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늘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후 타보르 산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시죠.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 공생활 후기의 배경이 되는 타보르산,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예수님의 타보로 산 방문과 예루살렘 방문과 수난, 죽음과 부활
1) 거룩한 변모-타보르 산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마르 9, 2)”
복음서는 갈릴래아 바다로 돌아오신 예수님이 사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고, 이곳에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다고 전합니다. 원전에는 이 산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요. 직전의 사건이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있었다 하여(마태 16, 13-20; 마르 8, 27-30), 초기의 교회사가인 에우제비오는 이 장소를 헤르몬 산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도 이 사건과 타보르 산을 연결시키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따랐습니다. 타보르 산은 성경 시대에 세 지파의 경계점 역할을 한 중요 랜드마크였으며, 그리스의 요새였다가 나중에는 유다인의 요새가 된 곳입니다.
마태오는 거룩한 변모 이야기에 이어 카파르나움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이 유혹에 걸리지 않게하기 위해” 베드로에게 반 세켈의 성전세를 내도록 하셨다고 기록합니다(마태 17, 24-27).
2)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요한 2, 13)”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에는 없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이 몇 차례 더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루카2, 41) 해마다 과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요한 2, 13-22은 과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돈 바꾸는 이들과 비둘기 파는 이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신 이야기로, 다른 복음서들에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당시의 사건으로 나타납니다(마태 21, 12-13; 마르 11, 15-17; 루카 19, 45-46). 요한은 바로 이 기간에 예수님이 유대아에서 세례를 베푸셨고, 세례자 요한도 살림 근처의 물이 많은 애논 평야에서 같은 사목을 했다고 전합니다(요한 3, 22-24). 사마리아를 지나시던 예수님이 시카르 성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고, 사마리아인들과 이틀을 머무시며 많은 이들을 믿게 하신 것도 바로 이 기간에 있었던 일이지요.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도 다른 예루살렘 방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간 중 예수님은 벳자타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나타난 예수님이 마지막 여정은 공관복음과는 조금 다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가을인 초막절에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 초겨울인 성전 봉헌 축일(하누카)에도 여전히 그곳에 계셨다고 전합니다(요한10, 22). 그 후 예수님은 요르단 건너, 아마도 벳 아라바로 돌아오신 듯하며(요한 10, 40), 다시 베타니아로 오셔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고(요한 11, 1-44). 한 번 더 예루살렘 북동쪽에 있는 광야에 가까운 에프라임으로 물러가셨습니다(요한11, 54).
3) 1세기의 순례
“그러나 나만은 축제 때에,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영원한 규정에 쓰인 대로 자주 예루살렘으로 갔다. 나는 그때마다 맏물과 맏배와 가축의 십분의 일과 그해에 처음 깎은 양털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가서…(토빗 1, 6)”
제2성전 시대에는 시나이 산에서 주어진 말씀-“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 (탈출 23, 17);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곧 이스라엘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34, 23)”-에 따라 반드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년 장거리를 세 차례나 여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해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명령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고대사 4: 203-204).
그럼에도 루카는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루카2, 41)” 라고 하며 예수님 가족의 신심에 대해 언급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예리코를 지나셨다(마태20, 29; 마르10, 46; 루카19, 1)”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갈릴래아에서 출발하신 예수님이 트랜스요르단의 베로이아 지방을 지나 아두밈 비탈길(여호15, 7) 근처의 로마 도로를 따라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해 가셨다는 것(요한4, 4-6)은 그분이 때로는 중앙 산악 지대를 지나는 분수령 길로 가셨음을 암시합니다. 이 길은 삼 일만에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최고로 짧은 거리였지요(자서전 268-270). 그러나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적대감이 고조되면서 매우 위험한 길로 여겨지곤 했습니다(전쟁사 2: 232-233; 고대사 20:118; 루카10, 30-37).
고대 문헌들에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또 다른 경로가 언급되어 있는데, 에프라임 산 기슭을 따라 안티파트리스를 지나고 벳호론 비탈을 넘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전쟁사 2: 228)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루살렘 순례와 관련하여 이 경로가 언급된 적은 없습니다.
4) 예리코의 겨울 궁전
예리코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져 있는 와디 켈트 어귀에는 하스모니아 왕조와 헤로데 왕조의 겨울 궁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이 유적은 이 지역을 번영시킨 하스모니아 왕가의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 이후 헤로데 대왕은 “여행자들을 위해 더 유용하고 더 편리한”(전쟁사1:407) 건축물들을 추가로 세웠습니다.
