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기도하는 목적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타로 이르는 길과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묻히신 순간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영적으로 동행하면서 주님의 수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마지막 부분을 회개와 연민의 정신으로 묵상하기 위함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건들에 대한 신자들의 묵상은 다양한 신심 행위로 발전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기도하는 목적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타로 이르는 길과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묻히신 순간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영적으로 동행하면서 주님의 수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마지막 부분을 회개와 연민의 정신으로 묵상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성주간에 예수님 수난 여정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기도를 봉헌하면 신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의 순서



1. 십자가의 길에 대한 전승과 전통

십자가의 길 기도는 성소 공경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난 장면을 상상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수난 현장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집니다. 5세기부터 전해오는 시리아의 위경인 ‘성모 안식(De transitu Mariae)에는 종교적 전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아드님이 수난받으며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매일 걸었다고 합니다(Dictionnaire de spiritualite, II, col. 2577 참조). 예로니무스 성인은 385년에서 386년 사이에 고귀한 바울라 성년의 팔레스티나 성지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녀는 제1처에서 제14처까지 모두 아주 열심히 돌아보았습니다. 나머지 곳들도 돌아보길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면 제1처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을 겁니다. 십자가 아래에 엎드려, 성녀는 마치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는 듯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부활 경당(아나스타시스 또는 로탄다)에 들어가 천사가 굴려 놓았다고 하는 돌에 입 맞추었습니다. 또한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물가에 닿은 것처럼, 깊은 믿음에서 우러나와 주님이 누워 계셨던 그 자리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얼마나 목 놓아 울었는지 성녀가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알 수 있는 만큼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였지요(예로니무스 성인, 108, Letters, 108(Epituphium sancte Paul),9).”

우리는 또한 4세기 말 성지로 여행한 순례자 에게리아 덕분에 당시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던 전례 의식 일부에 대해 아주 소상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 의식 가운데 상당수가 각 처와 관련된 복음의 사건을 읽고, 한 편 이상의 시편을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덧붙여, 에게리아는 성목요일과 성금요일의 성스러운 의식을 묘사하며, 신자들이 긴 행렬을 지어 올리브 산에서부터 골고타까지 걸어갔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면서 걸어서 예루살렘 시내로 행렬하여 가면 사람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에 성문에 도착합니다. 예루살렘 시내에서는 노인과 청년, 부자와 가난한 이 구별하지 않고 모두 행렬에 동참합니다. 특히 그날 아침까지의 밤샘 기도에 모두 참여합니다. 겟세마니를 떠나 성문까지 주교님을 모시고 간 다음 예루살렘 온 시내를 거쳐 십자가까지 행렬합니다.(Itinerarium Egeria, 36,3 (CCL.175,80)).” 

후의 설명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지나 가신 길이 점차 밝혀졌고, 동시에 각’처’들, 즉 신자들이 수난의 각 이야기들을 묵상하기 위해 멈춰서는 지점이 결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11세기와 12세기의 십자군과 14세기 이후의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러한 전통을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요. 따라서 16세기쯤 예루살렘 안에서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14처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길(슬픔의 길이라는 뜻)로 알려진 오늘날의 길과 같아졌습니다. 

그때 이후로, 예루살렘 밖의 신자들도 실제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처럼 복음 속 장면과 사건들에 대해 묵상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을 세우는 관습이 퍼졌습니다. 그 관습은 도미니코 수도사였던 코르도바의 알바로 복자가 스페인에 처음으로 보급했고, 그곳에서 사르디니아로, 그리고 다시 유럽의 나머지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신심 행위를 퍼뜨린 사람들 가운데에서 단연 으뜸은 포르토 마우리체의 레오나르도 성인입니다. 1731년부터 1751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선교하는 과정에서 570개가 넘는 ‘십자가의 길’을 세우고, 1750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도 14세가 콜로세움에 십자가의 길을 세우자, 기념 미사에서 강론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교황들 또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사를 줌으로써 이 신심 행위를 장려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서, 아주 가까이서 따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펼쳐 들고 주님의 수난기를 읽으세요. 하지만 그저 읽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살아내십시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에 자신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호세 마리아 성인, The Way of the Cross, 9.3). 그것이 바로 수백 년 동안 성인들이, 그들과 함께한 수 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본 방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신비입니다(가톨릭 교리서, 571항 참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건들에 대한 신자들의 묵상은 다양한 신심 행위로 발전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 기도입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속죄하고 보속할 마음이 듭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이러한 장면들을 재현하면 생생한 체험 덕에 그 자체로 우리 영혼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더 불타오르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70년에 이미 파괴되어 버렸고 현재의 거리 배치도는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로마인들이 다시 지은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따르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 주님이 걸었던 정확한 길을 재현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완전히 정확하게 밝히려면 1세기 전반기 예루살렘 도성 차원의 고고학 연구가 행해져야만 하지요.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어쩔 수 없눈 불확실설을 제쳐놓고 보면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따랐던 최고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14처에 묘사된 사건들로 말할 것 같으면, 대부분은 복음에 직접 언급된 것이고, 그 외의 것들은 경건한 그리스도교 전통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들입니다. 

