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리아/ 도르/ 카탓/ 시호르 리브낫1/ 아루뽓 (이스라엘 북부 해안 평야지대의 카이사리아 지역)

카이사리아는 지중해 항구 도시로 예수님 당시 유대아, 사마리아 지역의 행정 수도였습니다. 도르 또한 고대에 중요한 항구 도시였지요. 이스라엘 해안 평야 지대에 위치한 카이사리아, 도르, 카탓, 시호르 리브낫1과 아루뽓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이사리아, 도르, 카탓, 시호르 리브낫1, 아루뽓의 위치를 나타내는 이스라엘 평야지대의 지도

글의 순서



1. 지중해의 카이사리아 (Caesarea, [Καισαρεια], 카이사리아의 성읍/ 케사리아 [Caesarea])

1) 지중해의 카이사리아의 위치: 32º 29’ 49. 00” N 34” 53’ 22.03” E

발굴이 된 지중해의 카이사리아 유적지

(현재 지중해의 카이사리아 유적 모습)

2) 지중해의 카이사리아의 특징과 역사

지중해의 카이사리아는 사론 평야이 북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카이사리아 필리피와는 다른 지역이지요.  ‘악어 강’으로 불리는 타니님 강과 하데라 강 사이에 낮은 만이 형성되어 있어, 배들이 정박할 수 있었던 곳입니다.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39-332년)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의 거주지였었지요. 그리스 시대에는 번영했던 곳으로 스트라톤(Straton’s Tower/ Stratonos Pyrgos)로 기록된 곳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103년 하스모니아 왕궁의 영토였던 이곳은 로마가 정복하여 헤로데 대왕에게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인공으로 항구도시를 건설하고, 당시 카이사르를 기념하여 도시 이름을 ‘카이사리아’로 정했습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22-21년경에 건설되기 시작해 12년이 지난 후 기원전 10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도시 완공을 축하하는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고 하는데요. 

기원전 6년에는 로마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기 위한 행정 수도가 되었으며, 이방인과 유다인이 함께 거주했습니다. 또한 유다인 항쟁을 진압한 베스파시아누스가 이곳에서 황제가 된 것을 선포하기도 했지요. 

카이사리아는 서방을 향한 복음의 관문이 되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였던 것이지요. 이방인 첫 세례자였던 백인 대장 코르넬리우스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사도 10, 1). 필리포스가 복음을 전파하러 해안 평야 지대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합니다(사도 8, 40).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사라진 베드로 사도를 지키던 파수꾼들을 처형한 후에 카이사리아로 갔습니다(사도 12, 19). 바오로 사도는 2차 전교 여행 때에 카이사리아를 거쳐 안티오키아로 갔습니다(사도 18, 22). 그리고 제3차 전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곳에 있는 필리포스의 집에 머물기도 했지요(사도 21, 8). 바오로 사도는 로마로 압송되어 가기 전에 이곳의 감옥에서 2년 동안 억류되었었습니다(사도 25, 4-6). 

기원후 3-4세기에는 오리게네스와 교회학자 에우제비오가 살았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매우 번영했던 이곳은 6세기 말에 성벽이 완성된 큰 도시가 되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아랍이 점령한 후 쇠퇴의 길을 걷다가, 9세기에 다시 요새화가 되었지요.

십자군이 서기 1101년 5월 17일에 점령했고, 1251년에 다시 요새화가 된 도시로 변모합니다. 

19세기에 오스만 튀르키예는 처음에 보스니아 피난민을 위한 정착지로 사용하다가 십자군 시대의 요새를 재건축하여 행정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지중해의 카이사리아 발굴 작업은 187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947년부터 부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었지만 1959-1964년에서야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지요. 이곳에서 1961년 야외극장을 발굴하면서 본시오 빌라도와 티베리우스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석비는 네 줄의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카이사리아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니 샘(Shuni Spring)에서 카이사리아까지 수도교를 건설해 물을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이 수도교는 아치 형태의 다리 위에 수도를 만들었으며, 지스르 에즈 자르카 남쪽 지역 까지는 지중해변을 따라 가다가 지스르 에즈 자르카 남쪽 지역에서는 동쪽에 있는 언덕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수니 샘은 지스르 에즈 자르카의 동쪽에 있는 언덕 지역이어서 터널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수니 샘의 물로 부족해 동북 쪽으로 연결되는 수로(Channel)가 건설되었습니다. 

