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17: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부르고스(29.5km/약 9시간)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에서 부르고스(Burgos)까지 이어지는 구간(약 29.5km)은 험난했던 산길을 뒤로하고 까스띠야의 광활한 평야와 대도시로 진입하는 전환점입니다.

오카 산맥의 울창한 숲을 벗어나면 다시 사방이 탁 트인 황금빛 밀밭과 완만한 구릉지가 펼쳐져 평화로운 사색을 즐기며 걸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부르고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길고 지루한 산업 단지 진입로(국도변 아스팔트길)를 지나게 되므로 체력적·정신적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며, 대도시의 활기찬 문화유산과 편의시설을 만나며 여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산띠아고 순례길: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부르고스

글의 순서



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부르고스까지

1. 엘 까미노 (El Camino)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부르고스까지의 열네 번째 여정은 세 가지의 루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여정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출발하는 가장 왼쪽 루트로 로그로뇨와 부르고스를 연결하는 N-120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살두엔도(Zaldueendo)와 이베아스 데 후아로스(Ideas de Juerros)를 통과합니다. 두 번째 여정은 중세에서부터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걸었으며 아헤스(Ages), 아따뿌에르까(Atapuerca), 비야프리아(Villafria)를 거칩니다. 세 번째 루트는 여정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까미노로 발리오스 데 꼴라나(Barrios de Collina)를 거쳐 N-1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게 되는 루트입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부르고스 상세구간 정보

첫 번째와 세 번째 루트는 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어가기 때문에 편하기는 하지만 고속도로를 지나는 대형트럭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공장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요. 그래서 다소 살풍경하고 지루하며 좋은 알베르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에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루트를 선택해,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부터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를 통과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산또베니아 데 오까(Santovenia de Oca)로 향하는 길을 따라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첫 번째 교차로까지 이동하면 됩니다. 순례자는 여기에서 앞서 언급한 루트 중 어떤 길을 걸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첫 번째 루트를 선택하면 산또베이야로 가는 아스팔트 길을 통해서 왼쪽으로 향해야 하며 살두엔도에서부터 부르고스까지 N-120 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으면 됩니다. 아따뿌에르까를 통과하는 전통적인 까미노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과거 마드리드에서 출발했던 오래된 철도 구간을 통과하여 직진하는 기분 쫗은 비포장도로 길을 따라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발로스 데 꼴리나로 향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루트를 많이 우회해야 하는데요. 현재까지 마드리드에서 출발하여 부르고스를 통과하여 운행 중인 철도 구간을 건너 N-1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아헤스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흙으로 만든 담을 가로질러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길이 나오고 길이 세 개로 나뉘어지나 바로 이어지므로 고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윽고 커다란 두 개의 떡갈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있는 언덕이 나오는데요. 언덕의 왼쪽으로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비르헨 델 레보르(Virgen del Rebollo)의 성당이 보이며 앞쪽으로는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황무지가 보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농장문을 지나고 오래된 철길을 건너면 여정의 첫 번째 마을인 아헤스가 나옵니다. 나바라의 왕이었던 가르시아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아헤스는 소박하고 깔끔한 2개의 알베르게가 순례자를 맞아줍니다. 전원 속에 잠들어있는 이 마을과 아따뿌에르까에 이르는 길은 까미노의 성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출구는 왼쪽으로 버드나무 숲길을 끼고 이어집니다. 아따뿌에르까에 이르는 길은 넓은 평원으로 이어져있으며 중간에는 나바라 왕국과 까스띠아 왕국의 전투에서 전사한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를 기리는 ‘죽은 왕의 경계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순례자는 유럽 대륙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인류의 고향 이따뿌에르까에 도착합니다. 마을 입구에는 최초의 인류인 ‘안테세소르’의 유적으로 가는 샛길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있는 이 유적의 발견은 유사이전 인류의 동굴생활과 매장관습 등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아주 작은 알베르게가 있는데요. 만약 아따뿌에르까에서 숙박할 장소를 찾지 못했다면 마을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Olmos de Atapuerca)에서 머무는 것도 좋습니다.

