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축제들 2: 유다인의 안식일(Shabbat)

유다인의 대표적인 축일은 매주 금요일 해가 떨어진 후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지키는 안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유다이즘의 이해, 예수님의 해석, 현대 안식일 논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의 순서



이스라엘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전에 성지 순례 때 방문을 했었던 곳이라서 이스라엘은 나에게 낯선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살아가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유다교란 종교를 바탕으로 유다인들을 위한 나라이므로 그 독특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유다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리고 이방인이 보기에는 너무나 형평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유다인들의 사상과 문화를 체험하면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적응하기 어렸던 일들 중의 하나는 안식일 즉 토요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의 ‘안식일’이란 주중에 일을 하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요일 수준이 아닙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한 민간 및 국영의 모든 서비스 업이 중단됩니다. 대중교통이 정지되고, 비행기 이륙과 착륙이 금지됩니다. 항구에는 배가 들어오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 직전에 들어온 배는 나갈 수 없고, 안식일이 시작되어 접근되는 배는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에 항구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론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먹을 음식물을 준비해야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답니다. 유다인들에게 안식일은 어떤 의미인지, 그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예수님의 안식일 해석, 그리고 오늘날의 안식일 풍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유다이즘 안에서의 안식일

일주일 중 거룩한 날인 안식(Shabbat)일은 유다인의 휴일들 중 가장 중요한 축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일 주일 간의 모든 일의 스트레스에서 떠나 쉼을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죠. 고대의 안식일은 각 주간의 한 특별한 날로써, 전통적인 유다인들은 모든 일, 여행, 건축하는 일, 일상의 바쁜 업무들을 멈춥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나는 행동을 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존재하는 인간인가?”

1) 안식일에 대한 이해

해가 지는 금요일 저녁시간부터 그 다음날 해가 지고 어두워 지는 토요일까지의 평화롭고, 고요한 오아시스와 같은 안식일(샤밧, Shabbat)은 고대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아주 근본적이고 특별한 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공부하고, 반추하고, 노래하고, 침묵을 하고, 그리고 가족이나 공동체와 함께 하거나 몸과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루를 자신의 일로부터 떠납니다. 현자들(Sages)은 안식일을 “메시야의 도래 때 맛볼 수 있는 진실한 평화와 사랑과 따사로움을 미리 체험함”으로 묘사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삶의 정황 속에 처해 있든지, 하루를 쉬는 안식일은 종교적인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십계명 중의 하나를 지키는 것이지요.

진정한 안식일이 무엇인지에 관한 해석들은 수백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음 네 가지의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인간적인 상사들, 즉 주인들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홀로고스트(Holocaust)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나찌 수용소의 감옥에서 조차도 안식일을 지켰는데요. 그 이유는 비록 인간 육신은 죽어 없어질지 모르나, 각 개인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안식일에 인간이 해야 할 세상일은 없고, 그 일에 정신을 빼앗겨 허둥지둥해야 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은 단순히 존재하고 그의 아름다움과 의로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 안식일에 각각 개인은 물질세계를 더 높은 영적인 세계 즉 그(그녀)의 영혼과 정신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넷째, 성경 말씀인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 “엿 세 동안 너희는 노동과 너희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을 유다인들은 적용시켜 이날은 모든 일로부터 물러나서 자유로움으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 세계를 감상합니다. 안식일 준수는 성경의 ‘어떤 일이든지 유다인들과 그의 식솔들에 의해서 수행될 수 없다’라는 명령에서 유래됩니다. 물론 성경은 구체적으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식일의 목적이 요구되는 일상의 무거운 의무를 경감시켜주고, 공부, 기도, 대화, 그리고 문자 그대로 휴식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지요.

