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는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프랑스의 루르드 성지와 함께 3대 성모님 발현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은 묵주의 기도 성모님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던 시대의 배경과 발현 과정 및 그 의미와 함께 성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 1. 파티마 성모님 발현 성지 개요
- 3. 파티마 성모님 발현
- 4.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장소
- 5. 파티마 성모님 발현 시현자들
- 6. 성모님 발현 공인 과정
- 7. 파티마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8. 러시아에 대한 성모님의 예언 메시지
- 9.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의 의미
- 10. 파티마 발현 성지 소개
- 11. 파티마 발현 성지 찾아가는 방법
1. 파티마 성모님 발현 성지 개요
파티마는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 성지, 프랑스의 루르드 성지와 함께 세계 3대 성모님 성지 발현 성지로 매해 40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성지입니다. 파티마 성모님은 묵주기도의 성모님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비밀 메시지로 세 가지 예언을 해 주셔서 전 세계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포르투갈 공화정의 혹독한 박해를 받아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성모님께서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겁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의 가톨릭이 다시 회복되었고,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다시 열렬한 가톨릭 신심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파티마 성지에 교황 비오 6세,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등 여러 교황이 방문했고요.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는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파티마 발현 기념 성당)
2.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의 시대 배경
1900년을 전후해서 포르투갈에 반군주주의와 반종교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제1공화정이 시작되었지요. 새로 세워진 공화국은 왕족, 귀족, 교회를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매도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왕족의 가계를 없애고 귀족이란 칭호도 폐지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등의 공포정치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새 공화국의 첫 번째 방침으로는 종교 지도자를 추방하는 것이었죠. 또한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회를 해산해 버렸습니다. 1911년에서 1916년 사이에 적어도 1만 7천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박해는 1917년까지 지속되어 거의 모든 교회가 문을 닫고 일부만 남아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지요. 포르투갈에 종교는 사라지고 두려움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1916년 포르투갈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가중되었습니다. 이렇게 포르투갈과 가톨릭 교회 모두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1917년 성모님께서 황폐하고 바위투성이인 작은 마을 파티마에 발현하신 것입니다.
‘파티마’는 이슬람 공주의 이름입니다. 12세기 경 포르투갈의 곤잘로 성주는 국토를 회복하기 위해 이슬람국과 전쟁을 하던 중 파티마를 포로로 잡았는데요. 그런데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파티마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곤잘로는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1년 만에 공주는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에 낙담한 성주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도원 원장은 작은 마을에 수도원을 설립해서 곤잘로 수사를 파견했는데요. 그때 파티마의 유해도 새 수도원으로 옮겨졌답니다. 그래서 수도원이 생긴 마을은 파티마 공주의 이름을 따라 ‘파티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극적인 사랑과 화해가 이루어진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겁니다.
3. 파티마 성모님 발현
1) 평화의 천사 발현: 1916년 봄에서 가을까지
성모님께서 발현하시기 1년 전인 1916년에 한 천사가 소년의 모습으로 강렬한 빛과 함께 세 명의 시현자들에게 세 차례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카베수 언덕에서 나타났고요. 두 번째는 루치아네 집 우물에서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마라. 나는 평화의 천사이다. 나와 함께 기도하자.”라고 하며 기도할 내용과 방법을 알려 주었답니다. 세 아이는 천사가 알려준 대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이어서 천사는 “기도하여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은 특별한 자애로 너희를 통해 큰 일을 하시려고 생각하고 계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성모님의 발현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 주었지요.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났을 때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성찬례를 하며 추치아에게는 성체를,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에게는 성혈을 영해 준 다음 기도를 바치고는 사라졌습니다. 세 아이들은 천사와의 만남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 속에만 간직했다고 합니다.
