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레떼에서 나헤라에까지 가는 열 번째 여정은 지금까지 여정 중에 가장 쉬운 코스로 볼 수 있습니다. 나바레떼를 출발하여 완만한 포도밭 길을 지나면 중간 기착지인 벤또사(Ventosa) 마을을 거치게 되는데요. 벤또사 이후에는 나헤라로 향하는 언덕을 하나 넘게 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이 일품입니다. 나바레떼를 출발해 벤또사를 거쳐 나헤라로 가는 까미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
1. 엘 까미노(El Camino): 구간(Route) 줄거리
나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의 구간은 벤또사를 향하는 오르막과 구간의 가장 높은 언덕인 산 안똔 언덕(Alto de San Anton)을 오르는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힘든 구간이 없으며 이 오르막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나바레따를 나와 벤또사의 언덕길을 오르기 전 까미노를 따라 내리막을 가다 보면 1986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벨기에 순례자 엘리스 그래이머를 주모하는 기념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죽음에서 알 수 있다시피 고속도로 N-120의 확장으로 과거의 까미노 구간이 바뀌면서 자전거 순례자에게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특히 마을을 나와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걷게 되는 1km 이상의 구간에서는 꼭 주의를 해야 합니다. 순례자는 왼쪽으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후 길은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지나는 고속도로와 가까와졌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4개의 교차로를 건너 이어집니다. 순례자는 소떼스(Sotes)에서 나오는 길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고속도로를 향해 진행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샛길로 들어가야 합니다. 소떼스의 잘 알려진 포도주 양조장의 포도밭 사이로 왼쪽으로 조금 비스듬히 샛길을 따라 까미노를 걷다 보면 나지막한 언덕 기슭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벤또사가 내려다 보입니다.

작고 조용한 마을인 벤또사에는 까미노의 공식 협회 중의 하나인 산 사뚜르니노 협회에서 운영하는 아름답고 친절한 알베르게가 있습니다. 마을의 출구를 나온 순례자는 가파른 오르막을 통해서 산 안똔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 오르막에서 순례자는 과거 이곳에 있었던 안또니아노스 수도원의 유적을 지나지며 잠시나마 까미노의 허망함을 느낄수도 있는데요. 산 안똔 정상에서는 편안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어 멀리 보이는 나헤리아의 계곡과 열 번째 구간의 목적지인 나헤라까지가 축복받은 포도밭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급경사를 지나면 순례자는 나헤리아 계곡을 따라 걸으며 까미노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N-120 고속도로와 만나게 되는 지점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요. 계속 걷다 보면 순례자의 왼쪽으로는 높이 솟아있는 높은 안테나와 불모지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내 얄데 강 위를 지나는 보행자용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나헤리아 강변의 리오하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 나헤라로 돌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공장 지대를 지나야만 합니다. 가구가 많이 생산되는 도시인 까닭에 까미노길을 따라 부서지 ㄴ가구들과 같은 폐기물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창고와 오래된 공장 건물을 지나는 순례자는 더러운 공장 벽에 적혀있는 시를 보고 여러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스페인 말을 하지 못하는 순례자에게도 너무 익숙한 이 순례자를 위한 시는 사제 에우게니오 가리바이의 작품입니다.
까미노는 다시 N-120 고속도로를 건너야 나헤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도시의 알베르게가 그러하듯이 순례자의 지친 몸을 쉬게 해줄 알베르게까지는 아직 2km 정도가 남았는데요. 공장지대를 지나면서 느끼는 실망감은 이 아름답고 친절한 도시로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죠. 마치 거대한 벌통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뚫려있는 붉고 커다란 바위산들을 끼고 있는 나헤라는 라 리오하의 주도였으며 10세기와 11세기를 거치면서 나바라 왕국의 본거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빰쁠로나를 무너뜨렸던 거점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나헤라는 나헤리야 강을 사이에 두고 8개의 아치를 가진 산 후안 데 으로떼가 다리가 구도시와 신도시를 연결시켜주고 있습니다. 나헤라는 특히 아름다운 기사들의 회랑과 신비한 왕가의 영묘를 볼 수 있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벤또사 (Ventosa)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벤또사(해발 655m) 마을의 중심에는 사뚜르니노 성인에게 바쳐진 성당이 있고 전원풍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순례에 지쳐서 조용함과 평온함을 찾는 순례자들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마을이라 할 수 있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11세기에 산초 3세가 산 미얀 데 라 꼬고야 수도원에 이 마을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중세 벤또사 부근 까미노에는 산 안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폐허가 된 이 병원에는 아름다운 예수님 상이 있었는데요.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하여 현재는 로그로뇨의 순수미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전통 후식은 튀긴 빵인데요. 특별히 성 요셉을 위해 이 음식을 준비합니다.