고대의 탈무드 라삐는 안식일에 피해야 할 ‘일(Melachah)’로 간주하는 항목을 39가지로 규정했습니다. 그것들은 요리, 맷돌 갈기, 불 피우기, 빨래, 뜨개질, 바느질, 건설, 수리, 쓰기, 자르기, 불 끄기, 고기 잡이, 정원 가꾸기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6피트 이상 되는 물건을 집 밖으로 또는 개인 장소에서 공공 장소로, 아니면 공공 장소에서 개인 장소로 나를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라삐적인 법률은 이런 범주를 확장시켜 안식일을 위반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과 혼동되는 것들은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의 잔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나, 안식일에 사용할 수 없는 종류를 아예 만지지 않는 것, 즉, 돈을 쓸 수 없으므로 돈을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안식일에 대한 주된 신학 사상은 안식일은 “에덴 동산의 회복”하는 열쇠인 것입니다. 토라에서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최정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하느님 창초의 일에 동참하고 칠일째는 그분과 함께 쉼에 들어가는 일이 바로 안식인 것입니다.

2)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들

안식일에 유다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은 회당에 가는 것을 비롯해 성서 두루마리를 읽고, 공부하고, 가족이나 이웃, 친구들과 함께 모임이나 친교의 시간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게임을 하거나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합니다. 또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낮잠을 즐기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유다인들은 이웃들과 회당의 활동을 활성화시켜 어린이나 어른들이 각 안식일에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남편과 아내가 안식일에 성관계를 맺는 것도 전통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3) 안식일을 맞이함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에 방문해서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머물다 가는 특별한 손님과도 같은 이가 바로 안식일이다. 이 손님은 너무 은총이 가득하고 깃털처럼 가벼워서 얼마나 사랑스럽고 사랑할만한 지 그녀의 방문은 기쁨 그 자체이고, 그녀가 떠나가버리는 시간은 슬프기까지 하다.” 탈무드의 라삐는 안식일을 “아름다운 신부“로 의인화시켜 유다 임족의 파트너로서 매주 즐거움으로 반갑게 인사하는 인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안식일을 위해 침대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안식일이란 특별한 손님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도록 가르칩니다. 예를 들면, 해가 떨어지기 전 많은 유다인 가정들은 집을 깨끗히 청소하고, 가장 좋은 접시와 식기 도구로 테이블을 장식하고, 주 중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장만합니다. 목욕을 하고 좋은 옷으로 갖춰 입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날을 의인화 시키는 것은 안식일 동안 “신이 현존”을 느끼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안식일은 각 가정에서 세 가지의 축복과 함께 환영을 받은데, 촛불, 왕인과 주스, 그리고 특별히 꼬아 만든 계란빵인 두 덩이의 할라가 그 세가지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더 큰 사랑의 시간으로 인식되는데, 불을 켜는 것은 마음을 일깨어 사랑을 불어 넣어 줌을 상징합니다. 와인은 가슴을 일깨어 사랑을 심어 주고, 빵은 신체를 일깨어 사랑이 자라도록 함을 상징합니다.

안식일ㅇ르 맞이하는 촛불 점화, 축복 기도 노래 "지붕 위의 바이올린"

유다 전통은 집안의 주부가 해지기 전 18분 경에 한 개나 두 개의 촛불을 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다력으로 해가 지면 하루의 시작으므로 금요일 해가 질 때가 되면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대부분 유다 남자들은 이때쯤 아직 일터에서 돌아 오지 않거나 회당에서 기도를 합니다. 먼저 촛불을 키고 눈을 손으로 가립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손을 떼고 눈을 다시 뜬 후 촛불을 바라보면서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Baruch atah Adonai, Eloheynu Melech ha-olam, asher kid’shanu b’mitzvotav v’tzivanu I’hadlik ner shel Shabbat.-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께 복이 있나이다. 우주에 현존하시며 다스리시는 분, 미쯔봇(거룩한 행위들)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이 점화의 미쯔봇으로 안식일의 촛불을 주셨나이다.”

4) 가족과 와인, 빵에 비는 축복들

전통적인 유다 가정들의 남자 가장들이 회당에서 돌아올 때 즈음이면 촛불은 이미 점화되고, 식탁이 차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은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기 전 네 가지의 복을 암송합니다: 어린이(만일 그들이 함께 있으면), 와인, 손을 씻음, 그리고 빵을 위해 복을 빕니다.

