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띠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의 11~12단계에 걸쳐 있는 벨로라도(Belorado)에서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 구간(약 24.5km)은 평탄했던 카스티야 평원을 지나 다시 한번 숲과 언덕을 만나는 흥미로운 전환점입니다.
이 코스는 특히 순례길 전반부에서 악명 높은 ‘오카 산맥’을 넘어야 하므로 체력 안배가 중요한데요. 이 구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의 순서
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벨로라도에서 산 후안 데 오르떼가까지
1. 엘 까미노 (El Camino)
벨로라도는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마을입니다. 이런 마을을 떠나기 전날 순례자는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며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요. 열세 번째 여정은 거리가 길지 않은 대신 해발 고도를 400m 가까이 올라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비해 조금 일찍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벨로라도를 나와 또산또스를 거쳐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에 이르는 구간은 아주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는 평야지대입니다. 순례자는 지난 며칠간의 여정과 같이 N-120 고속도로와 나란히 도로의 오른쪽을 따라 이동해야 합니다.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에서 비아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에 이르는 까미노는 다행스럽게도 고속도로와 떨어지게 됩니다. 순례자는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평안함과 호젓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순례자에 비해 중세의 순례자게 이 길은 악몽과 같았을 겁니다. 오까산에 숨어서 순례자의 지갑과 목숨을 노리는 산적과 늑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를 출발하기 전에는 충분한 휴식과 필요한 행동식 그리고 식수를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까산의 정상을 넘는 떡갈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오르막 숲길과 목적지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는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날씨가 좋지 않다면 마지막 구간의 일정을 조금 변경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까산 숲 속의 날씨는 언제라도 시시각각 변하기 쉬우며 숲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도 많아지기 때문이죠. 삼각형 모양의 마을인 벨로라도를 관통하는 마요르 길을 따라 걸으면 브레또네라 성모 수도원이 오른쪽에 보입니다. 수도원을 두고 따라 내려오면 N-120 고속도로를 만나게 되는데요.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띠론 강 위를 지나는 다리를 넘으면 그때부터 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나란히 이어져 있는 까미노를 걸으면 됩니다. 길다란 대도시의 거리(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 브레또네라의 수도원은 오른쪽에 위치)는 N-120 고속도로와 다시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띠론 강을 넘어가는 보행자 다리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갑니다.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아름다운 밀밭을 따라 길을 걸으면 주유소가 나오며 왼쪽으로는 산 미겔 데 뻬드로소(San Miguel de Pedros)로 빠지는 샛길이 나옵니다. 길을 지나쳐 약 30분 즈음 좁은 까미노를 걷다 보면 왼쪽으로 순례자를 위한 쉼터와 작은 샘물이 나옵니다.
이제 오까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인 또산또스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까미노를 다라 오른쪽으로 마을에 진입하면 바로 또산또스인데요. 마을에는 오래되었지만 상냥한 알베르게가 있습니다. 또산또스의 입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돌산에는 몇 개의 동굴이 뚫려 있으며 가운데에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의 소성당이 보입니다. 라 뻬냐 성모의 바위 위 성당으로 또산또스에서는 매년 9월 8일 뻬냐의 성모님을 기리는 축제를 합니다.
까미노는 마을 뒤쪽의 출구로 이어집니다. 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점차 멀어지면서 아름다운 밀밭 사이의 산책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밀밭 사이로 비얌비스따 성당이 보입니다. 이곳은 특별한 이야기도 레스토랑이나 바와 같은 서비스도 없는데요. 이 초라하고 조그만 마을 샘터를 지나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로 향합니다.