기원후 130년경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바르 코크바 항쟁 때 이곳에 주둔하는 로마 군대를 위하여 새로운 수로를 만들어 확장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는 네 번째의 수로가 건설되었지요. 12세기의 십자군 시대에는 네 번째의 수로가 다시 건설되었습니다. 도수교는 높은 수도교와 낮은 수도교가 있습니다. 높은 수도교(The High Level Aqueduct)는 카이사리아에서 높이가 8m에 이릅니다. 각 1km마다 20cm의 높이가 다르게 건설되어 고도차를 이용해 물이 흐르게 만들었던 거지요. 비잔틴 시대에 건설된 수도교는 높이가 5.5m인 까닭에 낮은 수도교(The Low Aqueduct)라고 부릅니다. 이 낮은 수도교는 높은 수도교에서 동쪽으로 약 11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타니님 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서 동북쪽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만든 댐에서부터 연결되었습니다. 

지중해의 카이사리아는 1992년부터 이스라엘 고고학청(IAA)과 하이파 대학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기원후 2-3세기의 모자이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는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헤로데 대왕 시기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사용된 로마식 극장, 해변에 돌출된 궁전(Promontory Palace), 헤로데 시대의 전차 경주장, 400m의 방파제가 있던 거대한 인공 항구인 세바스토스(Sebastos), 헤로데 대왕이 신전들을 세우기 위한 건설한 단(podium), 길이가 900m이고 높이가 13m인 아랍 시대부터 십자군 시대까지의 요새화된 중세 도시, 로마 시대의 성벽, 2600m가 넘는 비잔틴 시대의 성벽, 2세기의 전차 경주장, 비잔틴 시대의 주거지와 상업지구와 목욕탕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카이사리아 유적의 남쪽에는 유다인 키부츠인 스도트 얌(Sdot Yam)이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카이사리아

– 사도 8,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 사도 10, 1-2: 카이사리아에 코르넬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이었다. 신심이 깊은 그는 온 집안과 함께 하느님을 경외하며, 유다 백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 사도 12, 19: 헤로데는 베드로를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자 파수병들을 문초한 뒤,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유다를 떠나 카이사리아로 내려가 그곳에 머물렀다.

– 사도 18, 22: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

– 사도 21, 8: 이튿날 그곳을 떠나 카이사리아에 이르러,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로서 복음 선포자인 필리포스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물렀다.

– 사도 25, 4-6: 페스투스는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자기도 빨리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면 여러분 가운데에서 담당자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 그를 고발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페스투스는 여드레인가 열흘인가만 그들과 함께 지낸 뒤에 카이사리아로 내려가, 이튿날 재판정에 앉아 바오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2. 도르 (Dor, [דאר ], 거주, 텔 도르 [Tel Dor ]

1) 도르의 위치:  32º 37’ 06. 78” N 34” 55’ 04.19” E

고대 항구 성읍 도르 유적지

(고대 항구 성읍이었던 도르의 유적)

2) 도르의 특징과 역사

지중해 연안 언덕 위에 위치한 도르는 아세르 지파 영토였지만 므나쎄 지파가 소유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하초르 야빈과 함께 동맹하여 여호수아의 군대와 싸워서 패전한 가나안 성읍이었지요(여호 11, 2; 17, 11). 도르는 므나쎄 지파가 상속받았으나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해 진 다음에 가나안 족에게 노역을 시켰던 마을이었습니다(판관 1, 27-28; 1역대 7, 29). 

