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보르 산/ 사론/ 엔 하따/ 벳 파체츠/ 엔 간님2-3/ 야브느엘/ 벳 세메스2-1/ 아즈놋 타보르/ 쉬온 (이스라엘 북부 하부 갈릴래아의 카나 지역 2)

이스라엘 하부 갈릴래아 카나 지역의 성경 지명 지도

(이스라엘 하부 갈릴래아 카나 지역의 성경 지명 지도: 사론, 엔 하따, 엔 간님, 야브느엘, 벳 세메스2-1, 아즈놋 타보르, 타보르 산 지역 지도)

이스라엘 하부 갈릴래아 카나 지역에 위치한 성경 지명인 타보르산, 사론, 엔 하따, 벳 파체츠, 엔 간님, 아브느엘, 벳 세메스, 그리고 아즈놋 타보르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지역은 풍요로운 이즈르엘 평야와 교역로에 위치한 장소들입니다.

글의 순서



1. 타보르 산(Mount Tabor, [הר תבור], 높은 산, 채석장의 산)

1) 타보르 산의 위치: 32º 41’ 08. 92” N 35” 23’ 25. 73” E

이즈르엘 평야 카나 지역의 타보르 산과 성당 전경

(이즈르엘 펴양의 타보르 산과 거룩한 변모 성당 전경)

2) 타보르 산의 특징과 역사

타보르 산은 납탈리 지파, 즈불룬 지파, 그리고 이사카르 지파의 경계가 되는 전망 좋은 산입니다. 갈릴레아 산악 지대의 하부 갈릴레아에 있는 해발 588m의 아름다운 봉우리이기도 하지요(예레 46, 18). 이곳은 하초르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공격하기 위해 드보라의 명을 받은 바락이 군대를 모은 곳이기도 합니다(판관 4, 6. 12.14). 

타보르 산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환호하는 산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시편 89, 13). 그리고 이곳은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던 장소로 추정됩니다(마태 17, 1-9; 마르 9, 2-10; 루카 9, 28-36; 2베드 1, 16-21). 성경은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산은 높고 거룩한 산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타보르 산에 기원후 6세기 이후로 성당이 세워졌고, 십자군 시대의 성당 터 위에 1911년에 세워진 엘리야 경당과 1924년에 건축된 거룩한 변모 대성당이 있습니다. 

타보르 산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있었던 곳으로 여기고 순례하는 일은 기원후 4세기부터 시작되었지요. 매년 8월 6일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타보르 산 정상에는 성당과 수도원이 건축되었지만 947년 회교도인들이 점령하면서 무너지고 맙니다.

1099년에 십자군이 이곳을 점령했으나 1212년에는 회교도인들이 다시 차지했습니다. 1229년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다시 점령했다가 1263년에 마믈룩군이 다시 주둔하게 됩니다. 

3) 타보르 산의 수도원 역사

고고학 발굴로 타보르 산에는 4,5세기 무렵 가나안족의 유적 위에 세운 경당(고대 자료에 의하면 헬레나 성녀가 지었다고 한다)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후대에 6,7세기 순례자들의 증언은 (베드로가 지었으면 좋겠다고 한 초막 셋을 기념한) 성당 세 곳과 그곳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수도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확증하듯, 그 무렵의것으로 추정되는 모자이크 바닥이 발견되었습니다.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타보르 산에 주교좌를 설치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요. 무슬림이 지배하는 동안 이 수도원과 은수자 공동체는 점차 쇠퇴했고, 808년에는 16개 성당들이 테오파네스 주교 관할 아래 있었습니다.

1101년부터 십자군이 건설한 예루살렘의 라틴 왕국이 끝날 때까지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자들이 타보르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당을 재건하고 요새처럼 벽을 높이 쌓고 그 안에 커다란 수도원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라센 사람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라센인들은 1211년에서 1212년 사이에 수도원을 점령한 후 그곳을 요새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조금 더 뒤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뒤늦게나마 이 지역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1263년 바이바르스 술탄의 병사들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타보르 산은 계속 버려져 있었고, 1631년이 되어서야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이곳을 관리했지만 새로운 대성당이 지어지기까지는 그 후로도 3백 년이나 더 걸려 1924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20세기 초에 새로운 대성당을 지을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닦아 놓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타보르 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 다다르면 아랍어로 바벨 하와(Bab-el Hawa)라고 불리는 바람의 문이 나오는데, 산 정상부의 평지를 전체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13세기의 아랍 요새 유적입니다. 북측에는 그리스 정교회 구역이 있고 남측으로 프란치스코회 성지보호관구가 관리하는 가톨릭 구역이 있습니다.

