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산 성지들- 예수님 수난 여정을 따른 5개 성당들


성주간이 시작되면 예루살렘에는 매년 순례자들로 넘쳐납니다. 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성 주간이 동, 서방 교회가 한, 두 주 차이가 나거나 아니면 맞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욱더 각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붐비게 되지요. 그리고 성주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유다인의 과월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많은 유다인들이 방문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기념하고 있는 각 성당이나, 유다인의 성지인 통곡의 벽 등은 발디딜 틈이 없이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기도하며 기념을 합니다. 성주간에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올리브 산의 성지들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글의 순서



1. 올리브 산 성지: 베타니아(라자로의 무덤, Tomb of Nazarus)

베타니아, 나자로의 마을

1) 베타니아 특징과 유적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2km 떨어진 올리브 산 남동쪽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부근에 있는 벳파게와 함께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마지막 쉼터였습니다. 고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은 아니지만 그저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에서 풀려나 돌아 온 후 벤야민 지파가 자리잡은 마을 가운데 하나인 ‘아냔야(Ananiah)’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후에 ‘~의 집’을 뜻하는 접두사 ‘벳(Beth)’이 붙어 익숙한 이름인 ‘베타니아(Bethany)’로 발전했지요. 

베타니아: 라자로 성당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는 주님을 자주 집으로 모셔 대접했을 것입니다. 특히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인 성지주일부터 체포되어 수난받기 직전의 며칠 동안은 더 자주 모셨을 것이지요. 베타니아는 예루살렘과 매우 가까웠으므로 체포되기 전 한 주 동안 예수님은 올리브 산을 넘어 두 곳 사이를 매일 오갔고, 밤이 되면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하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려 칭찬을 받은 여인이기도 합니다. 

2) 베타니아의 역사

베타니아는 예수님이 몇 차례나 머물렀을뿐 아니라 특히 그곳에서 행한 놀라운 기적 때문에 유명합니다. 그 기적은 바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이지요.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예수님의 친구 라자로의 무덤은 성소로 추앙을 받았고, 4세기에는 그곳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을 나타내는 비잔틴 시대의 이름 ‘라자로에게로’는 베타니아를 뜻하는 아랍어 이름 알 아자리야 또는 알 아자리예의 어근에 남아 있어요. 그러나 집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고고학 발굴로 비잔틴 시대의 성당 모습 일부가 드러났어요. 주님 무덤 대성당처럼 그 시대의 다른 성당을 본 떠 동쪽에는 대성전을 짓고, 서쪽에는 성소로 추앙받는 장소에 기념물을 세운 후 그 사이에 안뜰을 배치하는 구조로 구성되었습니다. 대성전은 중앙 회중석과, 코린토 양식의 기둥으로 분뢰된 두 개의 측량을 갖추고 바닥에는 다채로운 모자이크가 깔려 있었어요. 이 건물은 아마도 지진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에 또 다른 성당이 지어졌는데, 원래의 성당 기초를 일부 사용했지만 건물 전체가 동쪽으로 옮겨져 건설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계속 존속하다가 십자군 시대에 이르러 복원이 되면서 멋지게 꾸며졌습니다. 또한 12세기에는 라자로의 무덤이 있던 곳에 새로운 대성전이 지어졌는데, 바위를 깎아 낸 동굴이었던 라자로의 무덤은 지하 소성전이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예루살렘 왕국의 멜리센드 여왕의 주도로 베네딕도 수녀원도 세워졌었어요. 

이 건물들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는데요. 안뜰과 무덤 구역에는 모스크가 들어섰고,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은 대체로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1566년에서 1575년 사이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에서 라자로 무덤의 출입권을 가까스로 얻어냈지만 외곽에서 계단으로 된 입구를 팜으로써 새로운 길을 내야만 했습니다. 이 성지는 계속 무슬림의 소유로 남아 있지만 계단 통로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지요.