벤또사에서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근처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산따 꼴로마에서는 길에서는 발데 계곡에서 나헤리아 계곡까지 펼쳐진 멋진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벤또사부터 바랑꼬 데 아예도, 엘 에스삐날 산(1,000m), 몬깔비요 산(1,496m)까지 하이킹을 하기도 좋습니다. 중간 정도 난이도와 등산로에 경치가 매우 좋으며 까메로스까지 숲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따라 벤또사를 나서다 보면 산 안똔 언덕이 나오는데요. 까미노의 이정표와 함께 순례자들이 소원을 빌며 원추형 혹은 기둥 모양으로 자갈과 돌로 쌓아놓은 돌무덤이 있습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블랑까 성모의 춤
7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는 벤또사의 뿌에블로 광장에서 마을의 무용수들이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춥니다. 바로 벤또사의 수호성인 성모님에 대한 전설로부터 나온 축제입니다. 산 사뚜르니노 성당에는 블랑까 성모상이 있었는데요. 하루는 한 소년이 종루로 새를 잡으러 올라갔다가 그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긁힌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성인 블랑까 성모님이 도와주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전설도 전해집니다. 도둑이 블랑까 성모상을 가지고 도망을 가는데, 뿌에블로 광장 근처에서 갑자기 성모상이 너무나 무거워서 훔쳐갈 수 없어 바닥에 내려둔 뒤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2)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산 사뚜르니노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mino)
산 산뚜르니노 성당은 벤또사 중심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성당입니다. 사각형 기반에 벽돌로 만든 13세기 후반의 탑이 있습니다. 탑의 끝부분은 여덟 면으로 피라미드형으로 끝나는데요. 탑의 16세기 고딕 양식 현관은 동식물 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위에 올라가면 마을의 매력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내부의 궁륭과 창미창이 아름다우며 14세기에 제작된 누워 있는 그리스도상과 펠리컨(인류를 위해 피 흘린 그리스도를 상징)이 피를 흘리며 새끼들을 먹이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3. 나헤라(Najera)
나헤리야 강을 중심으로 도시느느 바리오 데 아덴뜨로(Barrio de Aluera)라고 하는 신시가지가 나타납니다. 나헤라(485m)는 가거 그리스도교 왕국과 이슬람 왕국 사이에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세워진 이 도시를 아랍인들은 ‘바위 사이의 도시’라는 의미인 나사라(Nasara)라고 불렀습니다. 산초 엘 마요르 왕은 나헤라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는데요.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자나가게 함으로써 도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나헤라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같이 훌륭한 건축물이 많습니다. 이곳에는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 현명왕 산초, 도나 블랑까 데 나바라 등 서른 명 가량의 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근교에는 산 미얀 데 라 꼬고야 수도원, 라 리오하의 수호성인인 발바네라의 수도원 등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또 가을에는 아로의 포도주 박물관을 방문해 보고, 스키 시즌에는 에스까라이 산에서 스키와 스노우보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나헤라에는 화려한 축제로도 유명한데요. 인기아노 축제는 7월 22일에 열리는데 긴 장대를 가지고 추는 춤으로 유명합니다. 6얼 24일부터 29일까지는 사도 요한과 베드로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며 9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순교자 요한과 산따 마리아 라 레알의 축제가 있습니다. 이 중 어느 때에도 이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에 좋은 그 중에서 송어, 게, 과일, 포도주가 특히 유명합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기사단을 둔 성모
나바라의 왕 돈 가르시아의 매가 비둘기를 쫓고 있었는데 매와 비둘기가 숲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매를 기다리다 지친 왕이 직접 매를 찾아 나섰다가 동굴을 발견했는데요. 그 동굴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답니다. 왕이 동굴에 들어가자 찬란한 빛을 내는 백합 화병과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와 비둘기가 마치 좋은 친구 사이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지요. 왕이 이 자리에 성소와 수도원을 지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왕은 이곳을 나바라 왕의 묘지로 쓰기로 결정했는데, 이 전설이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의 기원이며 성모상을 발견했을 때 성모상을 장식하고 있던 떼라사(Terraza: 화병)을 기념하여 라 떼라사 기사단이 결성되었습니다.
