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멜 산/ 카르타/ 아펙 (이스라엘 북부 카르멜 산 지역 3)

이스라엘 북부 카르멜 산 지역의 카르멜 산은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 예언자들의 기도 대결로 유명한 곳입니다. 카르타는 즈불룬 지파가 상속 받은 성읍이었죠. 그리고 아펙은 아세르 지파에게 상속되었지만 정복하지 못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성읍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이스라엘 북부 카르멜 지역의 카르멜 산, 카르타, 아펙 1-1

(이스라엘 북부 카르멜 산 지역의 카르멜 산, 카르타, 아펙 1-1 지도)

1. 카르멜 산(Mount Carmel, [הר כרמל], 포도원의 신)/ 무흐라카(Muhraka)

1) 카르멜 산의 위치: 32º 40’ 21. 68” N 35” 05’ 18. 24” E

2) 카르멜 산의 특징과 역사

예수님은 공생활 3년 동안 팔레스티나의 여러 마을과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주로는 겐네사렛 호수 주위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요르단 강을 따라 이어진 길이나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길을 오가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이 갈릴레아 경계 너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신 경우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데, 그곳은 옛 페니키아였고, 지금은 레바논입니다(마태 15,21; 마르 7, 24). 그러나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던 지중해 연안까지 예수님이 가셨는지는 알 길이 없지요. 카르멜 산이 있는 곳은 바로 그 지중해 연안인데, 이곳은 특히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에 대한 기억과 관련이 있고, 그리스도교 시대에 들어서는 가르멜 수도회의 탄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카르멜 산은 사마리아 고원에서 지중해로 뻗어나가 도시 하이파 위로 솟아 있는 곶에서 끝나는 석회암 산입니다. 길이는 약 25킬로미터, 폭은 10킬로미터에서 15 킬로미터로, 평균 높이는 500미터에 이릅니다. 카르멜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과수원, 포도밭, 정원을 의미하는 케렘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곳의 산맥은 수많은 샘의 발원지여서 산허리와 골짜기는 월계수, 소귀나무, 털가시나무, 타마린드, 참죽나무, 소나무, 구주콩나무, 유향나무 등 지중해 유역에서 자라는 풍부하고 다양한 초목으로 뒤덮여 있지요. 그 지역은 늘 비옥한 것으로 유명했고,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의 번영이나 또는 반대로 불행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목자들의 풀밭이 시들고 카르멜 꼭대기가 말라 버린다(아모 1, 2; 이사 33, 9; 35, 2; 예레 50, 19; 나훔 1, 4).”카르멜에는 천 년도 넘는 동굴이 많이 존재하는데, 특히 서쪽 지역에는 입구는 좁지만 안쪽은 널찍한 동굴들이 많습니다.