2) 첫 번째 발현: 1917년 5월 13일
1917년 5월 13일 일요일에 3 명의 아이들, 즉 10세 루치아 두스 산투스(Lucia dos Santos)와 그의 사촌 9세 프란치스코 마르투(Marto), 7세였던 히야친타 마르투(Jacinta Marto)가 양을 치면서 점심을 먹고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지요. 코바 다 이리아라는 목초지에 갑자기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섬광미 내리치며 작은 참나무 위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고 나이는 열여덟 살 정도로 보였는데요. 그분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인은 흰색 겉옷에 두 발까지 내려오는 흰색 베일을 두르고, 합장한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습니다. 여인께서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자 루치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세요?” 이 물음에 여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단다. 나는 너희가 매달 13일 이 시간에 여기로 나와 줄 것을 부탁한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중에 말해 주겠다.” 그러고 여인께서는 “너희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참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요. 여인은 전쟁의 종말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하늘로 사라지셨습니다.
3) 두 번째 발현: 1917년 6월 13일
여인의 발현이 동네에 알려져 20~30여 명의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루치아의 목소리만 들렸고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루치아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시나요?”라고 물어보았어요. 성모님께서는 “다음 달 13일에 다시 여기로 오너라. 날마다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읽고 쓸 줄 알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치아는 “저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은 “그래. 머지않아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를 데리러 오겠다. 그러나 너는 오랫동안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너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더 알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루치아는 물었어요. “그럼 저 혼자만 남게 되나요?” 그러자 “걱정하지 마라. 나는 절대로 너를 버러두지 않을 것이고 너를 하느님께 인도하겠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루치아가 주로 질문하고 성모님께서 대답을 하시는 대화가 15분 정도 이어진 후에 성모님은 동쪽 하늘로 사라지셨답니다.
4) 세 번째 발현: 1917년 7월 13일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는 소식이 널리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대략 5~6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자 루치아가 지시한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람들의 요청대로 루치아는 성모님께 발현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청했습니다. “10월에는 내 이름과 내 희망을 알리겠다. 그리고 누구나 너희들의 말을 믿도록 큰 기적을 행할 것이다. 너희들은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끔찍한 지옥을 모습을 보여주시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당부하셨지요. 또는 인류의 운명과 직접 연관되는 세 가지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비밀과 두 번째 비밀은 교회의 요청대로 1941년 8월에 집필된 루치아의 세 번째 회고록에서 알려졌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비밀 내용을 알아볼까요?
i) 첫 번째 비밀: 지옥에 대한 환시
너희들은 가난한 죄인들의 영혼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하느님께서 나의 성심에 대한 헌신을 세상에 세우기를 바라시면서 그게 이루어진다면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평화가 오면 전쟁(제3차 세계대전)은 끝날 것이다.
ii) 두 번째 비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만일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하느님을 거역한다면 다음 교황(비오 11세) 때에 더 나쁜 일(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내 요청에 주의를 한다면 러시아의 개종과 평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가 그 잘못된 사상을 세상에 퍼뜨려 전쟁을 일으키고 교회를 박해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교황은 러시아를 나에게 봉헌할 것이고, 러시아는 회심할 것이며 평화의 시대가 허락될 것이다.
5) 다섯 번째 발현: 1917년 8월 19일
성모님의 발현과 메시지 내용이 알려지면서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파티마를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순례자들이 갑자기 늘어나자 지방 정부 행정관은 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포르투갈을 분열시키는 정치적인 술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1917년 8월 13일에 순례를 금지시켰습니다. 당국은 아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체포해 감금하고 심문했습니다. 끓는 기름 가마 속에 산 채로 한 명씩 집어넣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3명의 어린 시현자들은 끝까지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코바 다 이리아에는 1만 8천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었지만 아이들이 없었기에 발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17년 8월 19일에 성모님은 감되었다가 풀려난 세 아이에게 발리뉴스에 있는 목초지에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라. 그리고 모은 봉헌금을 묵주기도 축일을 축하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경당 건축비로 사용하여라. 다음 달 13일에도 코바 다 이리아로 와야 한다.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 하늘로 사라지셨습니다.
6) 여섯 번째 발현: 1917년 9월 13일
추수기였으므로 바쁜 와중에도 거의 3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발현하신 성모님은 전쟁이 빨리 끝나도록 묵주기도를 계속해 바치고 봉헌금의 반을 성당 건축비용으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다음 달 13일에는 큰 기적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요. 루치아가 성모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했습니다.