바람의 문에서부터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기다란 가로수 길이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과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이어집니다. 성당 앞에는 12세기의 베네딕도 수도원 유적과 사라센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사실, 사라센 요새는 십자군 시대의 성당 기초 위에 지어졌고, 마찬가지로 현재의 성당 역시 예전의 성당 설계도를 바탕으로 지어졌습니다.

우뚝 솟은 두 성채 사이의 커다란 아치와 그 위에 삼각 박공장식을 갖춘 정면이 방문객들을 맞이하는데, 그 장엄한 모습에 저절로 영혼이 고양됩니다. 이러한 감정은 청동 문을 통과해 들어가면서 더욱 커집니다. 중앙 회중석은 커다란 반원형 아치에 의해 측량과 분리되어 바위를 파내서 만든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됩니다. 그 위에는 황금색 바탕에 거룩한 변모를 표현한 모자이크가 그려진 후진과 함께 제단이 높이 서 있습니다. 거룩한 변모 장면의 신비는 정면의 창문을 통과해 들어와 중앙 회중석의 벽과 지하의 후진을 비추는 빛의 특성에 의해 더욱 강조됩니다.

성당의 설계는 그 장소에 있었던 이전 성당의 외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문 옆의 두 성채는 후진을 갖춘 중세 시대의 성당 위에 지어졌는데 지금은 모세와 엘리야를 기념하여 봉헌되었습니다. 지하실에는 십자군 시대의 원래 아치형 천장이 후대에 모자이크로 덫이긴 했지만 제대는 원래의 것이지요. 벽에는 원래의 석벽 일부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당 북쪽 중세 수도원의 식당으로 밝혀진 지점 아래에서 작은 동굴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동굴 벽에는 그리스어 비문과 십자가를 비롯한 기호들이 적혀 있는데, 한때 타보르 산에 살았던 비잔틴 시대의 수도사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4)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타보르 산 거룩한 변모 대 성당 제대 위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장면 모자이크)

영광스러운 변모를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의 영광을 드러냈고, 그럼으로써 베드로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마르 8,29와 루카 9,20 참조)”라는 신앙 고백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곧 닥칠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처하도록 사도들의 신앙을 이런 식으로 미리 굳건하게 해 주셨지요(가톨릭 교리서, 555항과 568항 참조). 그리고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도 이미 예고하셨습니다(마태 16,21; 마르 8,31; 루카 9,22 참조). 모세와 엘리야의 존재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두 사람 모두 “산 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과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수난을 이미 예언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555항)” 또한 복음서에 따르면, 초막 셋을 짓겠다며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마태 17,5; 마르 9,7와 루카 9,34-35 참조)”

이 구절을 언급하며,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와 그리스도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교부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나의 종이지만 이는 내 아들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였지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 …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지만, 그들은 너희들처럼 종일 뿐이다. 이는 주님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예로니무스 성인, Commentary on St. Mark’s Gospel,6)”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이 한 번의 명령은 예수님의 신성을 결론짓고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요약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산에서 내려와 언제나 새롭게 ‘그 분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교황 베네덱토 16세 XVI, Jesus of Nazareth, From the Baptism in the Jordan to the Transfiguration, p. 316)”

2. 사론 (Lasaron, [לשרון ], 평야/ 사로나(Sarona)

1) 사론의 위치: 32º 42’ 50. 09” N 35” 28’ 22. 67” E

2) 사론의 특징과 역사

사론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성읍으로 아펙과 함께 언급되고 있으며 성경에 단 한 번 기록된 곳입니다(여호 12, 18). 이곳에 아펙과 함께 언급되 있어서 아펙과 연결하여 추정을 해 볼 수 있지요. 에우제비오 교회 학자는 타보르 산과 갈릴래아 호수 사이에 사로나(Sarona)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사로나를 사론으로 보기에는 그 근거가 약합니다. 사론의 현대 마을 사로나 남쪽에는 유적인 호르밧 사로나(Horbat Sarona)가 갈릴래아 바다로 가는 길의 남쪽에 있으며 아인 사로나(Ein Sarona)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사로나는 13세기의 하마위(Yaqut al-Hamawi)의 기록에 나오며, 1517년에 회교도 인들의 마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875년에 괴랭은 이 마을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1881년 팔레스타인 조사에 의하면 250여명의 회교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1938년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모샤브인 사로나(Sharona)가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사론

