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들은 성전이 무너진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살면서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그들의 전통을 이어왔는데요. 회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매주 금요일 저녁 무렵 안식일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면 종교 유다인들은 저마다 좋은 옷으로 단장을 하고 온 가족이 모여 회당을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들은 마치 결혼 잔칫집에 가는 것처럼 즐거워 보입니다. 유다인 동네에 살다 보면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회당은 삶의 구심점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가족들의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서 뛰어놀며 신앙을 배우고 전수해 가는 것처럼 이들도 안식일과 축일에 회당에 머물며 기도와 토라를 공부하고 토론을 합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 전 세계로 흩어진 유다인들의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회당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 회당의 유래와 역사
회당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 기관입니다. 첫째는 기도를 하고, 둘째는 연구하는 집 혹은 학교, 그리고 셋째는 모임의 집이다. 회당의 기원은 정확히 그 연대를 말할 수 없지만 제1차 성전이 무너지고, 남 왕국의 유다인들이 바빌론에서 포로기를 지낼 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에제 11, 16 참조). 성전에서 제사를 더 이상 드릴 수 없었던 유다인들은 ‘집’에 모여 토라를 공부하고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 이후 제2성전 시대 때에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할 수 없었던 해외 유다인들이나 예루살렘에서 먼 곳에 살았던 북쪽의 유다인들이 회당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은 “기도하는 집,” 또는 “모임의 집”으로 불렸습니다. 다른 한편 회당은 학교와 비슷했기 때문에 라삐들에 의해 “벧 미드라쉬 (학교 혹은 학원)”를 “벧 크네셋 (모임의 집 또는 회중의 집)”과 연관을 시킵니다.
2. 예수님 시대의 회당의 모습
예수님 시대의 회당은 거의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단순한 건축물이었습니다. 회당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로 벽 윗부분에 창문이 달려 있고, 합각머리 모양의 기와 지붕이 높이 솟아 있어 평평한 점토 지붕과 구별되었습니다. 회당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성인 남자 10인 이상이 모여야 했으며 회당 지도자(로쉬 하크네셋)는 전례를 인도하고, 기도할 사람, 토라를 읽을 사람, 그리고 강론을 할 사람을 택했습니다(마태 13, 54; 마르 6, 2). 회당에서 주로 기도를 하기도 했지만 (마태 6, 5), 회당에서 가장 먼저 한 주요 종교 활동은 안식일과 축일에 토라와 예언서 구절을 큰소리로 낭독하는 것이었습니다(루카 4, 16-30). 히브리어로 먼저 낭독된 성경은 당시 서민들의 일상 언어인 아람어나 그리스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존경의 표시로 중앙 연단에서 서서 읽었지만, 강론을 할 때는 오늘날의 설교자와는 달리 ‘모세의 자리’(마태 23, 2)에 앉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공인된 토라나 예언서 독서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성경 구절을 선택해 읽고 강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회당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한 것처럼 그 당시에는 토론은 회당 분위기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회당 분위기보다는 자유롭게 가르칠 때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은 벽 둘레에 붙여 만든 의자나 방석에 앉았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여성들이 회당에서 독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루카에 나타난 치유 이야기나 바오로가 회당에서 강론할 때 회중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17, 4). 그러나 바빌론 탈무드의 후기 문서에 처음으로 여성들이 토라 독서에서 제외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에서 회당은 기도하는 집(마태 21, 13), 율법을 배우고, 예배하며 공부하는 장소(에제 11, 16), 의결 사항을 토의, 결정하고, 구제금을 거두며 장례식을 거행하고, 범법자를 재판하고, 형벌을 내리는 곳(마태 10, 17)등으로 사용된 곳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어린 시절에 다니시던 나자렛 회당 경당 내부)
회당의 규칙은 매우 엄격했다고 합니다. 회당에서는 출교(요한 9, 22)외에도 직접적인 채벌로써 채찍질로 벌을 주기도 했습니다. 라삐들은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 168가지의 범죄를 규정해 처벌하기도 했습니다(마태 23, 34). 이때 채찍질은 39대를 넘지 못하도록 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채찍은 세 가닥으로 되어있어 39대 다음은 42대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당의 전례는 안식일 아침에 시작됩니다. 아침 전례는 의무였으나 저녁 전례는 자율적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전례는 시편이나 감사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셰마 제창, 회당장의 축복기도, 율법서나 예언서 독서, 강론(루카 4, 16-30), 축복 찬송-아론의 축복기도(민수 6, 24)로 폐회를 했습니다. 율법은 삼 년에 한 번씩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회당에서는 주로 시편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배우셨으며 가르치시기도 했다. 제자들도 복음을 전하러 회당에 들어가 사람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코린토(사도 18, 4), 키프로스(사도 13, 5), 안티오키아(13, 14)에서 볼 수 있듯이 회당에서 강론을 했습니다. 이런 회당의 예식은 그리스도교 전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경 독서, 기도, 강론 등이 회당 전례의 한 형태였습니다.
오늘날의 회당은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작지만 아담한 모습으로 건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보다 훨씬 더 남녀 구별을 하는 듯이 남녀의 자리가 뚜렷이 구별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서로 볼 수 없도록 칸막이로 구분을 해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례 전통을 지켜가면서 현대에 알맞은 다양한 축제 요소를 접목시켜가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