첫째, 많은 유다인 가정들은 안식일 만찬 전에 노래를 부르는 데, 주로 “샬롬 알레켐(당신에게 평화를 전해 준다)이란 노래를 부르며 거룩한 휴일에 함께 모임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다음으로,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대체적으로 아버지는 자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다음과 같은 축복을 합니다: 주님께서 너를 에프라임과 므나쎄와 같이 만들어 주시길…(아들인 경우). 주님께서 너를 사라, 레베카, 라헬, 그리고 레아처럼 만들어 주시길(딸인 경우)- 이들 네 명의 여자들은 리더 격의 여성들입니다.

자녀를 축복함

전통적으로, 이 시간에 남편은 또한 잠언 31장 10-31절을 낭독하며 자신의 아내를 영예롭게 해 줍니다. 비록 집안에 여자가 없더라도 이 성경 구절을 읽어 주면 그날 만찬에 참석한 여성들을 존중하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이해하도록 해줍니다.

다음으로 사밧(안식일) 키두쉬가 음송됩니다. 대개 각 가정의 남자 가장이 와인나 주스가 가득 찬 컵을 들고 이 키두쉬를 읊습니다. 키두쉬를 읊고 나서 전형적인 유다인들은 손을 씻는 이식을 행하는데, 이는 고대의 성전에서 행하던 제의와 관련된 정결예식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비누로 손을 씻는데 이는 의식과는 관계가 없는 음식을 먹기 전에 씻는 행위일 뿐이죠.

그 다음은 빵을 축복합니다. 그러고 나서 빵을 조각으로 잘라 소금을 찍어 먹는데, 이는 고대의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했었던 의식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밧 샬롬”을 외치며 인사를 합니다. 이 “사밧 샬롬”이란 인사는 토요일 오후까지 할 수 있는 인사말이기도 하죠.

다음으로 안식일 식사가 시작되는데, 비록 그 주간에 슬픈 일을 겪었다 할지라도 금요일 저녁 식사는 대개 일주일 중 가장 축제적이고 맛있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식사입니다. 저녁 식사 후에 많은 유다인 가족들은 축복이 담긴 전통적인 노래를 부릅니다.

5) 회당에서 전례를 행함

모든 회당은 금요일에 전례를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례는 전통파 공동체보다는 개혁파, 보수파, 그리고 통합파 회당에서 길고 감동적으로 행해집니다. 정통파 유다인들은 금요일 저녁보다는 토요일 아침 전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진보파 유다인들은 금요일 저녁 전례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금요일 저녁 전례는 다른 날 저녁 전례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의 기도가 추가되고 안식일을 환영하는 “카발랏 사밧”이라는 축복이 음송됩니다.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은 16세기 경에 쓰인 “나의 사랑하는 안식일이여 오라”라는 시를 노래하고, 그 다음에 시편 92편이 읽습니다. 전례 중에 정통 유다인들은 회당에서 음악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반면에 개혁과 진보적인 유다인들은 피아노, 기타, 그리고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합니다.

전례 후 대부분의 회당은 “오네그 사밧(안식일의 기쁨)”이란 친목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 주로 교육적인 강의나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다인 공동체들은 안식일 아침 전례를 주일 중 가장 길게 행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토라 독서 할당량이 많이 때문입니다. 전례 때 주중에 “파라샤”라고 하는 부분을 포함한 전체 “파라샤”를 읽습니다. 독서 전에 보관함에서 토라가 옮겨질 때 노래와 기도로 존경을 표시하고, 제대를 원형모양으로 돌며 행진을 합니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기도책이나 탈릿 등으로 토라를 만진 다음 입으로 갖다 대면서 입맞춤을 합니다. 안식일 전례에는 또는 공동체적인 노래나 추가 기도문과 안식일에 관한 의식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종종 라삐가 강론을 하기도 하죠. 이날에 가끔씩 “바르 미츠바나 밧트 미츠바(성인식)”을 행하기도 합니다. 토라를 읽기 전후에 축복 기도문을 읽는데 이는 “알리야(올라감)”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읽는 것은 곧 더 높은 장소(수준)로 올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토라는 “비마”라는 곳에서 읽혀지는데 이 장소는 다른 장소보다 계단으로 오르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6) 안식일을 마침