까미노는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에서도 다음 마을인 비알발과 까르데뉴엘라리오 삐꼬로 이어집니다.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를 머물지 않을 순례자는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오르막 까미노를 따라가야 하는데요. 이 길은 숲길로 이어지는데 철조망과 평행하게 까미노가 이어져있습니다. 떡갈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언덕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평원이 내려다 보입니다. 부르고스 성당의 높다란 탑이 까스떼나야의 초원과 지평선 사이로 보이며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십자가상을 지나면 어느새 내리막의끝에 바얄발에 도착합니다. 특별한 전설이나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가 없는 조그만 마을 비얄발과 다음 마을인 까르데뉴엘라 리오 삐꼬는 거의 붙어있는데요. 2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까르데뉴엘라 리오비고와 오르바네하 리오삐꼬 또한 조그만 바 이외에는 특별히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없습니다. 까미노는 포장된 자동차 길로 부르고스까지 이어집니다. 오르바네하 리오 삐꼬의 출구에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에서 순례자는 다시 부르고스를 어느쪽으로 들어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다리를 건너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은 까스따냐레스(Castanares)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향한다면 처음 산 후안 오르떼가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루트 중 세 번째인 N-1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지나는 비야프리아를 지나는 까미노와 만나게 됩니다.

까스따나레스를 지나 부르고스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순례자의 앞에는 아름다운 아르란손 강을 건너 나무로 우거진 산책길을 통해 부르고스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까스따나레스로 가는 길도 두 가지가 있는데요. 오른쪽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면 부르고스 공항의 철책을 따라가야 하며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농로를 따라 잠깐이라도 조용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까미노 사인이 별로 없어 불안한 길이기도 합니다.

비야프라야로 향하는 까미노는 약 10km에 걸쳐 공장지대의 어수선함과 N-120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불편할 수 있는데요. 원래의 루트보다는 약 1km가 더 짧지만 까미노가 주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편입니다. 

대도시 부르고스의 입구에 도착한 순례자가 적당한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반대편까지 중심부를 통과하여하 하는데요. 그 거리는 약 4km가 넘습니다.  부르고스는 까미노르 ㄹ위한 도시라고는 할 수 없으나 중세부터 여러 가지 산업이 발전했던 도시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884년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에 의해 처음 아르란손 강변의 언덕에 만ㄷ르어진 마을은 1035년 까스띠야 왕국의 건설과 1075년 ㅈ주교 교구의 이동으로 점점 커다란 도시로 모습을 바꾸어 왔습니다. 부르고스를 대표하는 산따 마리아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오래된 거리는 순례자들에게 중세의 장엄함을 아낌없이 나눠줍니다. 또한 충분히 편안하고 깨끗한 알베르게는 도시의 출구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 아헤스 (Ages)

오래된 마을 아헤스(해발 971m)는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 왕국의 패권을 뒤흔든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곳입니다. 또한 전원 속의 마을이라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인데요. 까미노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는 순례자라면 이 그림같은 풍경의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아헤스의 풍경들

1) 까미노 스토리 (Camino Story)

i) 죽은 왕의 경계석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2m 높이의 거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평원은 중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까스띠야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한데요. 이 전투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게 되어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나버렸습니다. 이 거석은 ‘죽은 왕의 경계석’이라고 불리는데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1054년 나바라 왕 가르시아 엘 더 나헤라 여기서 죽다.” 전설에 의하면 전투에서 살아남은 왕의 부하들이 죽은 왕의 내장을 아헤스 성당의 입구 반석 밑에 묻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아헤스 주민들은 아따뿌에르까 사람들을 ‘까스떼야노스(Castellanos; 까스띠야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매년 8월 23일에는 나바라와 까스띠야 왕국의 전투와 가르시아 왕의 죽음을 기리며 중세식 저녁식사를 하는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2)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죽은 왕의 경계석 (Mojon Fin de Rey)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 사이의 넓은 평원은 나바라 왕 돈 가르시아와 까스띠야의 왕 페르난도 1세가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죽음을 기리며 세운 것이 죽은 왕의 경계석입니다. 