카르멜 산의 역사는 기원전 9세기에 살았던 엘리야 또는 엘리사 예언자와 빌접한 관계가 있지요. 교부들과 고대 저자들이 언급한 전승에 따르면, 엘리야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하이파 위쪽의 북쪽 경사면에 있는 한 동굴을 꼽을 수 있는데, 엘리야 예언자와 그 후에 엘리사 예언자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근처에는 엘리야가 제자들을 모은 장소가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을 ‘예언자 학교’라 불렀고, 아랍어로는 엘 하데르(El-Hader) 또는 하다르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멀리 않은 곳에는 엘리야가 바위를 쳐서 물이 흐르게 했다고 알려진 ‘엘리야의 샘’이 있지요. 그리고 산맥 남동쪽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신을 섬기는 예언자 450명과 대결했다는 봉우리 엘 므흐라카와 키숀 강이 있습니다. 열왕기 1서에 나와 있듯이, 엘리야의 기도로 하느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 제단을 태웠으므로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그만두었습니다(1 열왕 18, 19-40). 그리스도교의 시초로 공경받아 왔고, 엘리야를 기념하여 성당들이 지어진 바로 이 지역에서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수도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은 12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원래는 프랑스 출신인 베르톨드 성인이 하이파가 내려다보이는 카르멜 산 북쪽 지역에 살고 있던 은자들 몇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성당을 지었고, 얼마 후 1200년 무렵 서쪽 경사면 와디 아인에스시아에 또 다른 성당을 세웠습니다. 13세기 초에는 베르톨드 성인을 계승하여 수도원장이 된 브로카르도 성인이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정식으로 요청하여 청빈, 절제, 관상의 수도생활 규칙과 함께 인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구세주의 규칙이라고도 알려진 이 가르멜 수도회 규칙은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교황 인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어지다가 1226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인증받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 이후로는 중동에서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일부 가르멜 수사들이 유럽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 새로운 수도원들을 설립했습니다. 이러한 탈출은 오히려 가르멜 수도회가 살아남고 확산하는데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1291년에 이집트 군대가 아코와 하이파를 점령하고 카르멜 산에 있던 성당들을 불태우고 수도사를 몰살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동안의 공백으로 이곳에서의 가르멜 수도회 역사를 제대로 알 수는 없습니다. 성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17세기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19세기까지는 카르멜 산에 가르멜 수도회가 다시 재건될 수 없었다고 밝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1827년에서 1836년까지 현재의 수도원과 바다의 별 성당이 카르멜 산 북쪽 꼭대기, 예언자의 존재를 기념하는 한 동굴 위에 세워졌습니다. 바다의 별이라는 이름은 거짓 예언자들의 시대가 가고 나면 이스라엘 땅에 비옥함을 회복시켜 줄 비를 몰고 오는 작은 구름을 엘리야의 종이 보았던 것처럼(1 열왕 18, 44),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낳고, 그분을 통해 온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다는 계시를 연상시킵니다. 3층으로 된 된 건물들은 길이 70미터 폭 36미터의 사각형 건물 단지를 형성하고 있지요. 북쪽으로는 하이파 만의 멋진 전망이 보이는데, 맑은 날에는 해안선을 따라 아코까지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입구는 서쪽에 있어요. 중앙 공간은 팔각 형태이며 엘리야와 다른 예언자들, 성가정, 복음사가들, 그리고 가르멜 수도회 성인들의 그림으로 장식한 돔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1928년에 그려 넣은 것입니다. 1931년에는 성당 내부를 대리석으로 마감하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시선은 제단 쪽으로 모아지는데, 제대 뒤 벽감에는 카르멜 산의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전승에 의하면 엘리야가 살았다고 하는 동굴이 있습니다. 이 동굴은 가로 3미터 세로 5미터 정도 되는 공간인데, 두 개의 반암 기둥과 몇 개의 계단으로 성당의 중앙 회중석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동굴 안에는 제대 하나와 이사야 예언자의 석상이 서 있습니다.

카르멜 산의 무흐라카 카르멜 수도원 성당

(카르멜 산의 카르멜 수도원 성당)

3) 성경 속의 카르멜 산

카르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의 기도 대결에서 승리한 곳으로 유명한 산입니다(1열왕 18장). 성경에서 카르멜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장소로 유다 지파에 있는 마을 카르멜(여호 15, 55)과 하이파 부근의 카르멜 산이 있습니다. 가르멜 산은 베텔을 떠난 엘리사가 사마리아로 돌아갈 때 방문한 곳이며(2열왕 2, 25)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얻은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가 머물렀던 곳입니다(2열왕 4, 25). 카르멜 산은 아름답고 언제나 푸르는 곳이었으며(아가 7, 6; 아모 1, 2), 해변에 위치해 있었고(예레 46, 18), 예언 때에 비유로 언급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이사 33, 9; 아모 9, 3). 성경에서 카르멜 산은 ‘카르멜 산’ 또는 ‘카르멜’(이사 33, 9; 예레 46, 18)로 기록되어 카르멜 성읍과 혼동되기 쉬운 지명입니다. 카르멜 산은 이스라엘에서 해안 평야 지역까지 가로지른 산맥으로 길이가 약 39km이고 폭은 6-8km 정도의 크기이며 가장 높은 곳은 해발 546m에 이릅니다.

  • 1열왕 18장 전체 참조
  • 여호 15, 55: (유다 지파 땅) 또 마온, 카르멜, 지프, 유타,
  • 2열왕 2, 25: 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카르멜 산으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 아가 7, 6: 그대의 머리는 카르멜 산 같고 그대의 드리워진 머리채는 자홍 실 같아 임금이 그 머리 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오.
  • 아모 1, 2: 아모스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목자들의 풀밭이 시들고 카르멜 꼭대기가 말라 버린다.”
  • 이사 33, 9: 땅은 슬퍼하며 생기를 잃어 가고 레바논은 부끄러워하며 메말라 간다. 사론은 사막처럼 되고 바산과 카르멜은 벌거숭이가 된다.
  • 아모 9, 3: 그들이 카르멜 꼭대기에 몸을 숨겨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내어 붙잡아 오고 그들이 내 눈을 피해 바다 밑바닥에 숨더라도 내가 바다 뱀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물게 하리라.
  • 예레 46, 18: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신 임금님의 말씀이다.- 산들 가운데에서는 타보르 같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 같은 자가 반드시 쳐들어온다.

