 오드론 강의 물은 마시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요. 펠리페 2세(Felipe II)의 호위병이었던 엔리케 콕이란 사람은 1592년에 이곳을 “포도주, 빵, 광일, 사냥, 전투, 상업의 땅”이라고 묘사했습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1년에 한 번 볕을 쬐는 성모상
산타 마리아 성당의 아름다운 복도 한가운데에는 그늘에서 보관중인 성모상이 있는데요. 이 성모상은 6월 15일에만 햇빛에 내놓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싼 후안 데 오르떼가의 성모영보 주두와 비슷합니다.
2)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산따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성당은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는 변화가 느껴지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성당입니다. 십자가 평면의 성당은 그리스와 로마식 신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16세기에 보수되어, 성당의 일부 요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반종교개혁으로 내부의 장식이 변화되었으며 나바라 왕국이 가지는 바로크 양식의 풍성함과 특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외부에는 거대한 쿠폴라와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아름다운 르네상스 풍의 탑이 있습니다. 팔각형의 이 탑은 산띠아고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가장 높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탑 중의 하나입니다. 성당의 내부를 장식한 벽화들은 부르고스 출신의 끄리스또발 곤잘레스의 작품인데요. 꼬르도바 가죽가공을 차용하여 나무와 은 위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1561년에 만들어졌다는 바로크 장식이 아름다운 합창대의 각석과 그 아래에 만들어진 고딕양식의 회랑은 순례자를 위한 저녁 미사를 마친 순례자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ii) 까스띠아 문(Puerta de Castilla)
산따 마리아 성당 옆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까스띠야 문은 17세기에 만들어졌고 1739년 펠리페 5세에 의해 보수되었습니다. 로스 아르꼬스를 나설때는 이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요. 문을 나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알베르게를 찾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