ii) 깐도 다리 (Puente Canto)

까미노의 성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가 지었다고 알려진 이 깐도 다리는 마을을 나가는 길의 왼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iii) 산따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 (Iglesia de Santa Eulalia de Merida)

산따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은 16세기에 건축된 성당입니다. 이 성당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현관이 돋보이며,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유해가 성당 반석 밑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3. 아따뿌에르까 (Atapuerca)

 아따뿌에르까(해발 966m) 마을 집들이 모여 있는 중심 구역에는 산 마르띤 성당이 있습니다. 아따뿌에르까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큰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인류의 고향이고, 중세에 결정적인 전투가 치러졌던 곳인데요. 약 3km 떨어져있는 백만 년 전의 인류 ‘호모 안테세소르’의 유적지는 인류의 진화이론에 대한 혁명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인류로 유럽의 인류 중 가장 오래된 이들이라고 합니다. 아따뿌에르까에 머문다면 어린 양고기로 만든 구운 고기요리를 즐겨볼 수 있습니다. 매년 8월에는 페르난도 데 가스띠야가 그의 형제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주민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축제를 즐깁니다.

아따뿌에르따의 풍경들

1)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산 마르띤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al de San Martin)

 산 마르띤 교구 성당은 15세기와 16세기의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성당입니다.

4.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 (Cardenuela Riopico)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해발 935m)는 오래된 마을로써 산 뻬드로 까르데냐 수도원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마을은 까르데냐 수도원의 영지였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에는 꼬바루비아스 수도원의 영지에 속해 있었습니다. 매년 12월 10일에는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따 에우랄리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의 풍경들

1)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산따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 (Iglesia de Santa Eulalia de Merida)

 산따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은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따 에우랄리아를 위해 지어진 성당입니다. 이 성당에는 아름다운 피에타와 비가르니 봉헌화가 있는 르네상스 현관이 돋보입니다. 큰 종이 걸리 ㄴ성당의 종탑은 넓은 하늘에 솟아 있어서 성당이 마을의 중심임을 일러줍니다.

5. 오르바네하 리오삐꼬 (Orbaneja Riopico)

오르바네하 리오삐꼬(해발 925m)는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지나는 삐꼬 강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입니다.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부르고스에 가기 전에 조용한 거리와 강변에서 잠시 쉴 수가 있습니다. 

오르바네하 리오삐꼬의 풍경들

1)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원죄없으신 잉태 소성당(Ermita de La Inmaculada)

 원죄없으신 잉태 소성당은 중세풍의 근사한 탑이 있는 작은 석조 건축물 입니다.

ii) 산 미얀 수도원장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al de San Millan Abad)

산 미얀 수도원장 교구 성당은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당인데요. 성당 내부에는 소박한 성 로께의 조각상과 마을을 지나는 신심이 깊은 순례자들이 바치는 봉헌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6. 부르고스 (Burgos)

부르고스(해발 860m)는 중세부터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 문화 유산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한데요. 적들로부터 방어가 용이한 전략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고, 과거 까스띠야 왕국의 수도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지나가는 주요지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바닷길과 까미노의 만남은 부르고스의 유물들을 널리 퍼지게 만들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양모 산업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부르고스는 주교가 상주하는 도시이자, 박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부르고스의 구 시가지에서는 흥미로운 유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꼭 들러볼만한 성당입니다. 산 후안 단지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산 후안 문, 15세기 건축물인 산 후안 수도원, 부르고스의 수호성인인 산 레스메스의 무덤이 있는 산 레스메스 성당 그리고 15세기에 지어진 산 후안 병원이 모여 있는 구역입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진 산 후안 단지의 문은 오래된 성벽을 따라서 줄지어 있습니다. 16세기에 까를로스 5세를 기려 만들어진 산따 마리아 아치, 돌과 벽돌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무데하르 양식의 영향이 두드러진 산 에스떼반 문, 부르고스를 떠날 때 만나게 되는 두 개의 탑인 산 마르띤의 문 등이 있습니다.