4) 카르멜 수도회의 ‘스카폴라



카르멜 수도회에서 기원된 스카폴라

(스카폴라의 예)

수백 년이 흐르면서 가르멜 수도회는 그리스도교에 막대한 보물을 주었습니다. 세 인물 모두 교회 박사로 선포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길 성 요한,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모범적인 삶과 가르침만 생각해 보아도 금세 알 수 있지요. 또 다른 보물을 꼽는다면, 스카폴라(가르멜 성의) 착용 습관입니다. 스카폴라는 그것을 열심히 착용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특권을 부여합니다. 첫째, 죽는 순간까지 신앙과 선한 일을 지켜나가고 연옥의 고통을 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신심 행위의 시작은 12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르멜 수도회는 당시 유럽에 첫발을 들여놓느라 특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가르멜 수도회의 근간을 형성하는 옛 문헌인 가르멜 성인 명부(Catalogue of Carmelite Saints)에 수록된 한 설명에 의하면 성 시몬(나중에 영국의 총수도원장인 시몬 스톡 성인으로 확인됨)이다음과 같은 기도로 성모님께 끈질기게 청했다고 합니다.

가르멜의 꽃이여

피어나는 포도나무여

하늘의 영광이신

동정 마리아여

사람의 힘으로

억누를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온화한 어머니

가르멜 수도회에

바다의 별 같은

특권을 주소서

성인의 기도에 응답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손에 스카폴라를 쥐고 발현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너와 카르멜 산의 자녀들을 위해 얻은 특별한 은총의 징표이다. 이 스카폴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또는 좀 더 자세한 버전으로 말하자면, “누구든 이것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죽을 때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은 특권을 누릴 것이다.”그러나 스카폴라가 일종의 종교적 관습이 되었을 무렵, 이것은 원래 하인이나 일꾼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작업복이었지요. 머리 부분에 구멍이 뚫린 기도한 끈 형태의 천으로 되어 있어 튜닉 위에 걸쳐 앞뒤로 늘어뜨렸습니다.

‘안식일 특권’으로 알려져 있는 두 번째 특권은 누군가가 은총의 상태에서 카르멜 스카폴라를 착용하고 있다가 죽는다면 사망 후 척 토요일에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연옥에서 나와 천국에 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중세의 전통에서 생겨났어요. 1613년 교황좌에서 나온 칙령은 본분을 지키며 순수하게 살고, 스카폴라를 착용한 채 은총 속에 죽고, 성모의 소성무일도를 바치거나 문맹일 경우 교회에서 정한 단식과 금욕을 지킨 가르멜 수사나 수도회 회원들의 영혼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믿으라고 발표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봉헌한 토요일에 성모님께서는 특히 교회를 도우러 오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의 특권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모성에서 우러나온 염려로 중재하시어 연옥에서 속죄하고 있는 자녀들이 가능한 하늘의 영광을 확실히 얻을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16,17 세기에 몇 차례 시행된 덕분에 가르멜 수도회 수도회가 많이 생겨나자, 수도회 회원들 또한 널리 퍼졌습니다. 그들이 많은 신자들의 모범이 되자, 신자들은 그들처럼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더라도 가르멜 영성의 성모 신심을 공유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가르멜 수도회의 스카폴라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신심을 드러냈고, 스카폴라는 점차 형태가 바뀌고 단순화되어 리본으로 이어 붙인 두 개의 사각 천을 목 주위에 착용하는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교황좌에서는 스카폴라 착용 관습을 자주 권고하며, 스카폴라에 대사를 주기도 하고, 스카폴라를 사용하는 데 특정한 의식을 구체적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의식들로는 각 개인이 한 번, 모든 사제에게서 받는 스카폴라 축성식, 낡은 스카폴라를 대체하는 새 스카폴라의 축성식이 있고, 천으로 된 스카폴라 대신 카르멜 산이 성심 및 성모의 스카폴라 메달을 착용하는 것도 허용이 됩니다.

몇 년 전 시몬 스탁 성인에 대한 성모님의 스카폴라 수여 750주념을 기념하여, 어렸을 때부터 늘 스카폴라를 착용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스카폴라 착용의 종교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그러므로 스카폴라의 표징은 두 가지 진리를 일깨웁니다. 한 가지 진리는 우리가 인생 여정에서 뿐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충만함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끊임없는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진리는 성모님께 바치는 신심은 어느 특별한 경우에만 성모님을 기리기 위한 기도와 봉헌 예물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체를 자주 영하고 자비를 베푸는 영적, 육체적 노동의 구체적 실행을 통해서 기도와 내적 삶으로 짜인, 각자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성을 영구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카폴라는 ‘약속’의 표징이자 성모님과 신자 사이의 영적 교감의 상징이었습니다. 참으로 스카폴라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주셨고, 요한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셨던 성모님의 선물과 사랑하는 사도들과 우리를 우리의 영적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께 맡기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1년 3월 25일 카르멜 수도회에 전하는 메시지).”