2.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

십자가의 길 1처

매주 금요일, 오후 세시만 되면 예루살렘에서는 십자가의 길로 내려가는 긴 행렬이 나타납니다. 행렬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 또는 대표가 앞장서고 수많은 순례자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신자들,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이 함께 합니다. 행렬이 시작되는 지점은 성전 안뜰의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 엘 오마리에 이슬람 학교의 테라스입니다. 1세기에 로마의 수비대가 주둔해 있던 안토니아 성채가 있던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전통적으로 그곳은 본시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심판했던 법정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3.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

십자가의 길 2처 경당

학교를 떠나 십자가의 길을 가로지르면 프란치스코 수도원 소속의 주님 채찍 성당이 나옵니다. 그곳은 정면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서연구소가 있고 양쪽에 성당과 함께 커다란 수도원 주위로 건물이 들어서 있는 단지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주님 채찍 성당은 12세기의 성당 유적 위에 1927년에 다시 재건된 것이다. 길과 마주한 성당 외벽에는 제2처라는 표시가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요한 19,17).” 

조금 더 나아가면 길 위로 반원형 아치가 가로지르는데, 아치는 두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로도 쓰입니다. 이곳은 에체 호모(Ecco Homo, 보라, 이 사람이오) 아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바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기둥에 대고 채찍질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게 한 다음 군중들에게 보여 준 곳입니다. 사실, 그곳은 19세기에 완성된 에체 호모 대성당 안의 제단 뒷벽으로 쓰이고 있는 북쪽 입구가 시온 수도회의 예루살렘 에체 호모 수녀원 안에 보존되어 있는 개선 아치의 중앙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그 아치가 안토니아 성채 안에 있던 것이라고 상상하듯이 그 구역의 돌판 몇 장도 리토스트로토스(요한 19,13)라고 하는 재판석의 돌판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 사형 선고 성당과 시온의 에체 호모 수녀원에서 볼 수 있는 돌판들이 재판석의 돌판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아치와 돌판은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 시대보다 약간 후대인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이 지점에 이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도 전에 이미 얼마나 큰 고통을 받으셨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십자가의 길 3처

십자가의 길은 살짝 내리막 경사가 계속되면서 다마스쿠스 문에서 나오는 길을 가로지릅니다. 다마스쿠스 문은 엘 와디(계곡) 또는 티로포이온 계곡이라 불립니다. 왼쪽으로 돌아 거의 모퉁이에 이르면 제3처가 있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총주교 관할인 경당이 있습니다. 

5.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십자가의 길 4처 경당

몇 미터 더 가면 제4처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에도 역시 아르메니아 가톨릭 관할 성당이 있습니다. 그곳 지하성당에는 성체조배 행렬이 끊이지 않지요. 성모님은 아드님이 수난을 당하는 동안 곁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얼마 후 골고타에서 성모님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6.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십자가의 길 제5처, 시몬 기념 성당

제4처가 끝난 직후 엘 와디 거리를 떠나 오른쪽으로 돌면 다시 십자가의 길이 나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이 구역은 지극히 옛 도시의 전형적 특성이 드러납니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이 몇 미터마다 등장하고, 거리 양쪽의 건물들을 잇는 아치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시작 지점과 마찬가지로 왼쪽에는 13세기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유인 경당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제4처가 나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마르 15,21).

