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14: 나헤라~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21.5km/6시간) 

나헤라에서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구간의 산띠아고 길은 완만한 오르막과 광활한 평원이 펼쳐지는 곳인데요. 붉은 포도밭 지대를 지나면서 풍경은 점점 황금빛 밀밭으로 변해갑니다. 이는 곧 마주하게 될 스페인 대평원 ‘메세타(Meseta)’ 지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사방이 트여 있어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해가 뜨거울 때 그늘을 찾기 어려우므로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수인 구간입니다. 이 구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산띠아고 순례길: 나헤라~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글의 순서



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나헤라에서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까지

1. 엘 까미노(El Camino): 구간(Route) 줄거리

라 리오하에 들어서면 땅의 빛깔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석회암과 충적토가 많은 이 땅은 잡초를 억제하는 동시에 포도나무의 성장을 촉진해 줍니다. 스페인의 태양을 닮은 이 붉은 황토와 포도나무는 레온의 황무지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순례자는 평소에 먹는 포도보다 훨씬 작고 단맛이 강한 포도가 생산되는 포도밭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중세 아랍인들의 마을이었다고 전해지는 조그만 아소프라에 도착합니다. 아소프라에서는 두 가지 루트를 통하여 시루에냐에 갈 수 있는데요. 산 밀란 데 라 꼴로냐 수도원을 향해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가는 루트와 오른쪽 기존 까미노로 향하는 루트입니다.

오른쪽 까미노를 향하는 루트를 따라 아소프라를 나와 약 2시간 반 정도를 걷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포도밭과 밀밭을 걸으며 근사한 골프장을 지나쳐 조용한 마을인 시루에냐에 도착합니다. 마을을 나서고부터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로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어야 까미노의 역사적인 도시 산또 도밍고 데라 깔사다에 도착하게 됩니다. 열 한번째의 이 구간은 22km 정도인데요. 심한 오르막이 없고 N-120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포도밭과 농지를 편안하게 6시간 정도 걸으면 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필요한 물과 음식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나헤라에서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상세 구간 정보

나헤라를 빠져 나오면 까미노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의 가장자리를 돌아 뻬냐에스 깔레라(Penaescalera)의 비탈길로 가는 포장도로로 이어집니다. 조용하고 한직한 오래된 도로를 따라오면 붉게 물든 바위산 사이의 소나무 숲을 통해 비탈길로 된 통행로를 만납니다. 이 통행로를 거쳐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마을을 나오면 답답한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라 리오하 평원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까미노는 포도밭 사이로 아름답게 이어집니다. 왼쪽에는 데만데 산맥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또로뇨의 하얀 언덕이 멀리 보입니다. 가슴 벅찬 풍경을 옆에 꿰차고, 나헤라에서 약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아소프라까지의 여정은 매우 쉽고 즐겁습니다. 덧붙여 아소프라에는 깨끗하고 청결한 2인 1실의 단층 침대를 가진 알베르게도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면 천사들의 성모성당 이외에는 특별히 볼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을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마요르 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마을에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두 개의 바가 있어서 일찍 나헤라에서 출발한 순례자가 아침을 먹기에 좋습니다.

도로의 끝자락 정면에 공원이 나오면 순례자는 시루에냐로 향하는 두 가지 루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아소프라에서 왼쪽으로 N-120 고속도로를 따라 약 6km 떨어진 까냐스를 거치고 8km를 더 걸어서 아름다운 은자의 수도원이 있는 산 밀란 데 라 꼴로냐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향하는 샛길에서 오른쪽으로 14km를 걸어서 시루에냐로 돌아가는 길이 첫 번째 루트입니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우물을 오른쪽에 두고 작은 운하를 넘으면 드넓은 밀밭 사이로 나있는 평화로운 길이 보입니다. 이 길을 따라 약 10km 정도를 외롭게 걸어가야 합니다. 흙으로 된 넓은 길을 통해 고지대로 올라가는 오르막 중간에서 뒤돌아보는 까미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첫 번째 루트를 따라서 시루에냐로 이동하는 것은 도보 순례자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루트보다 적어도 13km를 더 이동해야 하는데다가 포장된 도로를 선택하는 것은 자전거 순례자들에게 더 적합합니다. 