이러한 생각은 스카폴라를 축성하는 유명한 몇 마디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 하느님, 복되신 삼위의 찬송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영예로 이 스카폴라를 받는 당신의 종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그들이 당신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모상을 본받게 하여 주시고, 또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혼례복을 입고 본향인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하소서(축복 예식서, 1218항).”

2. 카르타(Kartah, [ קרתה], 도시)/ 아틸리트(Atilit)

1) 카르타의 위치: 32º 42’ 20. 12” N 34” 56’ 01. 61” E

2) 카르타의 특징과 역사

카르타는 성경에 한 번 나오는 지명으로 즈불론 지파의 영토였지만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에게 상속된 성읍입니다(여호 21, 34). 카르타의 위치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카르타를 익살(Iksal)로 추정하기도 했지만 그 근거가 없으며 일반적으로는 아틀리트(Atilit)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 시대에 케르타(Kertha)로 부르는 지역이기 때문이죠. 페니키아에서 도시를 카르드(Qarth)라고 부르기에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봅니다. 이곳의 요새화는 1218년에 이루어져 두 개의 큰 탑과 성벽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유적은 십자군 요새 앞에 있는 중기 청동기 시대의 거주지 해변에 있는 중기 청동기 무덤, 철기 시대의 거주지, 기원전 7세기의 잔해, 기원전 6-5세기의 잔해, 페니키아 시대의 항구, 페니키아 양식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벽이 동쪽과 남쪽에 쌓여 있으며 동쪽 성벽의 일부분 해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성벽 안에는 우물이 있으며 돌출 지역에는 해자가 건설되고 바닷가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쪽 해안에는 큰 규모의 십자군 묘지가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카르타

  •  여호 21, 34: 레위인들 가운데에서 남은 므라리 자손의 씨족들에게는 즈불룬 지파에서 요크느암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카르타와 거기에 딸린 목초지,

3. 아펙 1-1 (아세르 아펙, Aphek, [אפק ], 요새/ 텔 아펙 (Tel Afek)

1) 아펙1-1의 위치: 32º 50’ 46. 62” N 35” 06’ 38. 87” E

2) 아펙 1-1의 특징과 역사

아펙은 아세르 지파가 상속 받았으나 정복하지 못한 곳입니다(여호 19, 30). 아펙(아세르)은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로 성경에 아펙(아람; 1열왕 20, 26), 아펙(레바논; 여호 13, 4), 안티파트리스로 불리는 아펙(사론 평야 지역; 여호 12, 18)이 있습니다. 아펙은 아픽(판관 1, 31)과 같은 다른 이름 같은 장소로 추정됩니다. 아펙은 두 장소의 추정지가 있는데, 한 곳은 텔 아펙과 다른 한 곳은 텔 카프리입니다.

아코에서 남동쪽으로 약 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물이 풍부하고 이집트와 페니키아를 연결하는 해안 국제 고속도로에 위치해 교통, 무역의 아주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남동쪽에는 아펙(Afek)이라는 키부츠가 있고, 이 지역은 아인 아펙 국립공원(Ein Afek Reserve)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석동기(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 중기 청동기의 무덤들, 후기 청동기의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페르시아, 헬라, 로마, 비잔틴, 십자군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십자군 시대인 1154년에는 레코르다네(Recordane)라고 불렀습니다. 1881년에 팔레스타인 연구 재단(SWP)는 키르벳 쿠르다네(Kh. Khurdaneh)를 발견하였습니다. 쿠르다네는 ‘제분소’라는 뜻입니다. 동쪽인 이곳은 십자군 시대의 댐과 연못, 제분소, 탑이 있는 요새가 남아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3) 성경 속의 아펙 1-1

  • 여호 19, 30: 아코, 아펙, 르홉까지 포함하여 두물두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이다. 
  • 여호 13, 4: 가나안족의 온 땅, 시돈인들에게 속한 아라에서 아펙까지, 곧 아모리족의 경계까지,
  • 여호 12, 18: 아펙 임금 하나, 사론 임금 하나
  • 판관 1, 31: 아세르 지파도 아코 주민들, 시돈 주민들, 그리고 아흘랍, 악집, 헬바, 아픽, 르홉에 사는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 1열왕 20, 26: 해가 바뀌자, 벤 하닷은 아람군을 소집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아펙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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