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산띠아고 길 5: 오리손~ 론세스바예스(Orrison~ Roncesvalles)

스페인의 산띠아고 길을 가는 오리손에서 론세스바예스 구간은 17km 이며 도보로 약 6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이 길에 위치한 오리손과 론세스바예스, 그리고 기념 성당들과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론세스바예스를 지나는 길의 오래된 바닥의 포장 돌과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나무들은 오랜 동안 이 길을 지난간 사람들의 증인이 되어주고 있는데요. 이 길과 그 길을 지난 순례자들이 현재까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전설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오래된 건물들은 탐욕 때문에 침공한 침략한 군대에게나, 믿음으로 길을 찾아온 순례자들 모두를 위한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피레네 산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이 역사적인 장소에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겨울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피레네 산맥의 봉우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초록색 초원이 가축들에게 먹을 양식을 제공해 준다면, 여러 건축물과 시설은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영토로 발을 들여 놓은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줍니다. 몇 개의 아름다운 성당과 샤를 마뉴, 롤랑, 그리고 론세스바세스 전투와 관련된 역사가 있는 마을인데요. 역사, 예술, 문화, 그리고 전설이 모두 갖춰진 론세스바예스는 순례자와 여행자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곳입니다. 론세스바예스의 순례자 사무실은 일반적으로 오후 4시에 문을 엽니다. 또한 이곳의 알베르게에서는 두 곳 모두 취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원하는 순례자는 저녁 8시 이전에 예약을 해야하며 식당에서 식사를 원하지 않는 순례자라면 미리 세장에서 빵과 과일 등 음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1) 샤를마뉴와 롤랑의 전설

롤랑은 프랑크 왕국의 황제 샤를마뉴의 조카이며 12명의 성기사 중에서 가장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였습니다. 샤를마뉴는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이 아끼는 보검 두란다르트(Durandart)를 하사하였는데 이 검은 요정들이 만든 검으로 산을 쪼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 합니다. 778년 8월 15일 샤를마뉴와 그의 군대는 이슬람 군대에게 사라고사(Zaragoza)를 탈환하려는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후방을 맡고 있던 롤랑의 부대가 롱스포에서 사라고사의 마르실리오 왕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군대에는 악명 높은 배신자인 가늘롱(Ganelon)이 있었는데요. 그는 롤랑의 의붓아버지로 롤랑이 기사로 성공하며 샤를마뉴의 오른팔이 된 것에 대해 질투했습니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롤랑의 군대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지만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롤랑은 부하인 올리비에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왕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설의 뿔인 나팔 올리판테(Olifante)를 불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의 주위에 있던 60여명의 부하들만이 남게 되지 올리판테를 불어 도움을 청했답니다. 이때 사를마뉴는 가늘롱과 함께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요. 올리판테 소리를 들은 가늘롱은 이미 사라고사의 왕 마르실리오와 결탁하여 롤랑을 처치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게 됩니다. 롤랑은 죽는 순간에 성 베드로의 치아가 박혀있는 자신의 칼 두란다르트를 파괴하기 위해 커다란 바위에 내리쳤는데요. 바위만 갈라지고 칼은 멀쩡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롤랑과 열두 명의 성기사, 용감한 부하 올리바에와 튀르팽(Turpin) 주교까지 전멸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뒤늦게 전투에 패한 소식을 접한 샤를마뉴는 후방 부대가 잠복했던 계곡까지 돌아가 끔찍한 대학살을 보고, 죽은 병사들을 위한 가톨릭식 무덤을 마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모두 옷을 벗겨서 함께 매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군과 아군을 함께 매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샤늘마뉴는 하느님께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증표를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와서 입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시체가 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이에 샤를마뉴는 이들을 따로 수습하여 그리스도교 무덤에 매장했다고 하네요. 이것이 로시스 바예(Rosis Valle: 장미의 계곡) 즉, 론세스바예스라는 지명의 기원이 됩니다. 이후 샤를마뉴는 적을 쫓아가 전멸시켰고, 사라고사를 정복했으며 가늘롱과 공모했던 왕인 마르실리오를 죽였습니다. 또한 도망쳐 프랑스에 숨어있던 가늘롱은 신의 심판을 받아 네 토막으로 잘려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샤를마뉴는 롤랑과 그의 부하 올리비에, 그리고 튀르팽 주교의 유해를 프랑스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샤늘마뉴는 당시 이슬람 교도들에게 당황스럽게 패배를 하고 나서 시사 골짜기에서 흐느껴 울었다고 하는데요. 그곳에는 아직도 그의 눈물로 젖은 바위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때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며 젊은 여자들을 불러 모으라고 가르쳐주었는데요. 이에 샤를마뉴는 수많은 아가씨들을 불러 모은 후 그들을 기사처럼 갑옷을 입히고 무장시켰다고 합니다. 이슬람군들은 이들을 샤를마뉴의 대군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에 떨며 항복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젊은 여자들이 발까를로스로 돌아와서 창을 바닥에 꽂아놓고 잠이 들었는데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적이 일어나 땅에 꽂아놓은 창이 꽃이 핀 나무로 변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곳을 바스끄 데 라스 란사스(Basque de Las Lanzas: 창의 숲)이라고 불렀답니다.