195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비보호관구는 동쪽 면에 있는 비잔틴 시대의 대성전 유적 위에 현재의 성당을 지었습니다. 이 성당은 그리스 십자가 모양의 외형에 분묘의 형태를 띠고, 위에 돔이 올려진 8각형 모양의 지붕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각 가지는 마르타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 라자로가 죽은 후 예수님을 맞아 들이는 두 자매, 라자로의 부활, 시몬의 집에서의 식사 등 베타니아와 관련된 복음 속 가장 중요한 장면을 나타내는 둥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요. 성당의 구조는 어스름한 내부와 둥근 지붕으로 흘러들어 오는 빛 사이에 강한 대조를 자아내 죽음과 부활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2. 올리브산 성지: 벳파게(예루살렘 입성 기념 성당, Bethphage)

벳파게성당(Beitphage)은  “익지않은 무화과나무의 집”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의 올리브산에 위치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당입니다. 이 성당에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실 때 당나귀를 타셨던 것으로 알려진 돌이 있습니다.

베파게 예수님 입성 기념 성당

1) 성당의 역사

1883년에 세워진 현대 성당은 예루살렘에 속한 지역인 벳파게(Bethphage)라는 고대 마을에 위치해 있던 12세기 십자군 성당의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에는 베타니아(Bethany)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별도의 고을이었을 것입니다. 이 성당은 올리브산에서 동쪽으로 내려가 알-아자리에 el-Azariyeh(고대 Bethany) 마을로 향하는 가파른 길 옆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기념 성당

십자군 시대 성당은 나자로의 누이 마르타와 예수님의 만남을 기념하는 4세기 비잔틴 성당의 기초 위에 세워졌는데요.[1] 1867년, 그 부지에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석고로 덮인 정육면체 모양의 돌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돌은 벳파게의 석비라고 불립니다. 12세기 십자군 성당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현재는 성당 안의 북쪽 벽 근처에 놓여 있습니다. 십자군은 이 돌을 장식하고 라틴어로 예루살렘과 벳파게 지역에서 일어난 성경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새겨 놓았습니다. 1950년에 돌에 새겨진 그림과 장식이 복원되었고,  5년 후인 1955년에는 성당의 벽과 천장에 프레스코가 그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12세기 때와 마찬가지로 순례자들은 벳파게 성당에서 시작되는 성지 주일 기념 행렬을 진행합니다.

2) 성당의 특징과 구조

십자군 시대 성당의 기초는 아치형 바닥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단 뒤에는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고 성전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한 프레스코 벽화가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있습니다. 성당 천장에는 꽃과 잎사귀가 그려져 있습니다. 갈색으로 채색된 벽의 프레스코 벽화는 당시의 사람들이 행렬을 준비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라삐 그룹이요한복음 12, 19의 “이제 다 글렀소, 온 세상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소.”란 구절의 두 번째 부분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창문 주변에 라틴어로 쓰여 있는 것은 사람들이 도시로 행진하는 동안 예수님에 대해 말한 내용입니다. 성당의 주요 초점은 단철 난간으로 구분된 벳파게의 비석입니다. 방문한 순례자들이 네 면의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돌 뒤에 거울이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그림은 예수님과 마르타의 만남, 예수님께 나귀와 새끼를 바치는 두 제자,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나자로, 제단을 향한 측면에는 손바닥을 들고 있는 군중들의 그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 올리브산 성지: 주님의 기도 성당(Pater Noster)

1) 주님의 기도 성당 특징

예수님 당시에도 1년에 세 번 중요한 축제 때에 디아스포라 유다인들과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즈음은 예루살렘에 오셨을거라 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3번 정도 방문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당시 유다인 규정에 보면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축제 때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도록 권고하고 있지요. 공생활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방문했을 겁니다. 

올리브 산의 주님의 기도 성당

3년 동안의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은 갈릴레아 주변과 그 이웃 지역을 돌아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전교 여정 중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자세히 기록을 한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면, 나자렛과 가파르나훔의 회당, 스켐의 야곱의 우물, 예루살렘 성전 주랑현관, 베타니아에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의 집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이 일어난 정확한 장소의 위치는 수세대에 걸쳐 성지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승이 순례자들의 기록과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산상 설교에 포함시키고 있고, 루카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어떤 곳이었다고만 언급하고 있답니다. 

