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케렘은 ‘포도밭의 샘’이란 의미로 세례자 요한과 관련된 성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는 성모님 방문 성당,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 그리고 세례자 요한 광야 동굴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 외에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흔적이 있는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엔 케렘에 위치한 성당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엔 케렘(En Kerem)
엔 케렘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킬로미터쯤 떨어진 외곽의 작은 마을입니다. 밝은 색 석조 건물들은 소나무와 편백나무 사이로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층층이 셖여있는 녹음 우거진 산비탈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는 듯 보입니다.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는 이 마을에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듯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까웠으므로 육개월마다 돌아오는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 편리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고대 전승에 따르면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도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천사로부터 주님 탄생 예고를 들은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는데(루카 1, 39), 그 고을이 바로 이곳 입니다. 그리고 석 달 후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는데(루카 1, 57), 그 아들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도 이 마을 입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이 두 사건을 기념하여 두 곳에 성당이 세워져 있어요. 한 곳은 누구라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어 준 샘을 지나 마을 남쪽을 끝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이고, 다른 한 곳은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으로 여겨지는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입니다. 17 세기 이후로 두 성당은 모두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에 속해 있습니다.
2.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
마리아는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습니다. 엘리자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안에서 아기가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시는 분! (루카 1, 40-45)”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에 가려면 엔케렘과 주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파른 계단 길로 올라가야 합니다. 언덕 꼭대기 이르면 길은 멋진 철 대문 안으로 이어져 있어요. 마당 왼쪽의 성당 정면에는 천사들에 둘러싸여 당나귀를 타고 나자렛에서 이곳까지 찾아오는 성모님이 그려진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오른쪽 문 옆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표현한 청동상이 서 있지요. 그 뒤로 뻗어있는 벽에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가 적힌 타일들이 빼곡히 부착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펼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 46-55).
고고학 발굴로 비잔틴 시대부터 이곳에 그리스도인들의 경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십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곳은 2 세기부터 전해온 위경인 ‘야고보 원 복음’에 서술되어 있는 사건을 기념하고 있었답니다. 그 사건이란 마리아의 방문 이후에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마태 2,16)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죽이고 다니던 헤로데의 병사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엘리사벳이 아기를 데리고 도망친 일입니다. 이 사건의 현장은 안뜰을 지나 들어가면 나오는 지하 경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쪽에 샘에서 흘러드는 물이 고인 수반이 있고 석조 아치형 천장으로 덮인 고대 두 동굴이 있는 정사각형의 경당이지요. 오른쪽 벽감에는 요한 모자가 그 안에 숨어 있다고 전해지는 기적의 바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1940년에 완성 된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은 12 세기의 십자군이 지은 지하 경당 오예 건축 되었습니다. 그곳에 들어 가려면 안뜰에서 시작되는 바깥 계단을 올라 꽃이 만발한 구역을 구불구불 지나게 됩니다. 성당 안의 그림들과 모자이크에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마리아, 신자들을 외투로 감싸 보호해주며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는 성모 마리아, 에페소 공의회에서 천주의 모친으로 선포된 마리아,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복자가 주장한 원죄 없는 잉태론의 동정 마리아, 레판토 해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개입한 마리아 등 오랜 세월에 걸쳐 찬미 받아 온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3.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
“엘리사벳은 해산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루카 1, 57-63).”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겅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조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68-79).”
현재의 성당은 12 세기의 십자군이 비잔틴 시대의 성당 건물을 보존 하려고 세운 성당 건물에 그대로 지었습니다. 17세기에서 20 세기 사이에 복구가 진행되면서 건물을 증축하면서 꾸몄고 귀중한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돔형 성당은 중앙 회중석과 두 개의 측량을 갖추고 있고, 북쪽의 후진(제단 뒷벽)에는 움푹 들어간 동굴이 있습니다. 이것은 1 세기 유대인 집의 일부가 틀림없는데, 전승에 따르면 즈카르야의 집 이라고 합니다. 제대 바로 아래는 ‘여기에서 주님의 선구자가 나셨다(His Praecusor Domini Natus est) 라고 주장하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환희의 신비
“복음 속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에 퍼져 있는 분위기는 환희입니다. 마리아의 방문의 신비는 환희의 신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자베스의 태 안에서 기뻐 뛰어놉니다. 태중임을 기뻐하며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에 화답하여 마리아의 입에서는 구세주에 대한 환희가 넘쳐흐르는 찬미가 마리아의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환희의 신비스럽고 감춰진 원천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원천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고 있음을 성령에게 감사했고,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예속시키는 두려움, 고통, 슬픔, 죄의 뿌리와 맞서 이미 싸우기 시작한 예수님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79년 3월 31일 강론).”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이기적으로 살아갈 때 슬퍼진다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우리의 소망에 빛을 주는 친구와 형제로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환희의 원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 된 직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슬픈 사람이 되지 맙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슬퍼할 수 없습니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많은 소유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가운데에 계시는 인성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서 옵니다. 우리는 어려운 순간에도, 삶의 산적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많은 문제와 난관에 봉착했을 때라도, 혼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환희가 생겨 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3년 3월 24일 강론)”
3. 세례자 요한 광야 동굴 수도원(St. John in the Desert)
성모님 방문 성당과 세례자 요한의 출생 성당 다음으로, 광야의 세례자 요한 피난 동굴은 헤로데 임금의 학살을 피해 도망갔던 곳을 기념합니다. 이곳에는 성당, 동굴, 샘, 그리고 엘리사벳의 무덤이 있는데요. 세례자 요한 기념 성당은 예루살렘 외곽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 있는 샘 옆에 세워졌습니다. ‘은둔자의 샘’이란 뜻의 아인 엘 하비스(Ain el-Habis) 불리는 이 샘은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종종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방교회 신자들이 방문해 치료를 위한 입수를 하기도 하지요. 성당에서 경사면을 따라 숲 길로 올라가면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무덤으로 전해진 곳이 나옵니다.
이 수도원은 고아로 자라난 세례자 요한이 공적 사목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광야”를 기념하는 곳이기도 합니다(루카 1, 80).
이 지역에 최초의 그리스도교 수도원이 세워진 것은 6세기였습니다. 그 후 파괴되었다가 예루살렘 십자군 왕국 시대에 복원되고 확장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1920년대에 이 수도원을 복원하고 대규모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성당은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토니오 발루치가 설계를 했습니다. 성 요한 수도원은 1960년대에 버려졌고 완전히 황폐해졌습니다. 21세기 초에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이 수도원 건물을 임대했지만, 나중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반환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소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