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르나움/ 히포스/ 함맛 가데르 (요르단 지구대의 갈릴래아 지역 4)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 정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였습니다. 히포스는 데카폴리스 도시 중의 한 곳이었습니다. 함맛 가데르는 고대부터 온천장으로 유명했던 장소였습니다. 요르단 지구대의 갈릴래아 지역에 속한 이들 성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의 카파르나움, 히포스, 함맛 가데르의 지도

(갈릴래아 호수 지역의 카파르나움, 히포스, 함맛 가데르 지도)

글의 순서



1. 카파르나움(Capernaum, [Καφαρναουμ], 나훔의 마을)/예수님이 사시는 고을/ 크파르 나훔 [Kfar Nahum])

1) 카파르나움의 위치: 32º 52’ 50. 83” N 35” 34’ 30.00” E

한창 발굴 중에 있었던 카파르나움의 베드로 집터와 회당터 유적

(카파르나움 유적과 발굴된 베드로이 집과 회당터)

2) 카파르나움의 특징과 역사

예수님의 공생활 중 갈릴래아 사목의 중심지였던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계서 나자렛을 떠나신 후에 선교의 중심지로 정한 곳입니다(마태 4, 12, 13). 

카파르나움은 ‘당신(예수님)이 사시는 고을’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마태 9, 1). 예수님의 고향은 나자렛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루카 2, 39). 카파르나움은 크파르 나훔(Kfar Nahum)과 같은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카파르나움은 벳 산과 다마스쿠스를 잇는 도로가 지나가는 중요한 위치에 있어 세관, 군대의 초소가 있었습니다. 카파르나움은 신약 시대에는 항구도시였고, 헤로데 안티파스의 영토인 갈릴래아와 헤로데 필리포스의 영토의 경계선에 있었습니다. 

초기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로 우리는 예수님이 살았던 카파르나움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7세기에 아랍인들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 그리스도인 공동체였던 그 마을은 쇠락해갔고, 2백 년 후에는 완전히 버려졌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건물은 무너지고, 지역 전체가 폐허로 변했고, 그마저도 점차 땅속에 묻혔습니다. 옛 카파르나움이 묻혀 버리고 그 폐허마저 완전히 망각 속으로 사라진 덕에 오히려 옛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19,20세기 들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에서 그곳의 땅을 구입하여 첫 고고학 발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카파르나움은 1838년 에드워드 로빈슨이 발견하였고 1866년에 윌슨(C.W. Wilson)이 회당의 유적을 찾아내었고, 1894년에 프란치스코회가 유적을 확인하고 보존하였습니다. 1905년부터 독일의 콜(H. Kohl)과 바찡거(Carl Watzinger)가 발굴을 시작하였고, 1905-1905년, 1921-1926년에 계속 발굴되었습니다. 1968년의 발굴에서는 베드로의 집으로 판명된 주택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중기,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였습니다. 

1905년에서 2003년까지 다양한 지층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은 카파르나움이 겟네사렛 호수 연안을 따라 동서로3백여 미터, 연안 내륙에서 북쪽으로 2백여 미터나 되는 지역에 걸쳐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규모가 가장 컷었던 게 틀림없지만, 그때조차도 인구는1천5백명이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민들은 사치품이라고는 전혀 없이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을 재배하며 힘겹게 살았지요. 그들은 밀을 재배하고 올리브 기름을 생산했으며,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수확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수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집들은 그 지역에서 흔한 현무암으로 대충 지었고, 진흙으로 만든 지붕이나 기와 없이 막대기나 나뭇가지틀로 지탱한 이엉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카파르나움에는 갈릴래아 산간 지방에서 가져온 석회암으로 지어진 기원후 4-5세기 때의 회당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회당에서 약 3만 개의 로마 시대 주화가 발견되었지요. 이 회당의 기도실 출입문은 세 개이며 예루살렘을 향해 세워졌습니다. 이 회당의 현무암 기초는 기원후 1세기 회당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30m 떨어진 기원후 1세기 경의 집터 위에는 5세기경에 건축한 팔각형의 성당이 있었으며 7세기 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적 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아베타(Avetta)가 설계한 현대식 성당이 1990년에 건축되었습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의 북쪽에는 로마 시대의 도로가 있었습니다. 

3) 복음서에서의 카파르나움

복음사가 네 사람 모두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교 할동의 주 무대로 카파르나움에 집중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위 인용문에서 예수님이 카파르나움에 자리를 잡았다고 언급하고 있지요. 카파르나움은 규모는 작았지만 다마스쿠스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비아 마리스에 위치해 있었고, 헤로데의 아들들, 즉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갈릴래아와 동생 필리포스가 다스리는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접경지역에 있었습니다. 이 일대에서 카파르나움의 중요성은 그곳에 백인 대장이 이끄는 로마 분대와 세관이 있었다는 사실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시절의 이 백인 대장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는데, 우리가 미사 때마다 거듭 듣게 되듯이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에서 우러나온 행위에 깊이 감동하여 칭찬하셨기 때문입니다.