도시의 유적들을 본 다음에는 편안한 술집에 앉아서 리베라 델 두에로에서 생산되는 포도주(Vinos Ribera del Diego)와 부르고스의 유명한 따빠스(Tapas), 신선한 치즈와 장작에 구운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음식들은 부르고스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므로 꼭 시도해 볼 것을 추천합니다.

1) 까미노 스토리 (Camino Story)

i) 대성당의 십자가 상

부르고스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상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경배를 받는 성상입니다. 중세의 한 부유한 상인이 플랑드로 여행을 떠나며 아구스띠노회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보답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은 선물을 가져오겠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상인은 배를 타고 귀국하면서 약속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갑판 위에 서 있던 상인의 눈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큰 궤가 보였습니다. 상인이 궤를 건져냈더니 그 안에는 사람 크기의 십자가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상인이 십자가ㄹ가 담긴 궤를 싣고 부르고스로 돌아오자 도시의 모든 종이 저절로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이를 18명이나 살려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십자가상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요. 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그리스도상은 사지와 머리를 구부리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ii) 엘 시드의 궤

부르고스 대성당 회랑에는 엘 시드의 노래에 등장하는 궤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 시드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유다인 디마스와 라켈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그는 담보로 두 유다인에게 이 궤를 잡혔는데요. 그 궤에는 보물이 들어있지만 일 년 안에 궤를 열어서는 안되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 후 엘 시드는 돌아와서 빚을 모두 갚았고 유다인들 앞에서 궤를 열었는데요. 그 안에는 보물이 아니라 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엘 시드는 자신이 말한 보물이란 황금보다 더 값나가는 자신의 말과 약속이라고 말했습니다.

iii) 엘 빠빠모스까스

부르고스 대성당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거대한 입을 벌리는 인형이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소리가 나지 않고 입만 벌릴 뿐인데요. 중세에는 왜 비명을 질렀던 것일까요? 옛날 엔리께 3세가 대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했는데요. 며칠 간 그녀의집 앞까지 따라다닌 왕은 용기를 내어 처녀에게 손수건을 주었습니다. 손수건을 받은 처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며 집으로 들어가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 후로 왕은 처녀를 볼 수 없었지요. 상심한 왕이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하들이 그 집은 벌써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슬픔에 빠진 왕은 그 처녀를 빼닮고, 흐느낌까지 내는 조각상을 만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조각가는 솜씨가 좋지 않았지요. 조각가는 처녀를 빼닮은 조각은 커녕 장난기 있어 보이는 거대한 입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늙은 남자 인형 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비명 소리 때문에 도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는데요. 결국 부르고스의 한 주교가 영영 이 인형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2) 까미노 포인트 (Camino Point)

i) 산따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부르고스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1221년 알폰소 10세와 마우리시오 주교의 후원으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빼어난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세비아, 똘레도에 이어서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스페인 고딕 양식 건물 중에서 가장 빼어나게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대성당은 2차에 걸쳐서 완성이 되었는데요. 첫 번째는 1221년 페르난도 3세의 명으로 프랑스의 건축가 앙리에 의해 신랑과 아름다운 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15세기에 독일인 건축가인 후안 데 콜로니아에 의해 건축된 첨탑과 꼰데스따볼레 소성당입니다.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세 개의 신랑과 아름다운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이 있으며 특히 성당 지붕의 돔은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밖에 13세기에 만들어진 탑과 15세기의 첨탑이 있으며, 여러 세대의 파사드와 현관 등이 손꼽힙니다. 특히 환상적인 에스깔레라 도리다(Escalera Dorada: 금계단)는 꼬로네리아 문으로 이어지고 성당의 내부에는 무수한 조각상과 부조, 회화가 소장되어 있으며 신비로운 산또 끄리스또 데 부르고스 조각상도 있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커다란 신랑 앞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103개의 성직자 의자가 있는데요. 그리고 앞에 수랑과 교차하는 문이 있는데 그 아래에 엘 시드와 그의 아내 히메나의 묘표가 있습니다. 제단의 후면으로는 여러 개의 소성당들이 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숨어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특히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의 천정에는 환상적인 채광창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또한 이 소성당의 오른쪽 성물실 안에는 레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마리아 막달레나의 상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건너 아름다운 산따 마리아 아치를 통과하면 산 페르난도 광장으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이때 한눈에 가득 대성당이 들어옵니다. 광장 앞 나체로 벤치에서 앉아있는 순례자의 조각상에서 기막힌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어 보거나, 대성당을 관람하기 전에 한눈에 대성당을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르고스의 풍경들 1