공식적으로 안식일은 토요일 해질녘에 끝나지만, 해가 진 후 45분, 적어도 세 개의 별이 보여야 함- 대부분 더 길게 지속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맞이하는 여러 의식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마치는 의식들도 진행이 됩니다. 회당의 전례 후에나 아니면 집에서 “하브달라(분리, 이별)”라는 의식이 거행됩니다. 이 “하브달라” 서비스는 와인, 향료, 그리고 하브달라 촛불에 축복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이 축복식은 일상의 시간에서 거룩한 시간을 분리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히브리어인 사밧 즉 안식일은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리스도교나 이슬람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유다인의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치해서 휴일로 정하고 기념했으며, 회교도들은 금요일을 안식일로 제정하여 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세 종교들은 사실 우주적인 진리인 “안식일”을 역동적으로 지키면서 풍성한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과 안식일

“안식일”이란 단어는 신, 구약 성경에 189회 정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안식일에 관한 언급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 볼 때, 예수님 당시에도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히 지켰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예로 제자들이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마태오 12, 1-12; 마르 2, 23-28; 루카 6, 1-5),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일 (마태오12, 9-14; 마르코3, 1-6; 루카 6 ,6-11),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 내신 일 (마르1, 21-28; 루카 4, 31-37),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 주신 일 (마태오 13, 54-58; 마르 6, 1-5; 루카4 ,16-30), 등 굽은 여자를 고쳐 주신 일 (루카13, 10-17), 수종을 앓는 이를 고치신 일 (루카14, 1-6), 그리고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일 (요한 5, 1-9) 등이 있지요. 이런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그분과 함께 있던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계명을 어긴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의 아들’이고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마태오12, 8; 12, 12).” 그 당시 안식일이 유다인들 사이에 엄격히지켜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분파들은 안식일에 관한 규정을 더욱 상세하고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종파들 중 가장 엄격히 안식일을 지켰던 이들은 꿈란에 살았던 에세느 종파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 역사가인 유세프스 플레비우스에 의하면 에세느 종파들은 불을 켜거나 용기를 옮기지 않았으며, 심지어 용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고 외부 마을에 살았던 일원들은 다마스커스 사본에 안식일에 관해 긴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다마스커스 사본:CD-10.14-11.8,11.13-14). 일하는 것은 물론 그에 관한 언급을 하는 것 조차 금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부터 일천 규빗(약 450미터) 이상 걸을 수 없었고, 과일이나 그 외의 열매들을 딸 수 없었습니다. 물동이를 나를 수 없고, 짐승을 때리거나, 종들은 자녀들을 안을 수 없고, 향수도 바를수 없었습니다. 이런 규칙들이 더욱 엄격히 적용되어 CD11.13-14은, ‘만일 짐승이 새끼를 낳을때 구덩이나 물 저장소에 빠지면 그들을 들어 올려 구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루카 14, 5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익히 알고 계셨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하여 당장 구해내지 않고 내버려 두겠느냐?” (루카14, 5) 예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 그리고 현대에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정통 종교 유다인들이 지키는 여러 안식일 규정을 볼 때 안식일이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안식일이 “파라다이스 회복의 길”이라면 진정한 안식일은 인간을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고 쉼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3. 현대 안식일 논쟁