베타니아와 벳파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르는 길 옆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곳은 예로부터 성소로 여겨졌습니다. 그곳은 올리브산 꼭대기 주님 승천 기념 장소에서 아주 가까운에 있지요.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이 동굴로 자주 물러나 세상의 종말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신비에 대해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준 곳이기도 하지요. 이 전승은 신빙성에 있는데요. 헬레나 성녀는 326년 이 지점에 성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성당은 그 지방 이름으로 엘레오나 성당(그리스어로 엘라이온은 올리브를 뜻함, 올리브 나무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봄)이라고 불렸습니다. 성당 입구에 네 개의 주랑현관이 있는 커다란 안뜰은 물론 회중석 세 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동굴 자체는 제단 아래의 지하 경당을 이루고 있지요. 수십 년 후에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예수님이 승천했다고 알려진 바위 주위에 임보몬(Imbomon)으로 알려진 성당이 건축되었습니다.

에우제리아 순례자는 4세기 말 그곳에서 열린 갖가지 의식들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성주간 화요일에 모든 사람들이 엘레오나 산에 있던 성당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성당에 도착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곤 했던 동굴에 주교가 들어가 복음서를 받아 든 후 서서 ‘사람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마태오 복음서에 쓰인 말씀을 직접 낭독했다. 그리고 주교는 그 말씀의 전체 내용을 주욱 읽어갔다..”

주님의 기도 동굴 경당

2) 주님의 기도 성당의 역사

이곳이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준 장소였다는 전승은 후대의 증언들에 의해 확인되었고, 그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고대 건물과 중세에 복구된 건물 중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1872년, 오스만 제국 당시 이 장소에 프랑스의 가르멜 공동체 한 곳이 세워졌고, 그들이 현재의 성당과 그 옆의 수도회분원을 지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20년에 동굴 위에 새로운 대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예수 성심에 봉헌되었지요. 그러나 수도원 분원의 한쪽 벽을 허물고 원래 있던 지하 경당 위에 건물을 세우던 중 작업이 중단된 채 재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레오나 성당 입구는 벳파게로 가는 도로에 위치합니다. 오른쪽으로는 비잔틴 시대의 대성전 주랑현관이 서 있던 지점에 우거진 정원이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분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그 뒤로 성당이 위치해 있지요. 미완성인 대성당 한 가운데 제단 밑에는 주님의 기도 동굴이 있습니다. 십자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곳은 주님 성탄 대성당을 연상시키듯 두 대의 출입구를 갖춘 작은 공간입니다. 재건된 한쪽 공간과, 아직 폐허 상태로 남아 있는 뒤쪽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이 뒤쪽 구역에서 1세기의 것으로 볼 수 있는 무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성당의 회랑 벽에는 70개가 넘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주님의 기도문이 적힌 타일 판이 덮여 있는데요. 알고 있듯이, 이 기도의 전통적인 형태는 마태오 복음사가(마태오 6, 5-15)가 전하는 주님의 가르침에서 생겨났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다른 민족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4. 올리브산 성지: 주님 눈물 성당(주님께서 우셨다, Dominus Flevit)

1) 눈물 성당의 특징

예수님의 열정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안타까움과 고뇌에 찬 모습으로 부르짖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볼 수있는 곳은 주님의 눈물 성당일 것입니다.

올리브 산 동쪽에 서 있는 주님 눈물(Dominus Flevit, ‘주님께서 우셨다’는 뜻의 라틴어) 성당은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탄식을 기념하여 세운 성당입니다. 이곳은 1955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에서 산꼭대기에 서 있는 베네딕도 수녀원 터에 지은 작은 성당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우셨던 일이 일어난 정확한 지점은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동안 여러 장소가 그곳을 기념하기 위해 이용되었고 현재의 성당이 들어선 터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실시된 고고학 발굴로 청동기시대로부터 로마시대, 헤로데 시대, 비잔틴 시대를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무덤 1백 개와 모자이크 바닥으로 보아 7세기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성당과 수도원 유적이 드러났습니다. 