ii) 산따 마리아 아치 (Arco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아치는 황제 까를로스 5세를 기리며 16세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성벽을 통해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구로, 현재는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이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1943년 스페인의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iii) 산 레스메스 성당 (Iglesia de San Lesmes)

산 레스메스 성당은  15세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15세기의 봉헌화와 16세기의 무덤, 회화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레스메스 성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iv)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은 14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가모날에 위치해 있습니다. 원래의 고딕 양식 대문 앞에 15세기 풍의 십자가를 든 야고보 성인 상이 있습니다.

v)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우엘가스 수도원 (Monasterio Santa Maria Real Huelgas)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은 까스띠야의 알폰소 8세와 레오노르 왕비가 12세기 후반에 지은 건물입니다. 여러가지 우아한 회랑과 부조, 조각 등이 있는데요. 중정에서는 꾸르삐요스 축제가 열리며 테피스트리 박물관도 있습니다. 수도원 건물로 사용되었지만 수많은 왕과 여왕, 왕실 가족들이 묻힌 왕실 판테온이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도냐 레오노르를 비롯한 많은 왕가의 무덤이 있습니다. 

vi) 산 힐 성당 (Iglesia de San Gil)

 산 힐 성당은 13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에 완공되었는데요. 이 성당에는 15~16세기의 흥미로운 봉헌물과 부유한 부르고스 상인이 가져왔다는 커다란 십자가 상이 있는 소성당이 있습니다. 

부르고스의 풍경들 2

vii) 산 에스떼반 성당 (Iglesia San Esteban)

산 에스떼반 성당은 13세기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5~15세기까지 변화를 거쳤습니다. 이 성당에는 아름다운 장미창과 고딕 양식의 회랑이 있습니다. 

viii) 산 니꼴라스 데 바리 성당 (Iglesia San Nicolas de Bari)

 산 니꼴라스 데 바리 성당은 아름다운 묘지와 함께 프란시스코 데 꼴로니아의 석재 봉헌 작품이 눈에 띕니다.

ix) 산 아마로 성당 (Ermita de San Amaro)

아마로 성인은 프랑스 출신의 순례자로 델 레이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순례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17세기 그를 기리기 위해 건축된 이 성당에는 아마로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x) 산 마르띤 아치 (Arco de San Martin)

14~15세기에 걸쳐 건설된 아치는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의 일부였으며 왕족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부르고스를 떠나게 됩니다. 

부르고스의 풍경들 3

xi) 엘 시드의 집 (Solar del Cid)

엘 시드의 집은 18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인데요.  엘 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의 집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xii) 말라또스 다리 (Puente de Malatos)

말라또스 다리는 12세기에 만들어진 다리로 18세기에 재건축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이 다리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은 이 다리를 지나 아를란손 강을 따라갑니다. 

xiii) 까사 델 꼬르돈 (Casa del Cordon)

프라시스코 회의 꼬르돈(Cordon:허리띠)이 이 저택의 현관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까사 델 꼬르돈으로 불립니다. 15세기의 건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 제택에서 가톨릭 왕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아메리카 대륙 탐험을 다녀 온 콜럼버스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또한 1515년엔 나바라와 까스띠아의 통합을 이룬 의회가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은 부르고스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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