론세스바예스는 롤링의 노래와 관련된 것들로 넘쳐납니다. 샤를마뉴가 자신의 군대가 공격 당하는지도 모르고 체스를 두었을 때 사용했다는 아름다운 체스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샤를마뉴의 방이라고 알려져 있는 성령의 소성당에는 롤랑이 죽어가며 주신이 칼을 부러뜨리려고 바위로 내려쳤던 장소가 있고요. 열두 기사와 전투에서 죽은 영웅들이 매장된 장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바네따 언덕에는 롤랑이 도움을 청하며 뿔 나팔 올리판테를 불었던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골짜기 반대편의 발까를로스는 샤를마뉴가 체스를 두다가 도움을 청하는 뿔 나팔 소리를 들었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론세스바예스에서 빰쁠로냐로 가는 길 위, 린소아인(Linzoain)의 출구에는 롤랑과 그의 아내와 아들의 발걸음이 표시되었다는 거대한 돌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2) 거인 왕 산초의 전설

론세스바예스에는 산초 7세의 무덤이 있는데요. 무덤의 크기는 보통이지만 2.5m에 이르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산초 7세의 별명이 엘 푸에르떼(El Fuerte; 강건한 왕)이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산초 7세가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La Batalla de las Navas de Tolosa)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사슬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사슬은 오늘날 나바라 주의 문장이 되었는데 원래는 이슬람 에미르 미라마몰린(Emir Miramamolin)의 막사를 보호하던 사슬이었다고 합니다.

3) 론세스바예스의 성모 발견

전승에 따르면 10세기 경 목동 몇 명이 가축을 돌보면서 밤을 보내고 있던 중에 뿔이 환하게 빛나는 사슴이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목동들은 어느날 밤, 두려움을 떨치고 사슴을 뒤쫓아 가기로 결심했는데요. 그러자 사슴은 어느 한 곳에서 멈추더니 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고 마치 그곳을 파라는 듯한 몸짓을 하고 목동을 쳐다보고 나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목동들이 모두 함께 그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땅 속에 돌로 많은 아치 아래 모셔져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에는 성당이 세워졌고, 발견된 성모상을 성당 안에 모셨습니다. 

4)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Real Coleglagiata de Santa Maria)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초기의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고딕식 성모 마리아님 조각이 보관되어 있는데요.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성직자 회의실에는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이 있습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원래의 건물 자리에 13세기에 재건축된 것인데요. 17세기에 건축된 화랑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회랑이 1600년에 눈의 무게 때문에 무너지고 나서 다시 지은 것입니다. 버팀벽이 있는 견고한 아치는 붕괴 이후 보강을 위해 설치된 것입니다. 회랑의 동쪽 복도에는 방어용으로 지은 수수한 싼마르틴 탑이 서 있습니다.

5) 성령의 소성당(Capilla del Sancti Spiritus)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샤를마뉴의 헛간으로도 불리는데요.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의 남쪽과 산띠아고 성당 옆에 있는 건물로 론세스바예스에서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샤를마뉴의 조카인 롤랑이 두란다르트로 내려친 바위 위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17세기 초반에 반원 아치의 현관문이 추가되었고 론세스바예스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답니다.

6) 산띠아고 소성당(Iglesia de Santiago)

순례자의 소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단순하고 조화를 이루는 고딕양식 성당으로 종탑에는 유명한 론세스바예스의 종(Campana de Roncesvalles)이 걸려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순례자들이 이바네따 언덕부터 이 종탑을 보고 론세스바예스를 찾아옵니다. 성당의 네이브(성당 중앙 신자들이 앉는 부분)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단순한 고딕 양식 궁륭으로 덮여 있습니다. 문의 아치를 받치는 기둥의 주두 장식은 식물무늬입니다. 팀파눔에는 저부조로 키로(XP)를 겹쳐 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가 세겨져 있습니다. 박공벽은 종탑에 닿아 있고 종탑엔 산 살바도르 데 이바네따에서 가져온 종이 걸려 있습니다. 건축 시기는 13세기,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이후에 건축되었습니다.

6) 산 아구스띤 성당 (Capilla San Agustin)

14세기에 비구리아 수사가 건축한 이 소성당에는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의 뒤에 위치한 건물로 나무 못으로 조여진 높은 궁륭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1912년에 태어나 1234년에 사망한 산초 엘 푸에르떼의 영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에 있던 산초 왕의 중세 묘지는 1622년에 파괴되었지만 왕의 와상은 왕의 대퇴부가 60cm라고 측정하여 기록한 필사본 덕분에 복구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조각의 다리는 십자군, 기사단의 묘지에서와 같이 서로 포개져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성당에는 왕이 라스 나바스 데 꼴로사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사슬이 보관되어 있으며 사슬은 나바라의 문장을 장식하는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7) 성당 박물관 (Museo de la Colegiata)