이스라엘 하면 종교국가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정치인들의 연설 서두나 말미에는 무게 있는 성경말씀이 인용됩니다. 국가나 사회의 중요한 상징물들은 성경에서 유래된 것이 많습니다. 사람 이름, 거리 이름 등 성경을 좀 안다면 아주 익숙한 이름에 성경 국가란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포장되고 설명되어 온 이스라엘의 종교국가 이미지는 그만큼의 값비싼 갈등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늘 빠지지 않는 충고가 있습니다. 금요일 안식일 전에는 반드시 이틀 분 이상의 장을 봐야 된다는 것이죠. 안식일에는 그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열지 않아 식료품이 떨어지면 굶기가 일수이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이란 주중에 일을 하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요일 수준이 아닙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한 민간 및 국영의 모든 서비스업이 중단합니다. 대중교통이 정지됩니다. 비행기 이륙과 착륙이 금지됩니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고 나갈 수 없습니다(안식일 직전에 들어온 배는 나갈 수 없고, 안식일이 시작되어 접근되는 배는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에 항구에 들어올 수 있음). 과연 현대사회에 이러한 조처들이 가능한가요. 그리고 국민에게는 종교적인 만족을 주는 대대적인 환영받을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 국민의 약 15% 정도가 종교인으로 종교적인 규율을 생명과 같이 여기며 살뿐입니다. 70%가 넘는 대다수 세속 유다인들은 종교법에 얽매어 누려야 할 풍요로운 삶의 가치와 자유를 억업 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스라엘 일간지 하나를 택해 안식일(Sabbath) 단어를 클릭하면 안식일로 인해 세속인과 충돌한 기사가 일 년에도 수백 건이 데이터에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종교 유다인들은 사회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그리고 세속 유다인들은 너무 종교적이라고 그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은 양쪽이 서로 다른 안식일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마치 리트머스 종이와도 같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가가 바로 종교생활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죠. 안식일은 말 그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오직 집과 회당에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일상에 하던 대부분의 일들이 금지됩니다. 요리하는 일, 회당에서 메모하는 일, 전등을 키고 끄는 일, 기계를 돌리는 일, 전화 거는 일, 심지어 아파트에 사는 유다인은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일반 세속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여가 생활에 핵심을 이룹니다. 한 주간의 일터에서 벗어나 모처럼 휴식과 여가를 취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요리도 만들고, 친구도 만나고, 병원도 방문하고, 때론 집을 벗어나 여행도 같다올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날에 여가를 보낼 만한 극장도 카페도 기타 모든 오락시설이 문들 닫아야 합니다. 오히려 다른 날보다 대중교통이 더 필요할 수도 있는 날에 운행이 금지됩니다. 현재는 그래도 자가용 인구가 그런대로 있다지만, 초기에는 아무런 종교적 의미를 모르는 세속 유다인들에게는 가택연금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종교인들 자신들만 따라도 될 법한 안식일 제도를 전국적으로 적용하려는 데서 문제가 비롯됩니다. 건국 초기에는 안식일 사수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네투레이 카르타”라 불리는 극단 종교인들의 모임이었습니다. 1963년 10월 26일 안식일 예루살렘 종교 마을인 메아 셰아림 앞 대로에서 종교인들은 안식일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지나는 차량을 향해 손에 잡히는 데로 돌과 병조각을 비롯해 온갖 것들이 던져 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제지하는 경찰관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안식일을 방해하는 세속인에 대한 공격의 극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예루살렘을 비롯해 텔 아비브, 브네이 바락, 하이파 미그달 갓 등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종교도시 예루살렘이 가장 심했습니다.

안식일에 유로비전 콘테스트를 안식일에 개최하는 것을 반대 항의하는 정통 종교인들

수 십 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분쟁은 여전합니다. 예루살렘에 바르 일란 도로는 텔아비브에서 올라와 예루살렘을 관통해 사해 쪽으로 빠지는 중요한 도로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종교 유다인들이 사는 지역을 둘로 나누며 지납니다. 안식일에 이 길을 지나는 수많은 차량들이 종교인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안식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아예 경찰들이 상주하며 지나는 자량을 통제하지만 세속 유다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회를 할 경우 20여 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죠.