솔로몬은 열 두 행정구역 중의 한 곳으로 도르를 지정했습니다. 솔로몬의 딸인 타팟과 결혼한 솔로몬의 사위인 아비나답의 아들(벤 아비나답)이 통치한 곳으로 ‘나팟 도르’로 불리기도 했지요(1열왕 4, 11). ‘나팟 도르’는 ‘도르의 높은 땅(도르의 고지대)’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이 성읍은 자칼루(Zakkalu)족이 점령해서 필리스티아인들과 더불어 섞여 살았습니다. 후에 시돈 사람들은 도르와 야포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64년에 폼페이우스가 점령한 후 이곳을 자치 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 

키르벳 엘 부르즈(Khirbet el-Bruj)였던 이곳을 도르와 같은 장소로 생각하여, 텔 도르(Tel Do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서쪽의 도르 고지대(여호 11, 2)’에 있다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지중해의 카이사리아에서 약 14km 떨어진 북쪽 해안가에 위치합니다.

이 마을 유적은 1923-1924년 가르스탕의 지도 아래, 1950년과 1952년 발굴은 레이보비츠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그후 스테른 교수의 지도로 1980-1990년까지, 그리고 2000년부터 다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지요. 

지금까지의 발굴을 통해 총 11개 지역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지층이 일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해양 민족 중 하나인 시킬(Sicel, 시칠리아 섬에 살았던 세켈레시인들) 사람들의 지층으로 여겨지는 초기 철기 시대의 지층, 후기 철기,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그리고 십자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초기 철기 시대에서 나온 유적과 뼈로 된 철제 칼 손잡이, 단일 채색 토기, 두 채색 토기, 제기 같은 유물도 나왔습니다. 웬아몬의 여행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도르에 해양 민족 중 하나인 터제커(Tjekker)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 지층에서 발견된 페니키아 토기는 그 당시 텔 도르가 국제적으로 교역을 했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3) 성경 속의 도르

– 여호 11, 1-3절 중 2절: 하초르 임금 야빈은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임금 요밥, 시므론 임금, 악삽 임금에게, 그리고 북부 산악 지방, 킨네렛 남쪽 아라바, 평원 지대, 서쪽의도르고지대에 있는 임금들에게, 또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족, 산악 지방의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여부스족, 미츠파 땅 헤르몬 산 밑의 히위족에게 전갈을 보냈다.

– 여호 17, 11: 이사카르와 아세르에도 므나쎄의 소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벳 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이블르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엔 도르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낙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므기또 주민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다. 셋째 성읍은 바로 네펫이다.

– 1열왕 4, 11-13절 중 11절: 또 솔로몬의 딸 타팟을 아내로 삼은 아비나답의 아들이 도르의고지대 전체를 맡고,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타아낙과 므기또, 이즈르엘 아래 차르탄 곁에 있는 벳 스안 전체와, 벳 스안에서 아벨 므홀라에 이르는 지역, 곧 요크므암 건너편까지를, 그리고 게베르의 아들이 라못 길앗을 맡았다. 그의 지역은 길앗에 있는 므나쎄의 아들 ‘야이르의 부락들’과, 바산의 아르곱 지역에 있는, 성벽과 청동 빗장을 갖춘 큰 성읍 예순 개였다.

3. 카탓(Kattath, [קטת], 적응/ 키르벳 쿳테네 [Kh. Qutteneh])

1) 카탓의 위치: 32º 37’ 32. 35” N 35” 01’ 58.36” E

2) 카탓의 특징과 역사

카탓은 성경에서 한 번 언급하고 있는 즈불룬 지파의 마을입니다(여호 19, 15). 카탓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내용은 나할랄과 시므론 같은 마을과 가까운 곳이라는 것 밖에는 없는데요. 카탓을 키르벳 쿳테네(Kh. Qutteneh)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적 이름이 카탓과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이곳은 직경이 70m가량 되는 유적으로, 고대 건물의 기초, 기둥들의 기초석, 착유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카르멜 산의 남서쪽 경사지에 있으며, 즈불론 지파의 영토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유적의 입구에 이스라엘의 중요한 시설물이 있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제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3) 성경 속의 카탓

– 여호 19, 10. 15: 세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즈불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이 받은 상속 재산의 경계는 사릿까지 다다라,… 이렇게 카탓, 나할랄, 시므론, 이드알라, 베들레헴까지 포함하여 열두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4. 시호르 리브낫-1 (Shihor-libnath, [שיחור לבנת], 나흐르 에즈 제르카 [Nahr ez-Zerqa])

