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초르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 지역 3)

하초르는 고대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결해 주던 가장 중요한 국제 무역로에 위치해 있던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의 도시 유적지입니다. 이스라엘, 시리아, 바빌론, 그리고 해안가의 페니키아와 레바논을 오가려면 반드시 하초르에 들려가야만 했었지요. 골란 고원 서쪽,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훌라 계곡을 끼고 있어 도시는 상당히 번영했었습니다. 

텔 하초르(tel Hatsor)의 상부 도시의 크기는 120 듀남(1 dunam=1100평방 킬로미터)이고, 하부 도시는 북쪽으로 700 듀남(1 듀남=1100평방 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가나안 시대의 하초르가 얼마나 강력한 성읍이었는지 잘 알 수 있지요.

하초르 유적의 물저장소 입구

(하초르의 물 저장소)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 하초르 지역 지도

(이스라엘 상부 갈릴래아의 하초르 지역 지도)

글의 순서



1. 하초르(갈릴래아의 하초르, Hazor[חצור ], 마을)/ 텔 하조르(Tel Hazor)

1) 위치: 33º 01’ 02.93” N 35” 34’ 06. 34” E

2) 텔 하초르의 역사와 고고학 발견



텔 하초르에서 인간이 정착한 시기는 기원전 3천 년 경입니다. 그 당시에는 상부 도시에서만 거주했습니다. 기원전 3000년 말경에 텔은 중기 가나안 시대(기원전 23-21세기)까지 폐허로 남았습니다. 고고학자 이갈 야딘(Yigal Yadin)의 발굴에 따르면,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750년경)에 성읍은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지요. 이때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상부 도시가 비좁아지자 주거지가 하부 도시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부 도시는 평지라서 자연 요새가 없었어요. 그래서 거주민들은 서쪽으로 깊은 해자(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城)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함)를 파야했습니다. 발굴 과정에서 하부 도시의 북쪽과 서쪽에서 성벽에 사용된 흙벽돌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동쪽 경사면은 글라시(glacis, 경사면 벽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쌓아 올리는 방어벽으로 적이 기어오르기가 상당히 힘듦)로 보강되었고, 공공건물, 신전이나 주거용 주택이 철저하게 요새화 된 형태로 복합 건물이 지어졌지요. 하부 도시는 중기 청동기 (기원전 2000-1550년 경) 시대에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큰 도시 성읍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인 도시 개발로 수천 명이 살 수 있는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초르는 이집트의 저주 문서 (기원전 19세기)에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얼마 후에 고대 도시 마리(Mari)에서 발견된 문서에도 ‘하초르’가 등장하고 있지요. 이들 문서에 하초르는 가나안 땅에 있던 성읍들 중에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초르는 바빌론과 시리아의 도시들과 상업과 무역상 연맹 관계를 맺고 있었고, 상당한 양의 구리를 수출해 청동 산업에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하부 도시는 후기 청동기 시대 내내 건재하며, 파괴되거나 그리고 재건을 반복하기도 했지요. 하초르는 기원전 14세기에 번영기를 맞이하여,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던 듯합니다.

가나안 시대의 하초르는 기원전 13세기에 대화재로 파괴가 되었는데요. 이갈 야딘 교수는 이 도시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이끈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초르 왕 야빈은 북부 가나안 도시 연맹의 수장이었지만, 메롬 물가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 정복 이야기는 여호수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돌아오는 길에 하초르를 점령하고 그 임금을 칼로 쳐 죽였다. 하초르가 전에 이 모든 왕국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성읍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칼로 쳐 죽여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 이렇게 그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하초르는 불에 태워 버렸다. 여호수아는 이 모든 임금의 성읍들을 점령하고 그 임금들을 사로잡아,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대로 칼로 쳐 죽여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 (여호 11,10-12)”