두 번째 루트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포도밭 언덕을 넘어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해줄 순례자를 위한 쉼터를 만나게 되는데요. 시루에냐는 이제 가까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시루에냐로 착각을 하고 들어서는 곳은 드넓은 골프연습장과 인적이 드문 새로 만ㄷ르어진 현대식 계획도시입니다. 진정한 시루에냐 마을을 만나려면 계획도시를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야 하는데요. 그러면 마을 끝에서 표지판을 만나게 됩니다. 시루에냐에서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까지는 걷기 편한 6km 정도의 길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주로 감자 농사를 짓는 시루에나의 높게 쌓아 올린 감자 창고를 지나쳐 시계탑이 있는 성당을 지나 까미노를 따라가면 쉽게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로 향하는 까미노를 만납니다. 이 길은 직선에 가까우며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쉽게 지치는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까미노 성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산또 도밍고 델라 깔사다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또한 집처럼 편안한 아주 오래된 알베르게와 향기로운 빵 가게 그리고 순례자의 살아있는 속삭임이 들릴 정도로 사람들의 친절함이 넘치는 곳입니다.

2. 아소프라(Azofra)

아소프라(해발 555m)는 뚜에르또 강의 비옥한 계곡에 자리잡은 아랍인의 마을이었습니다. 기사도의 전통과 중세의 우물, 오래된 집, 특히 에르비아스 백작의 저택 등이 있는데요. 8월 15일에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1168년에 도냐 이사벨은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우고 성 베드로에게 봉헌했습니다. 또한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 죽은 순례자들을 위한 묘지도 만들었습니다. 병원 건립을 알리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깔라오라와 나헤라의 주교인 나 로드리고는 도냐 이사벨에게 아소프라 마을에 순례자만을 위한 병원과 묘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한다.” 이 병원 19세기까지는 운영되었고 오늘날에는 폐허로만 남아있습니다.

이소프라의 풍경들

1)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천사들의 성모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천사들의 성모 교구 성당은 하나의 신랑과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17~18세기의 성당입니다. 루네트가 있는 궁륭으로 덮여 있고 제단 쪽 돔은 별무늬가 있는 16세기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ii) 아소프라의 원주 (Rollo de Azofra)

아소프라의 원주는 마을에서 약 1km 정도 빠져 나오면 시루애냐로 가는 까미노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 원주는 땅에 정의를 세우는 칼을 연상시키며 악당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3. 시루에냐(Ciruena)

시루에냐(해발 740m) 로그로뇨에서 약 4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시루에냐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합니다. 광장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을 보면 이곳에 살았던 역사의 주인공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루에냐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약 1천 년 전 즈음입니다. ‘나바라 왕국 연대기’에서 960년에 빰쁠로냐의 왕 가르시아 산체스와 까스띠야의 페르난 곤살레스 백작 사이에서의 전투가 시루에냐에서 벌어졌는데요. 전투에서 진 페르난 곤살레스 백작이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마을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까미노를 걷다 맨처음 만나게 되는 시루에냐의 첫모습은 근사한 골프장과 그뒤로 만들어진 신축된 빌라의 모습들입니다. 한겨울 새로 만든 마을의 신시가지를 지나다 보면 사람의 인적이 보이지 않아서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시루에냐의 풍경들

현대 시루에냐는 일 년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흥겨운 마을이기도 합니다. 5월 15일에는 이시드로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6월 15일에는 근교의 발바네라 수도원으로 순례를 가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9월의 첫 번째 주말은 레메디오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있고요. 11월 30일에는 성 안드레아의 축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립니다.

1)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교구 성당은 석재와 벽돌로 건축되었는데요. 1965년 10세기에 만들어진 건물의 토대 위에 재건축되었습니다. 네 구역으로 나뉜 신랑, 직사각형 후진, 아치형 궁륭이 아름다우며, 바로크 양식의 주제단화가 눈길을 끕니다.