론세스바예스 박물관으로도 알려진 성당 박물관에는 성당에서 오랜 세월 동안 모아 놓은 예술적인 보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여러 시대의 고서, 유골함, 성합, 주교장, 궤, 조각, 회화 수집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샤를마뉴의 체스’(Alpedrez de Caromagno)라고 불리는 금, 은, 칠보로 제작된 고딕식 유골함이 있는데요. 은과 칠보로 제작되었으며 화려한 색에 반투명한 고딕식 유물입니다. 그리고 금은 세공, 자수, 장식, 패널화, 켄버스화, 동판화, 목조, 조각, 칠보 등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회화 작품으로는 르네상스의 거장 루이스 모랄레스(Luis Morales)가 그린 ‘성 가족’(La Sagranda Familia)이 있습니다. 또한 12세기에 은과 보석 장식으로 장정된 복음서도 매우 아름다운데요. 나바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미사용 복음서이기도 합니다. 

8) 순례자 십자가(Cruz de los Peregrinos)

론세스바예스에서 부르게떼로 가는 론세스바예스의 출구 찻길에서 오른쪽으로 14세기에 만든 르네상스식 주두의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순례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또한 이 주변에는 이바네따와 아스또비스까르 언덕 등으로 향하는 수많은 산책로가 있는데요. 근처의 이라띠 숲이나 왕실 소유림에도 가 볼 수 있습니다.

9) 십자가(Cruces)

산 살바도르 데 이바네따 소성당 옆에는 조그마한 언덕에 순례자들이 놓고 가는 나무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이런 식으로 순례길 고유의 풍습을 자신들에게 적용했는데요. 아이메릭 피카우드는 놀라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썼습니다. “순례자들ㅇ느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산띠아고를 향해 기도한다. 이곳에는 천 개도 넘는 십자가가 있는데 이곳에서 순례 중 산띠아고 성인께 처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10) 롤랑의 기념비(Monumento de Roldan)

산 살바도르 소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론세스바세스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기억하게 해주는 돌로 된 유물이 있는데요.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샤를마뉴가 롤랑이 얼굴을 스페인으로 향한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곳이 이바네따 정상 혹은 싼 살바도르 소성당 터였다고 합니다. 또한 빈사 상태의 롤랑이 샤를마뉴에게 알리기 위해 뿔 피리를 불게 했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2. 나바라(Navara)

아마도 나바라만큼 풍성한 기후, 경관, 문화를 지니고 다채로운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면 피레네 계곡의 습기와 피스뚜(바스크 지방의 구멍 세 개짜리 피리) 소리가 들리고, 소르시꼬(바스크 지방의 민요)가 울려 퍼지는 바스크 지역부터 가죽피리 소리에 맞춰 남녀노소가 춤을 추는 중부 나바라 지방과 호따 춤의 본고장인 에브로 강 유역을 모두 지날 수 있습니다. 나바라는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독립 왕국이었는데요.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기념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순례길이 나바라를 지나면서 한 개의 길로 합쳐집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오래된 왕국의 아름다운 예술적 유물로 많습니다. 이 중 론세스바예스의 왕실 부속 성당, 나바라 박물관, 빰삘로나 대성당, 올리떼 성, 나바라 데 에스떼야 왕궁, 레이레 수도원, 이라체 수도원, 뿌엔떼 라 레이네 다리 등이 있습니다.

나바라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거나 시골 관광, 생태 관광을 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피레네 지역의 높은 산과 왕실소유림, 이라띠의 숲 같은 울창한 숲, 바르데나 레알레스의 건조한 지역, 에브로 강 연안의 과수원, 띠에라 에스페야 산과 중부 나바라의 곡창지대 등 나바라에는 압축된 공간에 다양한 경치와 자연 서식지가 있습니다. 또한 나바라는  여러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한데요. 등산, 암벽 등반을 할 수 있고, 예사, 아요스 호수에서 수중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전통적인 스포츠를 즐길 장소도 많습니다. 축제에 관심이 있다면 란츠, 이뚜렌, 수비에따 등에서 열리는 지방 카니발 같은 오래된 축제를 즐기면 됩니다. 그리고 빰삘로나 거리에서 열리는 엔시에로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싼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min)가 열립니다. 전통적인 카니발과 세계적인 축제의 특징을 모두 갖춘 행사로로는 ‘마녀들의 밤’(Noche de las Brujas)같은 축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나바라의 장점들은 훌륭한 도로망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데요. 적절한 대중교통과 좋은 호텔들, 캠핑장, 호스텔, 전원주택도 갖춰져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D.O. Navara 같은 이 지방 고유의 와인, 치즈, 고기, 산악 지방에서 만든 소시지, 칸타브리아해 연안에서 잡히는 생선, 뚜델라의 알카초파와 삐끼요의 고추 같은 에브로 강 연안의 야채, 과자류, 그리고 유명한 파차란(Pacharan: 아니스와 자두로 만든 리큐르) 때문에 나바라 식도락 순례는 더욱 훌륭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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