  • 여호 12, 7-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르단 건너편 서쪽, 레바논 골짜기에 있는 바알 가드에서 세이르 쪽으로 솟은 할락 산에 이르기까지 그 땅의 임금들을 쳐 죽였는데, 그 임금들은 이러하다. 여호수아가 지파별 구분에 따라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소유지로 나누어 주었는데, 산악 지방, 평원 지대, 아라바, 비탈 지대, 광야, 네겝으로서,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의 땅이다. 그 임금들은 예리코 임금 하나, 베텔 근처 아이 임금 하나….
  • 여호 12, 18: 아펙 임금 하나, 사론 임금 하나

3. 엔 하따 (En Haddah, [עין חדה], 신선한 샘, 텔 엔 하따[Tell en-Haddah])

1) 엔 하따의 위치: 32º 41’ 02. 43” N 35” 29’ 16. 29” E

2) 엔 하따의 특징과 역사

엔 하따는 이사카르 지파에게 지파에게 상속된 성읍이었습니다. 성경에 한 번 언급되고 있지요(여호 19, 21). 엔 하따의 위치는 엔 간님과 벳 파체츠 사이에 있다는 기록 때문에 두 장소의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엔 하따는 일반적으로 텔 엔 하따(Tell en-Haddah)와 같은 장소로 보고 있는데, 그 근거로는 예전에 있었던 마을 엘 하다데(el-Hadatheh)와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하다데 마을은 1596년에 회교도인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괴랭(Victor Gue’rin)은 1875년에 이 마을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1881년의 팔레스타인 조사에 250여명의 회교도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지만, 1998년 경부터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1946년에 설립된 모샤브인 카라르퀴스(Kfar Qish) 주민들이 경작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엔 하따

  • 여호 19, 17-18:네 번째로 이사카르, 곧 씨족별로 나뉜 이사카르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이즈르엘, 크술롯, 수넴,…..
  • 여호 19, 21: 레멧, 엔 간님, 엔 하따, 벳 파체츠가 있다.

4. 벳 파체츠(Beth Pazzez, [בית פצץ ], 분산의 집, 텔 엔 하따[Tel en-Haddah])

1) 벳 파체츠의 위치: 32º 41’ 02. 43” N 35” 29’ 16. 29” E

2) 벳 파체츠의 특징과 역사

벳 파체츠는 즈불룬 지파 동쪽에 있는 이사카르 지파의 영토로써 성경에 한 번 기록되었습니다(여호 19, 21). 벳 파체츠는 엔 간님과 엔 하따 부근에 있었으며 타보르 산 동쪽에 위치합니다. 벳 파체츠는 텔 엔 하따(Tel en-Haddah)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그 근거는 미약하며, 이곳은 엔 하따로 보기도 합니다. 이곳은 요르단 강과 타보르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벳 파체츠

  • 여호 19, 17-21: 네 번째로 이사카르, 곧 씨족별로 나뉜 이사카르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이즈르엘, 크술롯, 수넴, 하파라임, 쉬온, 아나하랏, 라삣, 키스욘, 에베츠, 레멧, 엔 간님, 엔 하따, 벳 파체츠가 있다.

5. 엔 간님2-3(이사카르 Engannim, [עין גנים], 동산의 샘/ 키르벳 베이트 얀[Kh. Beit Jann])

1) 엔 간님2-3의 위치: 32º 42’ 48. 98” N 35” 29’ 43. 25” E

2) 엔 간님2-3의 특징과 역사

엔 간님은 이사카르 지파 영토 안에 있었던 레위인의 성읍입니다(여호 19, 21; 21, 29). 그런데 이사카르의 엔 간님은 이사카르의 영토였지만, 후에 레위 지파인 게르손 자손에게 상속된 성읍 중의 한 곳이 되었지요. 

엔 간님의 추정지로는 세 곳이 됩니다. 하나는 현대 지명인 제닌(Jenin), 또 다른 곳은 올람(Olam)과 세 번째로는 키르벳 베이트 얀(Kh. Beit Jann)이지요. 