이 길에 대한 통제는 정치권과 연관이 되었습니다. 지역은 예루살렘이지만 관할은 건설교통부의 소관입니다. 92년 라빈 정부 당시 세속인이 장관직을 맡았을 때는 종교인들 통제하며 시민들의 통행을 보호하였습니다. 96년 네탄 야후 정부 때는 종교인이 장관직을 맡은 이후 안식일에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악순환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종교인 지역에 들어갔다 비난과 돌을 맞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더불어 종교 유다인들은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한편 유다 종교법에 따라 종교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안식일의 정착은 가장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국가는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야 하는 유목민의 생활과는 달랐습니다. 국가의 출현과 함께 현대사회는 경찰, 군인, 외교분야뿐만 아니라 잠시도 멈춤 없이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는 전기, 수도, 병원 등을 안식일이라고 해서 멈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초기 유다교에 정통한 라삐들도 어디까지 안식일을 적용해야할지 정확한 기준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안식일에도 근무해야 할 경우 라삐를 찾아와 안식일에도 부득이 근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에도 근무가 찾아오는 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국가 공무원 시험이 일요일에 있는데 응시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등의 문제와 같은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건국 직후에도 수년동안 정확한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안식 일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당시 최고 라삐 이삭 할레비가 제시한 안식일에 유다 경찰관들이 지켜야 할 기준을 볼까요. “사건이 발생한 곳에 운송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수단은 도착 수단일 뿐 돌아오는 것은 안식일이 끝난 저녁때 돌아올 수 있다. 기동대일 경우는 안식일에 오토바이를 사용할 후 없다. 대신 자전거를 타고 순찰할 수 있다. 법인을 잡았을 경우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그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전화도 가장 중요한 것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범죄사실 기록은 반드시 왼손으로 해야 하며(왼손잡이일 경우 오른손 사용), 히브리어로 기록할 수 없고 후에 정리할 수 있는 기호체계를 사용해야 하며, 또한 정확한 색깔이 없는 잉크를 사용해야 한다. 이 외에 어떠한 경우에도 쓰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러한 규칙을 준수하면서 이스라엘의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물론 경찰국은 이러한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임무 수행자가 신실한 종교인일 경우에는 크고 작은 마찰이 끝임 없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안식일에도 근무를 해야 할 분야의 경우에는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거나 기용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안식일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안식일 법은 지방도시별로 재량권을 가지고 지키도록 한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같이 종교인이 많이 사는 도시는 그나마 강력하게 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텔아비브나 하이파와 같이 상업 및 산업도시는 안식일에도 부분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안식일 법은 종교인들의 정치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1983년 이스라엘 전국을 강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안식일인데 극장 한 곳을 연다는 이유였습니다..

1983년 10월, 페타티크바라고하는 텔아비브 북서쪽의 도시에서는 시장선거가 있었습니다. 시장 후보로 나선 도브 타보리의 공약 중에 하나는 안식일에 극장을 개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페타티크바는 1880년대 말 첫 이주자들이 자리 잡은 종교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보다는 세속적 유다인의 수가 종교인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자주 종교인과 세속인들 간에 시의 운영을 놓고 마찰이 잦았습니다. 시장 후보 타보리의 안식일에 오락시설을 개방하겠다는 공약은 60% 이상이 세속 유다인인 도시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금요일 안식일이 되면 굳이 텔아비브까지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타보리가 압도적인 표로 시장에 당선된 것 뿐만 아니라 시의원에도 거의 종교인이 제외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극장을 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고, 극장을 필두로 각종 오락시설이 안식일에도 문을 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세속화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지요. 시의 행정루트를 통해서는 제지할 정상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종교인들은 직접 극장으로 몰려가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길거리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에 한해선 노선을 달리했던 종교인들이 합세를 했고 급기야 매주 금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수 천의 종교인들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종교인들의 시위에 맞서 같은 수의 세속인들이 몰려나와 충돌직정의 긴장감도는 종교인과 세속인가의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페타티크바 최고 라삐가 시장을 방문하고 종교인들이 온갖 방법과 루트를 통해 안식일 고수를 요구했지만 시장은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종교인들이 합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인들은 종교 정당을 통해 정치적으로 중앙당을 통해 시장을 압박했습니다. 당시 종교 정당의 지지가 필요한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도 당 차원에서 페타티크바를 방문해 시장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타보리 시장은 시장직에 사표를 내더라도 그의 원칙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히 보였습니다.

