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의 구제법

유다인의 구제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독특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웃을 돕고 구제하는지 기원과 역사 및 특징과 문화를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유다인의 구제 문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 동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습니다. 그녀는 유다인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그녀의 이름은 미리암입니다. 미리암 할머니의 남편은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 대전시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유다인 대학살을 일컬음) 생존자였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고 입양한 자녀들은 분가를 하고 홀로 사십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미리암 할머니와 그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칠십 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정하시고 힘이 넘치는 그야말로 여장부와 같은 삶을 사시는 여인네라고나 할까요. 정부로부터 약간의 연금과 미국에 사는 남동생의 도움으로 살아 가시는 이 할머니는 언제나 분주하다고 합니다. 그분이 주로 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사업입니다. 이곳저곳에서 기부금이나 물건 등을 기탁하면 그것을 모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를 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옆에서 이 일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함께 살았던 친구의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소위 우리가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는지 할머니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두 명의 장애인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로부터 세탁기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를 받으셨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침 중고이지만 그래도 쓸만한 여분의 세탁기를 갖고 있기에 흔쾌히 세탁기를 기증하겠노라고 친구를 통해 미리암 할머니께 전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노(No)’이었습니다.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유는 그 할머니가 꼭 중고가 아닌 새 세탁기 이어야만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것에 보험을 가입해야 해서 세탁기가 한번 고장 나면 때로는 고치는 값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듣고 이해를 했지만, 나는 이때 ‘부자가 아니면 제대로 구제도할 수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명절 때 2백 세켈(약 5만 4천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구제금을 받기 위해 벧 쉐메쉬라는 곳에서 예루살렘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택시비는 약 3만 2천4백 원 정도가 된다). 어디 이뿐인가요? 얼마 전에 불우 이웃 돕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더 재미있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데 입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모금에 참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부모는 번듯한 직업도 있고 큰 집에 살며 심지어는 좋은 자동차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단지 아이의 치료비가 필요했을 뿐이었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이 일에 크게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신시가지나 구 도시에 가면 심심치 않게 깡통을 들고 외치는 종교 유다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쯔다카(공의 또는 의)”라고 외칩니다. “한 푼 도와 줍쇼!”가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촉구하며 동냥을 합니다. 아니면 집에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을 열면 종교인 남녀나 한 두 명의 어린이들이 구제를 하라고 아예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 주기도 합니다.

다양한 구제함들

‘메아 쉐아림’ 등 유다 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들의 길 모퉁이에는 작은 상자들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명 ‘푸슈케’라고 하는 구제함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두 푼씩 그 통에 집어넣어 얼마가 모아지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굶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만일 어느 집에 돈이 없어 결혼 적령기의 남자나 여자가 결혼을 하지 못하면 그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결혼을 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2. 유다인의 구제 특징과 역사

이처럼 유다인들이 가난한 이를 돌보고 구제를 즐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연 성경으로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가난”에 관한 단어는 셀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신명기는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규정을 시키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고아와 이방인, 그리고 과부를 보호하도록 했습니다(신명 15, 7-11; 24, 17-22). 특히 시편이나 예언서 등은 가난한 이들의 처지와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 구약 중간 시대의 문헌들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돌봄을 큰 덕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에녹서, 벤 시라, 토빗서 등).

제2차 성전이 무너진 후 써진 미쉬나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에 관한 주제로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페아흐, Pe’ah 농사에 관한 주제를 다룬 책). 라삐 전통에 있어서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 때문에 의식주에 얽매이므로 율법을 공부할 수 없어 율법을 모르는 “암 하렛츠(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우선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가난한 이를 수치스러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구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높이 존경을 받아 사제의 딸과도 결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빌론 탈무드는 이런 전통이 제1차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남 유다 왕국의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기를 보낼 때도 잘 지켜졌음을 암시해 줍니다(사밧, 118a).

그리고 유다인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 민족이라 할 수 있는데요. 나라를 잃고 2천 년간 디아스포라로 유랑하면서 자신의 민족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절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방 나라에서 그들이 서로를 돕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절감했으므로 민족애와 형제애가 투철했을 겁니다. 그래서 유다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란 나라 건국 이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민족을 돕기 위해 전 재산과 삶을 바친 위인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유다인이었던 예수님 자신도 머리 둘 곳이 없이 가난하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마태 8, 19-22; 루카 9,58) 하지만 누구보다도 제자들과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요한 6, 1-15). 신약 중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가난”과 “구제”에 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1, 48.52-53; 4, 18; 6, 20-26; 12, 33; 14, 13-14; 18, 22; 19, 1-9 등).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원시 그리스도교인들의 공동생활과 구제(사도 2, 42-7; 4, 32-37)는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동족 형제들을 위한 자선기금을 모금함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사도 24, 17).