눈물 성당 내부와 유적들

주님 눈물 성당은 겟세마니에서 올리브 산 꼭대기로 이르는 가파른 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지요. 성경 시대에 여호사팟 골짜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산 허리에는 유다인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편백나무(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나무 야자나무가 늘어선 길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부지 입구에서 성당까지 뻗어 있습니다. 성당의 평면도는 그리스식 십자가의 형태를 띠었고, 뾰족한 아치 형태의 돔이 얹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서쪽을 향해 있으며 반원형 후진 쪽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입니다. 예수님이 벳파게에서 오는 길을 따라 내려오며 보았을 전경을 순례자들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벽에는 구세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관련된 네 개의 부조 조각이 있습니다. 제대 전면에 있는 암탉과 병아리들 모자이크는 주님이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또 다른 한탄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 질 것이다. 내가 너희가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마태 23,37-39; 루카 13,34-35 참조)

2) 주님 눈물 성당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부지 끝자락에서 보이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모습은 장관인데, 특히 이른 아침에 햇빛이 석조건물을 비출 때면 더욱 웅장해 보입니다. 바로 아래에는 예루살렘과 올리브 산을 갈라놓는 키드론 골짜기가 있습니다. 동쪽 비탈에는 유다인 무덤들이 있고, 성당 담 옆 서쪽 비틀에는 무슬림 무덤들이 보입니다. 맞은편에는 옛성전의 뜰이 보이는데, 지금은 한 가운데에 황금 돔 사원이 있고, 왼쪽으로는 알 악사라는 모스크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그 뒤로는 주님 무덤 대성당의 돔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가 위치해 있는 성구세주 수도원이 있습니다. 황금 돔 사원 남쪽 벽으로 오펠 유적 발굴지와 다윗의 도성 옛터가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숲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평선을 따라 더 멀리 가면 시온 산에 성모님 영면 기념 성당과 베네딕도 수도회 대수도원이 있습니다.  

5. 올리브 산 성지: 겟세마니 정원, 대성당, 동굴 경당(Gethemani)

1) 겟세마니의 특징

복음은 최후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이 가신 곳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마태 26,36; 루카 14,32).” 예루살렘 동쪽의 외곽 마을인 겟세마니는 착유기(올리브 기름틀, 겟세마니라는 이름의 의미이다)가 있던 동산 또는 과수원이었고, 베타니아로 가는 중간에 있었습니다. 

겟세마니 대성당과 정원

이 특정 장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요한 18,2) 때문에 잘 알려져 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구원의 역사에서 이 신비한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올리브 산에서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도화선으로 멀지 않아 수난이 닥칠 것임을 알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순례자 에게리아의 기록을 통해 ‘주님께서 기도한 장소에서’ 4세기 후반에 전례 의식이 거행되었다는 사실과 그곳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Interarium Egeria,36,1(CCL.175,79).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고,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고뇌에 대한 복음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 후에는 주님이 체포되신 곳으로 여겨지는 동산의 다른 구역으로 줄지어 갔습니다(Interarium Egeria,2-3 참조(CCL.175, 79-80).

이 전승과 그만큼 오래된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주님께서 기도하신 바위, 적어도 1천 년은 더 되었을 올리브나무 여덟 그루와 그보다 덜 오래된 나무들이 있는 정원, 체포된 지점으로 생각되는 작은 동굴, 이 세곳이 그날 밤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성지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 곳은 10여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데, 올리브 산자락 아래, 키드론 골짜기 거의 밑바닥에 아름다운 풍광으로 둘려싸여 있습니다. 키드론 골짜기는 팔레스타나의 다른 와디처럼 연중 대부분은 말라 있다가 겨울 우기 때 내리는 비로 잠시 물이 흐르는 골짜기입니다. 산꼭대기와 달리 아래쪽 비탈은 땅 대부분이 묘지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고 대개는 계단식 땅으로 되어 있고 편백 나무(사이프러스) 가로수가 늘어서 있지요.

2) 겟세마니 대성당

전승에 따르면 주님이 엎드려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바위는 겟세마니 대성당 또는 만국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겟세마니 대성당 안에 있습니다. 이곳에 만국 대성당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922년부터 1924년까지 16개 국가의 관심과 재정의 지원을 받아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7세기 이전에 불에 타 전소되어 기포만 겨우 남아 있던 비잔틴 시대 성당의 평면도를 따라 건설되었습니다. 예전 성당의 규모는 한쪽 면이 각각 22.8미터와 14.6미터 크기이고, 회중석과 두 개의 측량, 삼중 후진, 바닥에 모자이크 디자인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부 모자이크 조각은 유리로 보존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근대 건물을 지을 당시 중세 성당의 흔적 또한 발견되었는데,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이 성당 역시 원래 성당이 있던 지점에 세워졌지만 더 크고 남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가들은 이전 성당이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중세 성당은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 잊혀지게 됩니다. 