까미노는 다시 밀밭 사이로 이어지며 약 1km 후 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고속도로를 건너 가다보면 왼쪽으로 마을이 보입니다.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에는 전원풍의 아름다운 목조 건물들이 특색을 이루는 마을로 은퇴한 스페인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기에 적합해 보이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마을의 출구는 성모승천 성당을 오른쪽에 두고 이어져 있으며 왼쪽으로 바르셀로나의 온퇴한 사업가가 운영한다는 사설 알베르게를 볼 수 있습니다. 까미노는 계속 밀밭 사이로 이어지고 언덕에 올라서면 멀리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가 보입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부르고스를 만든 사람이고 알려져 있는 뽀르셀로스 백작이 말년을 외롭게 보낸 산 펠리세스 수도원의 유적을 만나게 되며 이내 고속도로와 만나 오까 강을 건너면 마을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은 1075년 알폰스 6세에 의해 까미노의 순례자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데요. 그 일환으로 부르고스 주교의 거쳐를 옮겼다고 합니다.
마을의 알베르게는 오래된 학교를 개조하여 사용되고 있는데요. 14세기에 만들어진 산 안또니오 수도원장 병원은 닫힌 채로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가져온 조개겁데기로 장식한 아름다운 세례반을 가지고 있는 산띠아고 성당을 왼쪽으로 끼고 오래된 병원의 모퉁이를 돌아 까미노는 오까산을 향한 험한 비탈길로 이어집니다. 길은 떡갈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숲을 지나게 되며 이내 오른쪽으로 순례자 기념비를 만나게 됩니다. 이 기념비는 1936년 이곳에서 살해된 순례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지점에서 까미노는 철책을 가로질러 내리막을 내려가면 조그마한 시내가 나오고 열세 번째 여정의 구간에서 가장 어려운 험한 오르막 비탈길을 만나게 됩니다. 떡갈나무로 된 거대한 숲을 통해 산의 정상을 오르면 거대한 고원지대를 만나게 되죠. 이제 길은 어렵지 않은 내리막 산책길로 변합니다. 이 구간의 마지막 목적지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수도원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12~17세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까미노의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까미노는 로그로뇨에서 부르고스를 지나는 자동차 전용도로와 만납니다. 이 도로는 각별하게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많은 순례자들이 사고를 당했고 까미노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유네스코에서도 이 구간을 주의 구간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또산또스 (Tosantos)
또산또스(해발 818m)는 무성한 풀로 덮힌 언덕이 있는 오까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입니다. 마을에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많은데요. 거대한 바위를 파내어 만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성당인 라 뻬냐 성모의 성당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매년 9월 8일 또산또스에서는 라 뻬냐 성모님을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사라센인들에게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동굴 안 종 밑에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는데요. 오랫동안 그 흔적을 찾지 못하다가 동굴이 성소가 되면서 발견되었습니다.

1) 까미노 포인트(Camino Point)
i) 라 뻬냐 성모 소성당(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 Pena)
라 뻬냐 성모 소성당은 바위를 파서 만든 소박한 성당인데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상을 기리는 성당이기도 합니다.
3.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 (Espinosa del Camino)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해발 891m)는 부르고스 지역의 전통 가옥과 대중적인 건축물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전원풍 목조 건축물이 많으며 그 중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으로 장식된 것도 있습니다. 8월 15일에는 성 로께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1)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성모 승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l)
성모 승천 교구 성당은 건물 대부분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요. 설화석고로 만든 현관과 처마 장식에서 성 안달레시오를 표현한 12세기의 채색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4.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 (Villafranca Montes de Oca)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해발 948m)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크리스탈 같은 개울, 늑대와 노루의 은신처가 되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는 아우까로 불렸는데요. 주교가 살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와 부르고스의 중간인 이 마을에는 신비로운 전설과 많은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오까 산은 오랫동안 순례자들을 노린 도둑들이 들끓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한 순례자가 도둑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도미니꼬 라피라는 이름의 순례자는 이곳 오까 산의 숲에서 길을 잃어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숲에서 나는 버섯을 먹고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에서는 이곳의 명물인 오야 뽀드리다(Ella Podrida; 썩은 냄비라는 의미)라는 부르고스식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을 근교에서는 수령이 오래된 떡갈나무 서식지이면서 너도밤나부와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인달레시오 성인의 순교
라 오까 성모 성당 옆에는 성 인달레시오의 연못이라고 알려진 샘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야고보가 주교로 임명한 아우까의 주교 성 인달레시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성인의 피가 떨어진 곳에서 샘이 솟았다고 합니다.