7.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

십자가의 길 6처 경당

베로니카라는 여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외경 저작에 근거한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이 카파르나움에서 하혈병을 고쳐주신 베레니체라는 여인이었는데, 베레니체의 라틴어 표현이 베로니카입니다. 중세에는 그 여인의 집이 십자가의 길 중간 지점인 이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지점에는 문이 직접 길로 바로 나 있는 작은 경당이 있고 그 위에는 그리스 가톨릭 성당이 있습니다. 

8.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심

십자가의 길 7처

오르막 경사 막바지에서 십자가의 길은 다마스쿠스 문에서부터 이어진 소란스러운 시장 골목인 칸 에즈 자이트(Khan ez-Zait, 기름 시장)와 합쳐집니다. 구시가지의 무슬림 구역과 그리스도인 구역을 나누고 있는 다마스쿠스 문은 고대의 카르도 막시무스나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의 번화가 터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7처는 교차로에 있는데, 그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유의 경당이 있습니다. 

9.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두 번째 넘어지신 장소에서 서쪽으로 뻗어있으며 십자가의 길 연장선상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거리를 따라 몇 미터만 가면 제8처가 나옵니다. 이곳은 경당은 없고 그냥 거리의 벽에 표시를 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루카 23,28;23,31)”

10.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십자가의 길 9처

예전에는 제9처까지 더 곧장 질러가는 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시장까지 되돌아가서 남쪽으로 몇 미터 따라가다 거리의 오른쪽에 나있는 계단을 몇 개 더 올라가야 합니다. 

골목 끝에는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신 장소라는 표식이 되어 있는 기둥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은 에티오피아의 수도원 안들로 이어지는 입구와 성 안토니오 콥트 교회 사이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넘어지심을 떠오르게 하는 장소는 주님 무덤 대성당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10처에서 14처까지 마지막 다섯 곳은 바로 이 대성당 안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시장으로 되돌아갔다가 남쪽에 있는 정문 앞 작은 광장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거리를 ㄹ따라가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성금요일에 행렬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 바로 이 노선이지요. 또는 대성당의 낮은 경당들 가운데 일부의 꼭대기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의 수도원 안뜰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택한 후 골고타의 십자가 현장 바로 옆에 있는 광장에 직접 출입구가 나있는 건물 지하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11.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심

십자가의 길 10처

주님 무덤 대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는 십자가 처형의 현장인 골고타 처형의 현장인 골고타의 경당들로 이르는 매우 가파른 돌계단 두 개가 나타납니다. 계단의 높이는 대성전 바닥에서 대략 5미터쯤 됩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순례자들은 보통 제10처를 묵상하기 위해 멈추어 서게 됩니다. 

12.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십자가의 길 11처

제10처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제11처인데,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보여주는 모자이크로 장식된 제대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 소유입니다.

13. 제12처: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십자가의 길 12처

예수님의 십자가가 발견된 경당 왼쪽으로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인 골고타 경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유리 덮개를 통해 볼 수 있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지요. 그 아래로는 십자가가 세우졌던 구멍이 원형 은 조각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른쪽의 드러나 바위 부분에는 그리스도가 돌아가실 때 일어났던 지진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균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습니다(마태 27,50-51). 바위의 갈라진 틈은 또한 아담 경당 바로 아래에서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가 언급하고 있는 신앙 전승에 따르면 그곳에 최초의 인간 아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땅이 갈라졌을 때 예수님의 피가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아담의 두개골을 흠뻑 적시게 되었고, 그 피로 인해 아담이 인간 중에 첫 번째로 구원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상화에 보면 십자가 밑에 해골을 배치하는 관습은 이러한 전승에서 유래했습니다. 

14.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십자가의 길 13처

예수님의 시신이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장면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발견된 경당과 골고타 경당 사이에 슬픔의 성모께 바쳐진 제단에서 기념되고 있습니다. 

15.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십자가의 길 14처

골고타에서 내려와 대성전의 아트리움으로 되돌아가면 성유의 돌(Stone of Unction)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특히 공경하는 대상입니다. 그것은 흰 중이 나 있는 붉은 기가 도는 돌인데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시산을 잘 돌보았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계속 가면 돔 지붕을 얹은 원형 기념물인 로탄다가 나오는데, 그 중앙에 주님 무덤 경당이 서 있습니다. “골고타 언덕 가까운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아리마태아 요셉은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을 갖고 있었다. 그날은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 전날이었으므로,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그러고 나서 요셉은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마태 27,6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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