7) 일곱 번째 발현: 1917년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태양의 기적)
이날은 오전부터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땅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에 흠뻑 젖어 심한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고 합니다. 코바 다 이리아에는 신자와 일반 사람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포함해 약 7만 여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기도하면서 매 단마다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정오가 지나갔을 때 루치아가 “빛, 저곳에 … 그분이 보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향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작은 구름이 아이들 주변에서 피어나 공중으로 5~6 m까지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나는 묵주기도의 성모님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죄를 통회하고 보속하기를 권하러 왔다. 그리고 나의 영광을 위하여 이곳에 성당을 짓기 바란다. 인류가 마음을 새롭게 하고 회개한다면 머지않아 전쟁은 끝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아이들과 작별을 하시고 태양을 가리키면서 그쪽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루치아는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태양을 보십시오!” 비가 그치고 새벽부터 하늘을 덮고 있었던 구름도 사라지고 태양이 은으로 된 원반같이 하늘 한가운데에 나타났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지요. 태양이 불수레처럼 회전하면서 황색, 홍색, 청색, 자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광선을 발사했습니다. 지상의 모든 것이 이 광선의 색깔로 물들었습니다.
잠시 후에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움직이다가 땅 위의 군중들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지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태양의 회전은 10분 동안 계속 되었어요.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외쳤습니다. “이건 기적이다. 기적이야!”,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조금 전까지도 강하게 쏟아졌던 비로 옷이 흠뻑 젖었었는데요. 강한 열기를 받은 듯 순식간에 말라 있었고, 진흙 바닥도 어느새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40km 떨어진 주변 마을에서도 목격되었습니다. 이때 천문학자들은 태양 관측을 했을 때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특별한 기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비로우신 성모님께서 파티마의 세 아이들을 통해 당신이 전해주실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장소
파티마는 1917년에 약 3천 5백여 명의 농부들이 살고 있던 작은 마을입니다. 포르투갈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초라한 마을이었던 것이죠. 이 지역의 땅은 주로 자갈밭에 바위투성이였습니다. 큰 샘도 없고 개천도 없어 농사를 짓기에도 어려웠지요. 그나마 양을 칠 수 있어 유일한 소득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포르투갈에 1916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이 작은 마을의 경제적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1858년 프랑스의 루르드, 1879년 아일랜드의 노크에서 하셨던 것처럼 성모님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미래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곳인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총 여섯 번의 발현 중 다섯 번은 코바 다 이리아에서, 한 번은 발리뉴스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코바 다 이리아의 지형은 움푹 파이고 경사져서 양을 주로 방목하던 곳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작은 참나무 위에서 발현하셨는데요. 오늘날 그 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실 때마다, 순례자들이 몰려와 그 나무의 가지를 너도 나도 잘라가서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것이죠. 이제 그 나무가 있던 자리에 성모님의 발현을 기념하는 경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세 아이들에게 나타난 천사)
발현 기념 경당 중앙에는 파티마 성모상이 유리관 속에 모셔져 있는데요. 바로 그 자리가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참나무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발현 기념 경당에서는 주로 순례자들을 위해 묵주기도 봉헌이 진행됩니다. 특히 매일 밤 9시 30분에 하는 봉헌과 그 뒤에 이어지는 촛불 행진은 매우 경건하고 성모님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방문할 때 꼭 참여하여 체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발현 기념 성당에 모셔진 파티마 성모상)
5. 파티마 성모님 발현 시현자들
루치아는 1907년 5월에 파티마의 가난한 농부의 집 1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다른 시현자인 프란치스코는 1908년, 히야친타는 1910년에 11명의 자녀들 중 열 번째와 열한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는 친척 관계였지요. 그들은 가까이 살고 있어서 수시로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티마에서는 나이가 들어 일을 하게 되면 그다음 아이가 양 떼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루치아가 양 떼를 맡게 되었을 때,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부모를 졸라 루치아와 함께 양 떼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 발현 후,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바치라는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하루 종일 허리에 굵은 밧줄을 묶고 더운 날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점심도 굶으며 그대신 묵주기도를 바치며 기도했습니다.