헤로데는 바로 이곳에서 죽었고, 그의 시신은 베들레헴 남쪽 헤로디움에 매장되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왕국의 그의 세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장자인 아르켈라오스는 영주 작위와 함께 유대아 지역과 해안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고, 왕이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왕위를 약속받았습니다. 10년 후 그는 아버지의 왕위를 얻기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라간 백성의 대표단이 아르켈라오스의 수많은 잔인한 행위들을 고발하며 그의 퇴위를 요구했고,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폐위하여 가울(Gaul, 프랑스)로 보냈습니다(전쟁사 2:34).
학자들은 이 사건과 예수님이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말씀하신 비유의 배경이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루카복음 19, 11-27은 어떤 불의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음을 전합니다.
1세기 순례자들은 예리코의 겨울 궁전을 지나면서 헤로데의 잔인한 아들을 떠올리고는 조롱했을 겁니다. 이 왕궁은 아르켈라오스가 결코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리코를 지나시던 예수님이 왕이 되려는 사람의 비유를 언급하신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5)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루카 9, 51)”
갈릴래아에 머무시던 예수님은 영광 받으실 때가 가까와 오자(루카 9, 51)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운명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고 제자들은 매우 근심했습니다(마태 17, 23).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정 속에 루카복음 9, 51-56의 사건을 끼워 넣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짧은 경로로 예루살렘에 가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요르단 강 건너 유대아 지역” 곧 베로이아를 지나가셨습니다. 여기서 다시 요르단을 건너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예리코 길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리코에서 세관원장 자캐오의 집에 머무셨는데, 그는 아마도 로마 황제가 헤로데 왕조에게서 넘겨받은 요르단 골짜기의 땅에서 세금을 거두던 사람인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에서 나가실 때에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를 고치셨습니다(마태20, 29-34; 마르 10, 46-52).
그 후 예수님은 올리브 산 벳파게와 베타니아로 순례길을 이어가셨는데, 베타니아에서는 라자로의 누이인 마르타와 마리아 집에 머무셨습니다.
6) 예수님께서 심문, 재판, 사형선고 받으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마태 26, 37-39)”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은 올리브 산 동쪽 기슭에 있는 베타니아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타니아 맞은편 마을에서 발견한 암나귀 새끼를 타시고 영광스러운 입성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가시자 사람들은 순례자를 축복하던 전통대로 시편 118, 26을 인용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네.”라고 응답했습니다. 공관복음서들은 바로 이 시기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이들을 내쫓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 (마태 21, 12-13; 마르 11, 15-17와 루카 19, 45-46 참조).
그 주 후반에 예수님은 갈릴래아 출신의 제자들과 함께 당시의 유다교 규정에 따라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어느집의 커다란 위층방에 자리를 마련(마르 14, 15; 루카 22, 12)하시고 과월절을 기념하시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이 집은 예수님을 매우 잘 아는 사람의 집으로 제자들을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올리브 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니(기름짜는 틀)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칼과 몽둥이를 든 무리에게 체포되셨는데, 이들을 이끌고 온 이는 열두 제자 중 하나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스카리옷 유다였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대사제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가신 예수님은 전 대사제였던 한나스와 그외의 성전 지도자들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이 궁궐같은 집 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맙니다.
성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중한 답변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로 밝히고 계심을 알아챘습니다. 그들은 “유다인의 왕”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을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루카복음 23, 6-12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님)이 헤로데의 관할에 속한 줄 알고,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보냈지만 그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헤로데 왕가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보통 하스모니아 왕조의 옛 궁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안티파스도 이곳에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총독인 빌라도는 (일반적으로 유대아 총독이 머물던 카이사리아가 아니라) 예루살렘 서쪽 지역에 있는 관정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곳은 과거에 헤로데 대왕의 왕궁이었습니다 (마르 15, 16; 사도 23, 35).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무리가 순례하는 과월절 기간 동안 성전을 감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에게 심판을 받으셨다는 말씀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여기서 예수님을 골고타로 끌고 갔는데, 이곳은 전통적으로 예루살렘 제2성벽 밖에 있는 어떤 장소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로마 관례에 따라 십자가에 달리셨고, 근처에 있는 아리마태아 요셉이 소유한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7) 부활 그리고 승천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루카 24, 2-3)”
복음서들은 이어서 한결같이 십자가 이후의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째 되던 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갈릴래아 (마태오, 마르코에게)와 유대아, 엠마오, 베타니아, 예루살렘(아마도 요한, 루카, 마태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올리브 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전합니다(사도 1,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