발굴 작업에서 발견된 불에 탄 흔적은 여호수아 11, 13 (“여호수아가 불태워 버린 하초르”)의 말씀을 증명해 주고 있지요. 이 버전에 따르면 하초르는 기원전 1230년 경에 정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하난 아하로니(Yohanan Aharoni) 교수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야빈의 군대 사령관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쳤을 때 판관기 4-5장에 설명된 대로 후에 하초르가 이스라엘 백성의 정복, 정착 기간에 정복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전쟁의 패배의 여파로 하초르가 멸망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후기에 하초르는 다시 번창했지만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부 도시 지역에만 사람들이 거주했습니다. 기원전 10세기에 도시가 재건되었고, 아합은 그 성읍을 이전보다 두 배 정도 크게 건설을 했습니다(기원전 9세기). 아합 시대에 하초르는 중요한 무역로에서 요새화 된 도시로 다시 한번 그 역할을 했습니다. 마차, 기병, 병거, 식량 및 저장소로도 사용되었지요.

아람 군대와 아시리아 왕들의 전투에서 이 성읍은 여러 번 파괴되었지만 매번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732년 아시리아 왕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갈릴레아의 모든 도시를 정복하면서 하초르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텔 하초르 위성 사진)

3) 텔 하초르의 눈 여겨볼 만한 유적들



  • 솔로몬의 문 (Solomon’s Gate)

솔로몬의 문(1열왕 9, 15)은 6개의 방 (Six Chambers rooms)과 2개의 탑이 있는 형식의 문으로 기원전 10세기에 지어졌습니다. 성문은 이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게제르와 므기또의 성문과 비슷합니다. 이 문은 성벽 두 개의 평행한 벽 사이에 공간이 있고, 칸막이로 방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문 남쪽 날개 가운데 방 아래에는 가나안 시대 신전의 현무암 문지방이 있었습니다.

  • 가나안 궁전 (The Canaanite Palace)

흙벽돌로 지어진 가나안 시대의 궁전 유적은 지붕으로 덮여있어 그 시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궁전은 기원전 14-13세기에 하초로 왕이 거주하던 곳입니다. 궁궐에서 의식용 제단이 발견되었으며, 입구 쪽으로 이어진 계단 꼭대기에 두 개의 거대한 현무암 기둥이 놓여 있습니다. 왕궁 한가운데에서 왕좌가 발견되었습니다.

  • 상수도 시스템 (The Water System)

텔 하초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무엇보다도 저수조 시스템일 것입니다. 큰 마름돌 블록으로 쌓은 수직으로 된 갱도(shaft)가 발굴되었는데, 이는 고대 층을 통해 지하 암반까지 관통하고 있습니다. 벽을 따라 3m 정도의 너비의 계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깊이는 45m가 되지요. 갱도가 끝나는 곳에서 25m 정도의 터널이 시작되어 물이 있는 퇴적물 대각선 아래로 경사가 지고 있습니다. 상수도 시스템의 목적은 가뭄이 들 때도 외부의 샘에서 물을 끌어 올 필요 없이 지역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 시스템은 아합 왕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요새와 제단 (Israelite Fortress and Ritual Dais)

상부 도시의 서쪽은 기원전 10세기의 이중 성벽(casemate wall)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2세기)까지 요새가 있었지요. 이곳에서 발견된 큰 요새는 아합 시대(기원전 9세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건물은 상당히 뛰어난 기술을 이용해 지어졌어요. 아합 시대의 이중 성벽은 그 안에 흙과 돌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후에 아시리아 왕 티글랏 필에세르 3세의 침공에 대비해 성벽을 견고하게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새 옆에는 이스라엘 시대 초기의 제단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 이스라엘 시대의 주거용 건물과 창고 (Residential Building and Storeroom from the Israelite Period)

기원전 8세기에 건축된 건물은 원래 무너진 가나안 왕궁 터 위에 지어졌으나, 후에 고고학자들이 왕궁 보전을 위해 이들을 상부 도시 북쪽으로 이전했습니다. 주거용 건물들은 이스라엘 시대의 전형적인 내부가 4개로 구분된 건물 형식( four rooms house)입니다. 두 줄의 기둥이 있는 다른 건물은 공공 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를 이어 주는 통로 (The passage between the Lower City and the Upper City)

가나안 시대에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를 연결해 주는 현무암 계단을 발굴하기 위해 후대의 성벽 일부를 허물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거대한 건물 유적을 볼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매끄러운 현무암 돌로 만든 제단이 있습니다. 제단 평면의 돌은 약 2톤에 해당하는 현무암 한 개의 석판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석판 중앙에 4개의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아마도 왕좌를 세우기 위한 홈인 것 같습니다.