겟세마니 대성당 내부

키드론 골짜기에서 보면 큰 기둥들과 장식 기둥으로 떠받친 세 개의 아치를 갖춘 대성당 전면의 넓은 아트리움이 보입니다. 아치 위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그리스도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햇볕이 밝게 내리쬐는 날에는 밝게 빛나는 외관이 내부의 희미한 빛과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요. 빛은 보라색 창문을 통과해 흘러들고 성당 안의 차분한 색조는 예수님의 고뇌의 시간을 연상시키며 순례자들이 침묵 속에서 고요히 묵상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중앙 부분에서 가느다란 기둥 6개로 지탱되고 있는 천장의 12개 돔은 별로 가득한 밤하늘을 묘사한 모자이크로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불러 일으킵니다. 

제단의 제대 앞에는 주님이 고뇌에 싸여 기도한 곳으로 공경 받고 있는 바위 덩어리가 바닥 위로 솟아 있습니다. 주위로는 가시 면류관이 모습을 형상화한 울타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그 뒤로 중앙 후진 한 가운데에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에 휩싸인 주님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측면 모자이크에는 유다의 배신과 체포되시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3) 올리브 나무 정원

대성당이 들어선 부지는 17세기 중반 이후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의 소유였습니다. 취득 당시 그곳이 중세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지라는 점 외에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꽃밭이었습니다. 그곳은 담에 둘러싸인 미경작지로써 그 지역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지는 올리브나무 여덟 그루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에서는 성당을 재건할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이 오랜된 올리브 나무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이 나무들은 틀림없이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전승과 관련이 있었으므로 잘 보호되어 오늘날까지 건재합니다. 

나무들은 언뜻 보아도 아주 오래되어 보입니다. 나무들을 연구한 식물학자들은 그 나무의 연령이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나무들은 모두 한 가지에서 접목한 것으로 11세기에 심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나무 둘레로 보아 약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나무의 수령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상관없이 예수님과 그분의 지상에서의 생애 마지막 밤을 말없이 지켜본 그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습니다. 

겟세마니 정원과 사도들의 동굴 경당

4) 겟세마니 동굴 경당

겟세마니 성당과 겟세마니 동산 부지 안에는 프란치스코 수도원도 들어가 있습니다. 울타리 바깥에는 북쪽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체포되신 동굴이 있는데, 이곳 또한 프란치스코 성지보호관구의 소유입니다. 이곳에 가려면 성모 영면 기념 성당(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동굴 성당)의 안뜰 입구에서 시작된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느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의 시신은 승천하기 전에 다락방이 있던 지역에서 이 성당 자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현재 이 성당은 그리스, 아르메니아, 시리아, 콥트 교회 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체포되신 동굴의 크기는 길이 17미터 폭 9미터 정도입니다. 고고학 흔적을 보면 그곳에 동산 주인의 임시 거처나 창고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던 날 밤 사도들 가운데 여덟 명이 이곳에서 쉬고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고하러 나머지 세 제자와 함께 이곳으로 오신 예수님은 정원에서 기도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후 유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을 만나러 나간 곳은 겟세마니의 이 동산이었을 겁니다. 

벽 장식 기둥과 천장에 여러 순례자들이 각 언어로 휘갈기거나 새겨 넣은 많은 그라피티(낙서)들을 보면 이 장소에 대한 공경이 거의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요. 동굴은 4세기에 이미 경당으로 쓰이고 있었고,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5세기에서 7세기까지, 그곳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덤 터였습니다. 십자군 시대에는 동굴 경당을 프레스코화로 장식했습니다. 14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회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권리르 ㄹ얻은 것을 시작으로 결국에는 소유권도 취득했습니다. 1956년에 실시된 재건 프로젝트로 포도 짜는 기계와 저장 시설을 갖춘 원래의 건물이 드러났습니다. 동굴 위 울타리 안쪽에서는 고대의 올리브 착유기(히브리어로, גת שמנים, ‘올리브 기름틀’이란 뜻임) 유물도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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