4.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해발 640m)에는 에스까라이 산에서부터 아로의 포도밭까지 펼쳐진 넓은 공원에 늘씬한 성당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탑은 나침반처럼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나타내주는 역할을 해 주는데요. 탑이 있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대성당은 ‘까미노의 건축가 성인’이라고도 불리는 성인이 남긴 것입니다. 도시의 이름도 성인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성과 성당, 순례자를 위한 병원, 궁전, 스물 네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오하 강 위의 다리 등이 있습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산띠아고 가는 길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인데요. 그래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갖춰져 있고, 마을 사람들이 친절해 항상 순례자들로 붐빕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서는 이 까미노의 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항상 벌어집니다. 4월 25일에는 닭이 작은 북과 함께 행진하는 축제가 있고, 5월 1일에는 성인의 빵을 나눠주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또한 5월 10~15일에는 성인을 기리는 성대한 행렬이 이어집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풍경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

i) 닭의 기적

산또 도밍고 데 깔사다에는 닭에 대한 전설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5세기에 독일 윈넨뎀 출신의 우고넬이라는 이름의 18살 청년이 신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띠아고 순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머물던 여인숙의 딸이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사랑을 고백했답니다. 그런데 신앙심이 남달랐던 우고넬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지요. 상심한 처녀는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우고넬의 짐 가방에 몰래 넣고 도둑으로 고발해 버렸습니다. 재판소로 끌려간 우고넬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청년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띠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 했는데요. 돌아오는 길에서 “산띠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았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음성을 들은 기쁨에 찬 부모가 재판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먹으려 하고 있었던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나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미있는 전설 덕분에 1993년부터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이 기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던 청년 우고넬의 고향인 독일의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었답니다. 산또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우고넬의 결백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메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전설과 전통 때문에 중세에 순례자들에게 여행 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은 징조로 여겼답니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순례길을 걸으면서 닭의 깃털을 모았는데요. 그것이 순례 중에 그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또 폴란드인들은 순례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서 닭에 주곤 했는데, 닮이 빵이 쪼아 먹으면 순례에 좋은 징조가 있을 것라 믿었답니다.

2)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대성당(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성당은 12세기에 세워져서 13, 15, 18세기에 여러 번 증축과 보수를 거쳐왔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제단부는 여덟 개의 기둥으로 마요르 소성당(Camilla Mayor)과 분리됩니다. 천장을 덮은 궁륭과 성인의 영묘, 주제단화, 15세기의 기적에서 유래한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는 닭장 등이 눈에 띄는데요. 성인이 잠들어있는 영묘는 여러 양식이 혼합된 작품으로, 성인이 누워 있는 무덤 부분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기적에 대해 기록되어있는 탁자는 고딕, 소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입니다. 15세기 다미안 데 프르멘뜨에 의해 그려진 주제단화는 1994년 마요르 소성당 안에 있었는데요. 이 그림은 스페인 르네상스의 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닭들이 사는 닭장은 15세기의 고딕 양식인데, 아직까지도 성당 내부의 이 닭장에서 살아 있는 흰 닭 한 쌍을 키우고 있습니다. 까미노를 밝혀주는 대성당의 아름다운 탑은 18세기에 증추고딘 것입니다. 대성당 탑은 세 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은 1450년 번개를 맞아 무너졌고, 두 번째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탑은 붕괴 위험이 있어서 해체했습니다. 마르띤 베리뚜아에 의해 현재의 세 번째 탑이 건축되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이 탑의 높이는 무려 70미터에 달하는데,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 때문에 대성당 건물과 분리해서 지어야만 했습니다. 탑에는 일곱 개의 종이 있는데요. 그 중 두 개가 시계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탑의 장식이 무너져 내릴 위험 때문에 보수되었습니다.

ii) 성모 영보 수도원(Monasterio Nuestra de Señora de la Anunciacion)

시토회의 수도원인 성모 영보 수도원은 1620년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수도원의 성당은 라틴 십자가형 평면에 바로크 양식의 제단화가 있는데요. 성당 측면에는 세 명의 주교 와상이 있는데, 이 중 가운데가 이곳의 설립자인 돈 뻬드로 만소이입니다. 현재는 순례자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으며 수도원의 수녀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iii)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Converto de San Francisco)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은 16세기 후반 사라고사의 대주교 베르나르도 데 프레스네다의 의해 세워졌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프란시스코회의 수사들이 살았는데요. 이제는 박물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iv) 재판용 원주(Rollo Juridiscional)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단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원주로 아소프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됩니다. 도시를 들어오는 입구 교자로 가운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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