  • 하초르 고대 박물관(Hatsor Antiquities Museum[Ayelet Hashahar])

하초르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은 하초르 키부츠 입구 정문 옆에 있으며, 방문을 원할 경우 예약을 해야만 합니다. 박물관은 발굴 사진과 지도, 가나안인 하초르 사원과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이집트, 키프로스, 크레타와 같은 이웃 국가에서 가져온 물건, 이스라엘 시대의 유물을 포함하여 텔 하초르에서 발견된 매혹적인 발굴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방문은 텔 하초르 국립공원 측 요청한 단체만 가능합니다.

  • 전망대 (Lookout Points

하부 도시 전망: 공원 유적 입구에는 상부 도시에서 하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시대의 탑: 아시리아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지어진 탑은 아크로폴리스의 서쪽 끝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텔 하초르, 훌라 계곡, 갈릴레아 언덕과 골란을 잘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4) 성경 속의 하초르

  • 여호 11, 10-11: 그때 여호수아는 돌아오는 길에 하초르를 점령하고 그 임금을 칼로 쳐 죽였다. 하초르가 전에 이 모든 왕국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성읍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칼로 쳐 죽여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 이렇게 그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하초르는 불에 태워 버렸다.
  • 여호 15, 23: (유다 지파의 성읍들) 케데스, 하초르, 이트난,
  • 1열왕 9, 15: 솔로몬 임금이 주님의 집과 자기 궁전과 밀로 궁을 짓고, 예루살렘 성벽과 하초르와 므기또와 게제르를 세우려고 부역을 시킨 이야기는 이러하다.
  • 여호 15, 25: (네겝 지역의 하초르) 하초르 하다타, 크리욧 헤츠론 곧 하초르,
  • 느헤 11, 33: (벤야민 지파의 하초르) 하초르, 라마, 키타임,
  • 예레 49, 28-33: (아라비아 지역의 하초르)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멸망시킨 케다르와 하초르 왕국에 대하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케다르를 치러 올라가라. 동방 사람들을 몰락시켜라. 그들의 천막과 양 떼를 빼앗고 휘장과 살림살이도 모두 빼앗아라. 그들에게서 낙타들을 몰아내 오고 그들에게 ‘사방에서 공포가 밀려온다.’ 하고 외쳐라. 하초르 주민들아, 어서 몸을 피해 달아나 깊이 숨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너희를 칠 구상을 하고 너희를 칠 계획을 짜 놓았다. 일어나 마음 놓고 편안히 살고 있는 민족을 치러 올라가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은 성문도 빗장도 없이 홀로 떨어져 살고 있다. 그들의 낙타들이 노획물이 되고 그들의 가축 떼가 전리품이 되리라. 관자놀이의 머리를 민 자들을 내가 사방으로 흩어 버리고 그들 주변 곳곳에서 그들에게 환난을 불러오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하초르는 승냥이의 소굴이 되고 영원히 폐허가 되리라. 아무도 거기에 살지 않게 되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도 없으리라.” 
  • 여호 11, 13; 12, 19: 11, 13-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불태워 버린 하초르를 제외하고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성읍들을 하나도 불태우지 않았다.; 12, 19: 마돈 임금 하나, 하초르 임금 하나
  • 여호 19, 36: 아다마, 라마, 하초르,
  • 판관 4, 2-3: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초르를 다스리는 가나안 임금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아넘기셨다. 그의 군대 장수는 하로셋 고임에 사는 시스라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울부짖었다. 야빈이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하게 억압하였던 것이다.
  • 판관 4, 15-26: 17- … 한편 시스라는 달음질쳐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의 천막으로 도망갔다. 하초르 임금 야빈과 카인족 헤베르가 평화롭게 지냈기 때문이다….
  • 2열왕 15, 29: 이스라엘 임금 페카 시대에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가 와서, 이욘, 아벨 벳 마아카, 야노아, 케데스, 하초르, 길앗, 갈릴래아와 납탈리 온 지역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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