(성모님 발현 목격한 시현자들)
1) 루치아 두스 산투스
성모님 발현을 목격하고 난 이후 루치아는 어머니와 언니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루치아가 성모님 발현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루치아에게 사실을 고백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밭이 다 망가져 농사를 망쳤다고 하면서 루치아에게 배상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세 명의 시현자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루치아는 다른 시현자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서 박해와 모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1917년 10월 13일 성모님이 발현하시고 태양의 기적이 함께 일어나 어느 정도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어요. 하지만 루지아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늘 똑같은 질문들과 교묘하고 무례한 말들, 그리고 뻔뻔스러운 부탁으로 시달려야 했지요. 정부에서 파견된 조사원은 루치아의 증언을 무조건 거짓말로 치부했습니다. 또한 사실만을 말하라고 다그치며 협박을 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미리 예견하셨지요. 그래서 시현자들에게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당부를 하셨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가 선종하고 나서, 레이리아 교구의 새로운 주교였던 조제 알베스 코헤이아 다 실바는 루치아를 군중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1921년에 루치아를 비밀스럽게 성 도로테아 수녀회의 기숙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는 루치아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와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에 대해서도 함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뒤에 루치아는 1925년 스페인에 있는 폰테베드라에 있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에 입회해 지원자로 수련을 받았습니다. 1926년 투이로 옮겨 수련기에 들어가, 같은 곳에서 1928년 수도서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934년 종신서원을 했지요. 그때까지 루치아는 13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주교의 지시대로 따랐습니다. 그녀는 첫 회고록을 1935년 12월에 쓰기 시작해 1993년 3월까지 여섯 권의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1948년 3월에 루치아는 교황 비오 12세의 허락을 받아 포르투갈 코임브라에 있는 카르멜 수도원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기도와 속죄의 삶을 살아 가다가, 2005년 2월 13일 98세에 선종하였습니다. 루치아 수녀의 유해는 2006년 2월 파티마로 옮겨져 묵주기도(로사리오)의 성모 대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2)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도 루치아처럼 부모에게 성모님 발현에 대한 추궁을 당하고 여러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머지않아 죽는다는 것과 천국에 가려면 자주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하신 성모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그분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두 소녀처럼 성모님께 충실하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했는데요.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조차도 듣지 못할 만큼 집중하며 열심으로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첫영성체와 병자성사를 동시에 받고, 은총 속에 1919년 4월 4일 11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히야친타도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스페인 독감과 합병증으로 1920년 2월 20일 밤에 10세의 나이로 선종했는데요. 그녀는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가족도 없고 병자성자도 받지 못한채 선종했습니다.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들을 가경자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5월 13일에는 파티마를 방문해 직접 시복했습니다. 히야친타는 이때까지 순교하지 않고 복자품에 오르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7년 파티마를 방문해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고 남매를 시성했습니다. 그리고 루치아 수녀도 포르투갈 교회에 의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6. 성모님 발현 공인 과정
성모님의 발현 이후 포르투갈 전 국민은 파티마를 주목했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파티마를 순례하고, 냉담자와 신앙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의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1918년 2월 포르투갈의 주교들이 리스본에 모여 교황 베네딕도 15세에게 포르투갈의 가톨릭 교세가 확장된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에 교황은 같은 해 4월에 친서로 답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에는 파티마가 나오고, 포르투갈 국민에게 성모님의 자비가 내린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8년 파티마가 소속되어 있었던 레이리아 교구는 다시 회복되었답니다. 1919년 10월 13일에는 사망 선고를 받았던 환자가 파티마로 순례를 온 후에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 소식은 포르투갈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가톨릭 신자들 모두가 교회 당국에게 공식적으로 성명서를 내도록 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것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8월 포르투갈 신학교의 조제 알베스 토헤이아 다 실바 교수가 레이리아 교구의 주교로 부임했습니다. 1922년 5월 성모님 발현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1930년 10월 13일 문서를 통해 “발현의 중요성과 믿음의 가치를 선언하고 파티마 성모님의 공경을 공식적으로 허락한다.”라고 선언하고는 성모님 발현을 공인했습니다. 같은해인 1930년 순례자들에게 교황의 대사가 주어지면서 파티마 성모님에 대한 공경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5월 13일을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특히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5월 13일과 마지막 발현하신 10월 13일에 파티마의 순례는 최절정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이후에 파티마는 멕시코의 과달루페,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게 세계 3대 성지 중의 한 곳으로 인정받았지요. 매해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고, 여러 교황들이 파티마를 순방하고 축복하였습니다.