3. 유다인의 구제를 위한 원칙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제를 히브리어(이스라엘 어)로 쯔다카라고 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정의, 공의(Justice)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즉 성경에서는 ‘정의, 의’로 사용되지만 라삐 문헌에서는 구제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라삐들은 이러한 구제가 사회적인 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차원의 자선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의무에 속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구제에서는 그 횟수와 방법이 개인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간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당에서 가끔씩 모이는 봉헌금을 자선금으로 돌리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구제 활동을 할 경우에는 구제 자체는 하나의 의무가 됩니다. 이스라엘 전통에서 구제는 사회 전반에 펼쳐져야 할 공의, 즉 실현되어야 할 의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구제하는 사람보다는 구제 받는 사람이 더 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구제하는 사람에게 구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인해 하늘의 복을 받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죠. 따라서 구제도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어서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구제를 사회적인 공의의 실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 실현을 위한 원칙들이 만들어졌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나팔을 불지 말라(마태 6,2)

마태오 복음 6장 2절에서 예수님은 위선자들이 스스로를 과시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모습을 비판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구제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에서 구제에 대한 전통적이고 올바른 태도는 받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구제받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었고, 붐비는 거리에서 돈을 주는 행위는 최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

2) 구제의 대상을 정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제 대상은 아주 다양합니다. 구제라는 것은 약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부족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족이 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친척들로 구제의 대상이 확대되어 갑니다. 가족 중에 부유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이는 주변의 다른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부자는 부족한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존경받는 사람들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캄짠(구두쇠, 노랭이)”이라 불려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특이점은 구제 대상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풍습이 있는데, 자신이 외국에 사는 경우에는 이스라엘 본국에 있는 이웃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고 라삐들은 가르칩니다. 외국에 사는 많은 유다인들은 재산 일부를 모국인 이스라엘을 위해 기꺼이 기부합니다. 이는 이방인보다는 유다인이 우선순위에서 훨씬 앞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무조건 도와 주라

어떤 사람들은 구제를 해도 세상에는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구제받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정신적으로 해이해져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나, 또는 사회적 모순,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구제의 손길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구제의 대상에게 무조건 구제하라고 가르칩니다. 거리에서 조직적으로 구걸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등으로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먹을 것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노숙자 외에도, 예를 들어, 학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학문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가 어떤 연구를 하든 그에게 학문을 할 수 있도록 구제하라는 것이 라삐들의 가르침입니다.

4) 구제 단체를 조직하라

간혹 이스라엘 엄마들은 자기 자녀가 구제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다거나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자선을 했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자선함을 들고 아파트의 집집마다 다니며 구제금을 모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구제 단체를 스스로 만들어 이웃을 돕는 사람들과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가족의 이름, 또는 단체의 이름으로 기관을 설립해서 구제활동을 합니다.

5) 10분의 1이 아닌 10분의 5까지 구제하는데 써라

유다 전통에서 자신의 소식 중 10분의 일의 봉헌금을 하느님께 바쳐, 레위인들에게 주었습니다. 보통 내가 가진 것의 10분의 1만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통 그 구제의 양을 정해놓고 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곳에 적절한 양을 제공하는 것이 구제의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과 필요에 따라 구제의 양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칙은 있습니다. 구제 헌금이 소유 재산의 절반을 넘지 않게 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구제 활동을 하다가 오히려 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또한 물질적인 면 이외의 구제도 강조한다. 물질이 필요한 곳에는 물질을, 봉사를 원하는 경우에는 봉사를 통해서 구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수입의 20분의 1은 인색한 사람, 10분의 1은 보통사람, 10분의 5를 구제에 쓰는 사람은 구제에 노력하는 사람이라 칭송을 받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신명 24, 19-22). 또한 구제는 가난한 사람이 마땅히 받을 권리라고 외쳤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충실히 제공해 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이스라엘 구제 관습과 선행은 문화마다 다른 자선 행위와 그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어두운 곳에서 남몰래 울지 않고 유다인들처럼 “정의를 행하세요!”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될 수 있는 날을 감히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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