조금도 물러설 수 없는 종교인과 세속인간의 분쟁은 시를 떠나 온 나라안의 화재가 되었고 나아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최고 라삐 구속, 시장 집무실과 가정집에 저주와 독설 전화, 시장 자택을 배회하며 끊임없는 종교인들의 위협, 극장 폭파 위협이 뒤따랐습니다. 이에 맞서 극장을 중심으로 한 세속인들의 시위도 가열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섹스 심벌 스타의 공연과 더 많은 세속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시위는 3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경찰은 시위를 대비해 더욱 첨단 장비가 갖추어졌고, 매주 이를 취재하느라 언론매체들이 몰려들었고 전국의 시청자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안식일 분쟁을 지켜보는 것이 안식일의 고정 채널이 되었습니다. 차즘 양쪽의 힘도 소진되었고, 시위 참여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법률은 현 시도별로 위임된 내규에 속한 것이므로 이스라엘 정부도 법적인 규제를 가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전 시에 40%에 못 미치는 종교인의 수는 이렇게 자포자기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일까요. 적어도 오늘날 의 상황은 예수님의 그때와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

오늘날 예수님이 안식에 관한 유대종교인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다른 말씀을 하실까 궁금합니다.

*샤밧 키두쉬(Shabbat Kiddush)란 무엇인가?

샤밧 키두쉬(안식일 축성함)은 여자들도 할 수 있지만 집안의 남자 가장에 의해서 거행됩니다. 그는 와인이나 포도 주스가 가득 찬 컵을 들도 이렇게 읊조립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여섯 째 날에 하늘들과 땅 그리고 모든 것들이 완성되었다. 일곱 째 날에 하느님께서 하시던 모든 일을 멈추고 쉬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일곱 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느님게서 그분이 만드시는 창초의 일을 하시고 쉬셨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히브리어로 축복을 합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하느님, 우주의 현존하시는 주권자시고, 우리를 계명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느님, 이날은 이집트에서 탈출했을 때 모든 것 가운데에 첫번 째로 거룩하게 하셨나이다. 당신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모든 나라 가운데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사랑과 은총으로 당신의 거룩한 안식일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셨나이다. 당신은 안식일을 축복하시는 복되시고 영원하신 우리의 하느님 이십니다.” 

키두쉬를 마치면 참석한 모든 이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이 축복은 와인 그 자체를 축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보다는 거룩한 안식일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를 선택했나이다”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아 생략하거나 다른 말로 바꾸기도 합니다. 

“조하르(Zohar)”란 무엇인가?

조하르(명민, 빛남이란 뜻)는 유대 신비주의의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하르는 13세기 경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 이야기 형식의 몇 권으로 된 이 책은 주로 토라를 신비적인 측면에서 주석한 것인데요.. 유대 신비적인 유산들은 주로 유다인들이 늘 믿어 온 신앙을 바탕으로 같은 본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비는  본문들의 깊고 심오하게 감춰진 비밀들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특히 조하르는 고대의 토라에 사용된 용어들을 깊은 신비적인 해석을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2세기 경의 유명한 현자였던 라삐 시몬 바르 요하이는 토라에 사용된 언어는 사람이 입고 있는 여러 옷들에 비길 수 있듯이 나타난 하나의 겉모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몸에는 영혼이 있듯이 토라는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 속에 깊은 실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토라는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내포하고, 그리고 많은 면으로 발견되고, 감상되고, 해석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하르는 이런 토라를 우화적, 은유적인 접근을 통해 조금 더 풍성한 묘사와 전통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하르는 유대 신비주의가 꽃을 피우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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