이사카르 지파 영토의 북동쪽에 위치하는 나할 사르나(Nahal Sharon)의 입구인 키르벳 아르투사(Kh. Artushah)에서 1.5km 떨어진 평야의 돌출부에 있습니다. 이곳은 베이트 간(Beit Gan) 마을 서쪽에 있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서쪽으로 7km 떨어져 있지요. 이곳에서 지표 조사를 통하여 후기 철기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엔 간님2-3

  • 여호 19, 17-21: 네 번째로 이사카르, 곧 씨족별로 나뉜 이사카르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이즈르엘, 크술롯, 수넴, 하파라임, 쉬온, 아나하랏, 라삣, 키스욘, 에베츠, 레멧, 엔 간님, 엔 하따, 벳 파체츠가 있다.
  • 여호 21, 27-29: 레위인 씨족들 가운데에서 게르손의 자손들에게는, 므나쎄 반쪽 지파에서 살인자의 도피 성읍 바산의 골란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브에스트라와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두 성읍을 내주었다. 이사카르 지파에서는 키스욘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다브랏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야르뭇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엔 간님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네 성읍을 내주었다.

6. 야브느엘2-1(납탈리, Jabneel, [ יבנאל], 하느님께서 세우시다/ 텔 인암 [Tell Yinam])

1) 야브느엘2-1의 위치: 32º 42’ 47. 44” N 35” 30’ 43. 06” E

2) 야브느엘2-1의 특징과 역사

야브느엘은 납탈리 지파의 성읍으로 갈릴래아 지역에 있습니다. 야브느엘2(납탈리)은 아다미 네켑과 라쿰 사이의 요르단 강 가까이에 위치합니다. 야브니엘2로 추정되는 장소가 두 군데가 있는데요. 하나는 키르벳 얌마(Kh. Yamma)와 다른 한 곳은 텔 인암(Tell Yinam)입니다. 야브느엘2의 후보지 두 곳은 현대 야브느엘 마을을 중심으로 키르벳 얌마는 남쪽에 있고, 텔 인암은 동쪽에 있는데, 두 장소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야브느엘(Yavneel) 마을은 1901년에 세워진 오랜된 유다인 공동체로써 2017년에는 4,281명 정도가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오토만 시대에는 엠마(Emma)로 알려진 회교도인들의 마을이었는데요. 1931년에부터는 유다인과 회교도인들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야브느엘 계곡 서쪽 부근에 있으며 예전에 텔 엔 나암(Tell en-Naam)으로 불렸었습니다.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의 토기, 부싯돌, 돌칼이 발굴되었고, 초기, 중기, 후기 청동기와 초기, 후기 철기 시대, 그리고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거주지도 발견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야브느엘2-1

  • 여호 19, 32-34: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7. 야브느엘2-2(키르벳 얌마 [Kh. Yamma])

1) 야브느엘2-2의 위치: 32º 41’ 52. 51” N 35” 30’ 37. 09” E

2) 야브느엘2-2의 특징과 역사

야브느엘과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인 해안 지역에 있는 야브느엘1(유다 지역에 위치; 여호 15, 11)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역의 야브느엘은 역대기 하권 26장 6절의 야브네와는 다른 이름이지만 같은 장소입니다. 야브느엘2(납탈리)은 납탈리 지파에게 상속된 곳으로 갈릴래아 지역에 위치하는데요. 납탈리 지파의 야브느엘은 아다미 네켑과 라쿰 사이의 요르단 강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장소의 후보지로는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키르벳 얌마(Kh. Yamma)와 다른 곳은 텔 인암(Tell Yinam)이지요. 이 두 장소는 현대 야브느엘 마을을 중심으로 키르벳 얌마는 남쪽에 있고, 텔 인암은 동쪽에 있습니다. 두 유적지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현대 야브느엘 마을 남쪽에 있는 큰 유적인 텔 인암의 남동쪽에 있는 유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후기 철기, 페르시아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8. 벳 세메스2-1 (이사카르, Beith Shemesh, [בית שמש ], 태양의 집/ 키르벳 에쉬 삼사위 [Kh. esh-Shamsawi])

1) 벳 세메스2-1의 위치: 32º 41’ 06. 13” N 35” 31’ 21. 22” E

2) 벳 세메스2-1의 특징과 역사

벳 세메스2-1는 이사카르 지파의 경계선에 있는 성읍으로 성경에 한 번 언급되었습니다(여호 19, 22). 벳 세메스2(이사카르)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인 곳이 이스라엘 세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지명에도 나옵니다. 세펠라 지역의 벳 세메스1(여호 15, 10)가 있고, 이사카르의 벳 세메스2는 요르단 강 부근에 위치합니다. 납탈리 지파의 벳 세메스3은 납탈리 지파에게 상속되었지만 벳 아낫과 함께 점령하지 못한 가나안의 요새 성읍이었습니다.