1) 시호르 리브낫의 위치: 32º 32’ 20. 51” N 34” 54’ 09.49” E

물이 흐르는 시내로 추정되는 시호르 리브낫

(성경 지명인 물이 흐르는 시호르 리브낫의 물가)

2) 시호르 리브낫의 특징과 역사

시호르 리브낫은 아세르 지파의 땅 서쪽 경계에 있던 마을로 카르멜 산 부근에 위치했습니다(여호 19, 26). 이곳은 작은 강과 연관이 있는 장소로 물이 흐르는 시내로 추정됩니다. 시호르 리브낫으로 여겨지는 장소는 두 곳입니다. 이곳이 카르멜 산 북쪽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면, 텔 아부 후왐(Tell Abu Huwam)일 것으로 봅니다. 반면에 카르멜 산 남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나흐르 에즈 제르카(Nahr ez-Zerqa)가 시호르 리브낫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곳은 도르(Dor) 남쪽 9.6km 지점에 흐르는 탄니밈 강(Nahal Taninim)이 지중해와 만나는 지역이지요. 나흐르 에즈 제르카는 ‘악어의 강’이란 뜻입니다. 이 지역에는 텔 타닌님(Tell Taninim)과 지스르 아즈 자르카(Jisr as-Zarqa)라는 아랍 마을이 있습니다. 

이 강은 지중해의 카이사리아 북쪽에 있는데요. 비잔틴 시대에는 지중해와 연결하는 강 입구에서 북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댐에서 카이사리아까지 연결된 도수교가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카이사리아 도시의 수원지가 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시호르 리브낫

– 여호 19, 24-28절 중 26절: 다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아세르 자손 지파를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헬캇, 할리, 베텐, 악삽, 알람멜렉, 아므앗, 미스알이 있다. 그 경계는 서쪽으로 카르멜과 시호르리브낫에 닿고, 해 뜨는 쪽으로 벳 다곤을 돌아서 벳 에멕과 느이엘 북쪽에 있는 즈불룬과 입타 엘 골짜기에 닿은 다음, 왼쪽으로 카불을 향하여 나가, 압돈, 르홉, 함몬, 카나를 거쳐 ‘큰 시돈’에 다다른다.

5. 아루뽓 (Arubboth, [ארבות ], 비둘기장들/ 텔 에수르 [Tel Esur])

1) 아루뽓의 위치: 32º 28’ 55. 00” N 35” 01’ 09.28” E

성경의 아루뽓으로 추정되는 유적 언덕 모습

(성경의 아루뽓으로 추정되는 언덕 유적지)

2) 아루뽓의 특징과 역사

아루뽓은 솔로몬의 신하인 헤셋의 아들(벤 헤셋)이 맡았던 마을로 성경에 한 번 기록된 지명입니다(1열왕 4, 10). 헤셋의 아들이 다스린 지역이 소코와 헤페르를 포함하고 있어서, 아루뽓의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아루뽓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장소에는 두 군데가 있습니다. 한 곳은 텔 엘 아사위르(Tell el-Assawir)로 불리던 텔 에수르(Tel Esur)이고, 다른 곳은 키르벳 엘 함맘(Kh. el-Hamam)이 있지요. 키르벳 함맘은 지역적으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에 있습니다. 텔 엘 에수르는 비옥하고 수자원이 풍부한 해안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서쪽에서 므기또로 가는 길목에있으며 나할 이론(Nahal Iron; Wadi Era)의 옆에 있답니다. 

이곳은 1935년 도탄(M. Dothan)의 지도 아래 발굴되었습니다. 그 후 1970, 1977, 1995년에도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지요. 발굴 작업을 통해 신석기, 석동기, 초기 청동기의 지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지표 조사를 통해 석동기, 청동기, 초기.후기 철기, 페르시아, 로마 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철기 시대의 유적도 발견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아루뽓

– 1열왕 4, 7-10절 중 10절: 솔로몬은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관을 두어, 임금과 왕실에 양식을 대도록 하였다. 한 사람이 한 해에 한 달씩 양식을 대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다. 후르의 아들이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맡고, 데케르의 아들이 마카츠와 사알빔과 벳 세메스와 엘론 벳 하난을, 헤셋의 아들이 아루뽓과 소코와 헤페르 땅 전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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