카파르나움은 대부분 농사꾼이나 어부들로 이루어진 단순한 사회가 복음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의 무대였지요. 고기잡이를 하며 어망을 손질하던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곳도(마태 4, 18-22; 마르 1, 16-20; 루카 5, 1-11),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를 부르시고 직후에 그의 집에서 다른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곳도(마태 9, 9-13; 마르 2, 13-17; 루카 5, 27-32),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곳도(마르 1, 21-28; 루카 4, 31-37), 백인대장의 종(마태 8, 5-13; 루카 7, 1-10), 베드로의 장모(마태 8, 14-15; 마르 1, 29-31; 루카 5, 17-26), 들것에 실려 지붕을 통해 내려진 중풍환자(마태 9, 1-8; 마르 2, 1-12; 루카 5, 17-26), 하혈증을 앓는 여인(마태 9, 20-22; 마르 5, 25-34; 루카 8, 43-48),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들을 고쳐 주신 곳도(마태 12, 9-14; 마르 3, 1-6; 루카 6, 6-11),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곳도(마태 9, 18-26; 마르 5, 21-43; 루카 8, 40-56), 호수에서 잡은 고기의 입에서 나온 동전으로 성전세를 내신 곳도(마태 17, 24-27), 회당에서 생명을 주는 빵에 대해 말씀하신 곳도(요한 6, 24-59) 바로 이곳 카파르나움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카파르나움의 유적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난 많은 현장이 틀림없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확신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은 베드로의 집과 회당 두 곳 뿐입니다.

4) 베드로의 집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고쳐 주셨던 베드로 집터 유적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던 베드로 집터 유적)

옛 전승에 의하면, 1세기 말 카파르나움에는 작은 신자 공동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인 출처에 보면 그들을 미님(minim, 이단자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정통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고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집에 대한 기억이 잘 보존되었던 덕분에 그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4세기 말세기말 순례자 에게리아(에테리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카파르나움에서는 사도들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의 집이 성당으로 바뀌었는데, 그곳의 벽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곳은 주님이 중풍 환자를 치료해 주신 곳입니다. 이곳에는 악령 들린 사람을 낫게 해주신 회당도 있습니다. 여러 계단을 올라가면 입구가 나오는데 매끄럽게 다듬은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Appendix ad Itinerarium Egeria, II, 5,2 (CCL 175, 98-99).”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뒤 두 번째 증인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카파르나움으로, 복되신 베드로의 집으로 갔는데, 이제 그곳은 성당이 되어 있습니다.(Itinerarium Antonini Piacentini, 7 (CCL 175,132)”



이 말을 확인해주듯,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첫 번째 발굴로 5세기 말의 우아한 건물이 드러났는데, 반8 각형산책 회랑이 붙은 두 개의 동심8 각형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바닥은 식물가 동물이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지요. 1968년 동쪽을 향하고 있는 회중석과 세례반이 발견되어 이 건물이 비잔틴 시대 성당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출처에서 얻은 정보도 계속된 고고학적 발견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이전 건물의 폐허 위에 건설되었고, 폐허의 돌 부스러기 가운데에는 그라피티가 새겨진 3세기에서 5세기 무렵의 석고 조각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앙의8 각형바로 아래에는 8제곱미터의 방이 있는데, 그곳의 흙바닥은 1세기 말 무렵 최소 여섯 겹의 회반죽으로 덮여 있었고, 5세기 전에는 채색 바닥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성지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이 방은 에게리아가 방문했던, 성당으로 바뀌었다던 ‘사도들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집의 원형이 어떠했는지 상당히 정확하게 그려볼 수 있었어요. 원래 건물의 절반은 기원전 1세기에 지어졌는데, 탁 트인 안뜰로 연결된 방 여섯 개와 계단과 빵을 굽기 위한 오지 화덕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여 살던 대가족들은 이 중앙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건물 동쪽 면에는 거리로 난 입구가 있었습니다. 현무암 현관 계단이 아직까지 남아있고, 대들보에는 집을 지은 이들의 손길이 묻어 있습니다. 그 집은 마을 제일 끝단에 서 있는데, 동쪽으로는 확 트인 너른 공터와 남족으로는 연안이 내려다보입니다.

1990년 6월 29일 베드로의 집 유적과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위에 성 베드로 기념 성당이 봉헌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팔각형 건물인데 순례자들이 바깥에서는 지하로 들어가면서, 또 안에서는 회중석 중앙 바닥의 투명 유리를 통해 베드로의 집터와 옛 성당 흔적을 볼 수 있도록 거대한 기둥으로 받쳐 지표면 위로 들어 올려 지어졌습니다.