이사카르의 벳 세메스의 위치는 사하추마와 요르단 강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키르벳 에쉬 삼사위(Kh. esh-Shamsawi)와 우베이디야(Ubeidiya)가 있습니다. 고고학자인 아하로니는 키르벳 에쉬 삼사위가 벳 세메스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곳이 벳 세메스로 추정되는 이유는 이름이 비슷해서라고 하는데요. 이곳은 얍느엘 마을의 남쪽 구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벳 세메스2-1

  • 여호 19, 17-22: 네 번째로 이사카르, 곧 씨족별로 나뉜 이사카르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이즈르엘, 크술롯, 수넴, 하파라임, 쉬온, 아나하랏, 라삣, 키스욘, 에베츠, 레멧, 엔 간님, 엔 하따, 벳 파체츠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타보르, 사하추마, 벳 세메스에 닿은 다음,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이렇게 열여섯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9. 아즈놋 타보르 (Aznoth-tabor, [אזנות תבור ], 날카로운 채석장, 키르벳 움 주베일[Kh. Umm-Jubeil])

1) 아즈놋 타보르의 위치: 32º 43’ 41. 43” N 35” 23’ 02. 44” E

2) 아즈놋 타보르의 특징과 역사

아즈놋 타보르는 성경에 한 번 언급된 곳으로 납탈리 지파의 서쪽 경계에 있었던 성읍입니다(여호 19, 34). 이 지역을 기준으로 남쪽은 즈불룬 지파의 영토이고 서쪽은 아세르 지파의 땅입니다. 아즈놋 타보르는 타보르라는 이름 때문에 타보르 산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곳은 키르벳 움 주베일과 같은 장소로 여겨지는데요. 이곳은 조그마한 언덕 위에 있어 주변 전망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고대의 요새 시설 벽의 기초와 깎아 만든 몇 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후기 철기, 로마, 비잔틴 시대의 토기가 발굴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아즈놋 타보르

  • 여호 19, 32-34: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10. 이사카르 지파의 쉬온( 이사카르, Shion, [שיאון ], 폐허, 아윤 에스 샤인[Ayun es-Shain])

1) 쉬온의 위치: 32º 39’ 09. 67” N 35” 30’ 14. 27” E

2) 쉬온의 특징과 역사

시온3은 이사카르 지파의 경계선에 있는 성읍으로 성경에 한 번 기록된 지명입니다(여호 19, 19). 이곳은 하바라임과 아나하랏 부근에 있었는데요. 이사카르 지파의 시온 추정지는 타보르 산의 남동쪽에 있는 키르벳 시린(Kh. Sirin)과 나자렛 동쪽에 있는 아윤 에스 샤인(Hyun es-Shain)입니다. 

시온으로 추정되는 더 높은 장소인 키르벳 시린은 이사카르 영토 안에 있으며 시온과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이사카르의 시온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키르벳 시린에는 팔레스타인 아랍 마을인 시린(Sirin)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로마시대부터 있었으며 가까이에 샘이 있고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에 기원후 7세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주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기원후 1168년 십자군 시대에는 로세린(Loserin)으로 알려졌습니다. 1838년에 에드워드 로빈슨은 이 마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1875년에 괴랭은 4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고, 두 개의 성당 유적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모스크(회교도 사원)으로 바뀌었다고 기록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이 마을은 파괴되었습니다.

3) 성경 속의 쉬온

  • 여호 19, 17-21: 네 번째로 이사카르, 곧 씨족별로 나뉜 이사카르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영토 안에는 이즈르엘, 크술롯, 수넴, 하파라임, 쉬온, 아나하랏, 라삣, 키스욘, 에베츠, 레멧, 엔 간님, 엔 하따, 벳 파체츠가 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