ii) 롤랑과 페라구뜨의 전투
나헤라는 샤를마뉴의 조카 롤랑과 골리앗의 후손인 거인 페라구뜨의 전투에 관한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롤랑과 페라구뜨의 싸움은 피가 낭자하고 치열했으며 승자가 가려지지 않았는데요. 롤랑은 휴전을 제안하고 페라구뜨를 만나 그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가장하며 거인에게 술을 먹였습니다. 거인은 술에 취해서 자신의 약점은 배꼽이라고 고백해버렸답니다. 다음날 롤랑은 그를 화나게 만든 다음 그와 맞붙어 싸우다가 배꼽에 창을 찔렀습니다. 그리하여 롤랑은 페라구뜨를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싸움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나바라 왕궁의 주두에 있는 것입니다.
2)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ire la Real)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은 산초 3세의 아들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6세에 의해 11세기에 세워진 클뤼니 수도원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은 흔적만 남아있고 15,16세기에 재건축되었는데요. 건축 양식은 추리게레스코식 고딕양식이며, 15세기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성당, 왕가의 영묘, 기사들의 회랑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산초 3세의 부인이자 알폰소 8세의 어머니인 도냐 블랑까 데 나바라의 무덤이 돋보입니다.
ii)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리(Puente de San Juan de Ortega)
이 다리는 처음 건설된 것은 10세기인 것 같지만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시 지었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번 보수가 되었지만 나헤리야 강의 주기적인 홍수를 이기지는 못했지요. 1866년에 원래 다리가 있던 자리에 현재의 다리를 다시 만들었는데요. 이후 교통량이 증가해 2003년에 그 폭을 넓혔습니다.
iii) 산따 엘레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Elena)
산따 엘레나 수도원은 16세기 중반에 도냐 알돈사 만리께 데 라라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성당은 라틴 십자가형 평면의 네 구획으로 나뉜 신랑으로 되어 있고, 토스카나식 기둥 열 개 위에 세워졌습니다. 주 제단에는 바로크식 제단화가 있고 둥근 처마 장식에는 포도 무늬와 여러 성인, 성 엘레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낮은 합창단석은 철장으로 닫혀 있고 내부엔 17, 18세기의 다양한 유화들이 있습니다. 수도원 내부에는 수페룬다의 백작 돈호세 만소 벨라스꼬 와 또레스가 누이 아바데사에게 선물한 아메리카 인디오를 모티브로 장식한 은세공품 같은 예술품들이 있습니다. 그는 후에 남미 페루의 첫 번째 부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iv) 산따 끄루스 성당(Real Capilla de la Santa Cruz)
산따 끄루스 성당은 1611년에 봉헌되었으나 완공은 1634년에나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1940년까지 재보수가 계속 되었는데요. 세 개의 신랑이 있는 성당 안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제단화와 다양한 조각과 유화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13세기 후반의 고딕 양식으로 된 십자가 상과 17세기의 플랑드로 양식의 구리 십자가, 따라소냐의 주교이자 나헤라의 수호성인인 성 쁘루덴시오 데 아르멘띠아와 순례자 요한의 유해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