5) 유다인의 회당

카파르나움의 회당 유적

(카파르나움의 회당 유적)

많은 연구자들이 유대인 회당 유적에 주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술적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1838년 그곳을 방문했던 고고학자 로빈슨과 1866년 조사를 실시했던 윌슨은 그곳에 유대인 회당이 있다는 소식을 퍼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별로 양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든 탓에 189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지보호관구에서 카파르나움의 그 부지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회당의 많은 유적들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유실되었을 것입니다.

회당은 작은 마을 한 가운데에 서 있는데 그 규모는 상당합니다. 사각형의 기도실은 가로 23미터 세로 17미터이고, 다른 방들과 그 주위로 안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색 현무암 담이 둘러싼 개인 집들가 달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채석장에서 가져온 흰 석회암 사각별돌로 지어졌지요. 회당 건축가들의 웅장한 디자인은 상인방, 홍예 창틀, 처마돌림띠, 기둥머리의 풍부한 장식과 조각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갈릴레아에서 발견된 모든 회당 가운데 가장 아름답긴 하지만 예수님이 강론하시고 기적을 행하신 회당은 아닙니다.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이 회당은 4세기 말 무렵에 지어졌고, 5세기에 동쪽 면 절반에 아트리움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조사로 확인된 바로는 이 회당이 이전의 회당을 포함하고 있는 다른 건물들을 유적 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기도실 중앙 회중석 아래에서 발견된 커다란 바닥인데, 새로운 회당이 정말로 옛 회당과 같은 지점에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1세기 무렵의 돌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카파르나움으로 가신 후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게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뿐께서는 하느님께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0, 36-43)”

6) 성경 속에서의 카파르나움

– 마태 4, 12-13: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 마태 9,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 루카 2,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 요한 6,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 마태 8, 5-13: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 요한 4, 46-54: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 마태 11,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 히포스 (수시타, Hippos)/ 키르벳 수시타(Kh. Susita)

1) 히포스의 위치: 32º 46’ 44. 18” N 35” 39’ 35.46” E

상공에서 바라 본 히포스 유적

(상공에서 바라 본 히포스 지형과 유적

2) 히포스의 특징과 역사

히포스(Hippos)는 성경에 나오는 고을은 아니지만 데카폴리스 중의 한 도시였습니다(마태 4, 25; 마르 5, 20; 7, 31). 데카폴리스는 ’10개의 도시’란 뜻으로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동맹 도시로 요르단 계곡과 요르단 동쪽에 위치해 있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리스의 도시였던 히포스는 갈릴래아 바다의 동쪽 약 2km 지점에 있으며 갈릴래아 호수보다 약 350m 위에 있습니다. 갈리래아 호수에는 히포스 항구가 있었습니다. 

히포스는 ‘말(horse)’란 뜻이며, 아랍 시대 때는 수시타(Susita)로 불려졌습니다. 히포스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7세기까지의 그레코 로마(Greco-Roman) 도시였지요. 그 후 회교도인들이 정복했던 이 도시는 기원후 749년 지진으로 버려져 황폐해 졌습니다. 

이곳은 아랍어로는 칼랏 알 히슨(Qal’ at al-Hisn) 또는 후슨(Husn)으로 불려졌습니다. 비잔티 시대에는 히포스에 주교좌(Seat of Bishop) 성당이 있었지요. 그리스 시대에 세워진 이 도시는 로마 시대에는 계획 도시로 발전하고, 잘 정비된 중심 도로 북쪽에는 네 개의 성당 중 하나인 성당의 모자이크 바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헬라 시대, 로마, 비잔틴, 아랍 시대의 풍부한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데카폴리스

– 마태 4, 23-25절 중 25절: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 마르 5,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 마르 7, 31: 예수님께서 다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 함맛 가데르 (Hammat Gader)

1) 함맛 가데르의 위치: 32º 41’ 10. 42” N 35” 40’ 02.36” E

고대로부터 흘러 나오는 온천장이 있는 함맛 가데르

(함맛 가데르의 온천장)

2) 함맛 가데르의 특징과 역사

함맛 가데르는 성경에 나온 고을은 아니지만 갈릴래아 호수에서 동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야르묵 강 북쪽에 자리한 고대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야르묵 계곡 안에 있으며 길이가 1450m이고 너비가 500m이며 면적은 180에이커에 이릅니다. 함맛 가데르는 아랍식의 이름을 보존하고 있지요. 

이곳에는 다섯 개의 온천이 있으며, 고대 회당이 발견된 텔 엘 함메(Tell el- Hammeh)에서는 초기 청동기 시대의 토기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극장과 로마 시대의 목욕탕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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