ii) 아까산의 도둑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끼에서 오까 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중세 때 순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었습니다. 도둑과 강도, 불량배가 많았는데요. 납으로 만든 동전에 도금을 한 뒤 순진한 순례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서 가짜 돈을 주고 진짜 돈을 받는 사기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도둑질을 하고 싶으면 오까 산으로 가라.”

2) 까미노 포인트
i) 산 펠리세스 데 오까 수도원 (Monasterio de San Felices de Oca)
9세기 경에 만들어진 이 수도원은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를 1km 남겨둔 까미노 위에 세워졌습니다. 모사라베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수도원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고트 양식을 따른 발굽 모양의 아치와 소성당의 잔해들인데요. 이 수도원은 부르고스 시를 세운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가 영원히 잠든 곳이라고 합니다.
ii) 산띠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필리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세례반이 있습니다.
iii) 오까의 성모 소성당 (Ermita de la Virgen de la Oca)
비야프랑까 몬페스 데 오까에서 부르고스로 나오는 길에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함께 라 오까의 성모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샘터에서 사도 야고보에게 서품을 받은 아우까의 첫 번째 주교 성 인달레시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5. 산 후안 데 오르떼가 (San Juan de Ortega)
산 후안 데 오르떼가(해발 1,040m)는 12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면서 교황과 주교, 왕과 귀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했는데요. 순례자들은 편히 쉬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오래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고요. ‘빛의 기적’처럼 지금도 눈으로 경함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1) 까미노 스토리(Camino Story)
i) 빛의 기적
춘분(3월 21일)과 추분(9월 21일)은 선과 악의 상징이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날이 되면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긴기한 현상이 성당의 주두에 일어나는데요. 오후가 되면서 약 10분 정도 햇빛이 성당 주두의 부조를 비춥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고 성모에게 나타난 대천사의 부조부터 시작해 예수님의 탄생,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들, 목동들에게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알려주는 장면을 차례로 비춥니다. 첫 번째 부조에서는 성모님은 천사가 아니라 주두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자 잊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경험인 이 현상을 ‘빛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ii) 회임과 다산의 성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산 후안 성인은 회임과 다산을 도와준다고 믿어오고 있습니다. 가톨릭 왕으로 불리는 이사벨 여왕도 이 성인의 무덤을 찾아와 경배하며 자신이 무사하게 아기를 낳기를 기도했답니다. 기도가 끝나고, 여왕은 성인의 유해를 볼 수 있도록 돌로 된 석관을 열라고 지시했습니다. 성인의 무덤을 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망설였지요. 결국 여왕의 고집으로 석관의 뚜껑을 열자 하얀색의 벌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왕은 부패하지 않은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시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던 여왕이 사람들을 시켜 관 뚜껑을 닫자 벌들은 다시 석관의 작은 구멍으로 날아 들어갔습니다. 여왕과 사람은 이 벌들이 성인이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태어나지 못한 영혼들이라고 믿었습니다.

2)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수도원 (Monasterio de San Juan de Ortega)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수도원은 12세기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주두가 눈에 띄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고딕 양식의 천 개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조각된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성인의 석관이 있습니다.
ii) 산 니꼴라스 소성당 (Capilla de San Nicolas)
산 니꼴라스 소성당은 신앙심이 깊어 가톨릭 왕으로 불리는 이사벨 여왕이 1477년 수도원을 순례하고 감명받아 건축한 성당인데요. 성당은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둥근 지붕을 갖고 있으며 내부에는 16세기의 아름다운 철책과 길 데 실로에의 세공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