1) 1946년 5월 13일 교황 12게가 파티마 성모님께 왕관을 봉헌했습니다.
2) 1967년 5월 13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발현 50주년을 기념해 파티마를 순방하였고, 루치아 수녀와도 면담을 했습니다.
3) 교황 바오로 2세는 1982년, 1991년, 그리고 2000년 세 차례 순방하였습니다.
4) 201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시복 10주년을 기념해 순방했습니다.
7. 파티마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7월 13일에 성모님께서 알려 주신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에 의해 문서로 작성되고 밀봉되어 교황청에 보내졌습니다. 그러고는 83년 동안 오로지 교황만 열람하고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1960년 루치아는 “1960년에는 성모님의 비밀 메시지가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라며 세 번째 비밀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교황청은 그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고 1960년이 지나갔지요. 그러자 비밀 메시지에 대한 온갖 억측이 쏟아졌습니다.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찾아가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던 세 번째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파티마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 루치아 수녀가 10분간 면담을 한 후에 거행된 미사가 끝나자 세 번째 비밀 메시지를 발표했는데요.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그 메시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향한 저격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추기경은 마지막 환시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하얀 옷차림의 주교가 십자가를 향해 순교자들의 시신 사이로 걸어 가다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것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황이 지난 1981년 파티마 성모님이 발현하신 날짜인 5월 13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광장에서 피격을 받은 사건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교황은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것이 모두 성모님의 도우심 덕분이었다고 했지요. 교황은 피격을 당한 직후 병원 침대에서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이 담긴 봉인 봉투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교황은 그 즉시 티 없이 깨끗한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의탁 기도문>이란 이름을 붙인 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파티마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 앞에는 파티마와 인연이 매우 깊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상이 있는데요. 그 기단에는 교황의 행적과 관련한 주요 일자와 활동에 대한 설명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단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활동 주요 일자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출생하다.
2) 1978년 10월 16일: 교황에 즉위하다.
3) 1981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의 내용과 같이 피격을 받다.
4) 1982년 5월 13일: 1981년 성모님의 도움으로 피격에서 목숨을 구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파티마를 방문하다.
5) 1984년 3월 2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전 세계에서 모인 주교들과 함께 파티마 성모님께 온 인류와 모든 나라를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하다.
6) 1991년 5월 13일: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첫 번째로 발현하신 5월 13일에 파티마를 다시 방문하다. 1991년은 러시아 공산당이 붕괴한 해이다. 파티마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7) 2000년 5월 13일: 21세기 첫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기념일에 다시 파티마를 방문하여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를 시복하다.
8) 2005년 4월 2일: 로마에서 선종하다.
8. 러시아에 대한 성모님의 예언 메시지
성모님께서는 1917년 7월 13일 세 번째로 발현하셔서 러시아에 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러시아가 전 세계에 잘못된 사상을 퍼뜨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교회를 박해할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어느 누구도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이 일어나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고 러시아 제국은 사라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2개월 뒤에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6개월 후인 1917년 11월 7일 레닌을 중심으로 볼셰비키(구 소련 공산당의 또 다른 이름) 세력에 의한 무장봉기로 러시아 공화국은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레닌은 국내의 정적들을 진압하고 1922년 12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인 소련(소비에트연방)을 결성했습니다. 레닌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초 공산주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 세계에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정책은 레닌이 죽은 뒤에도 소련의 근본적인 정책으로 계속 이어져 갔습니다. 파티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비밀이 출간된 1942년에도 서구권은 소련 공산당이 전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요.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소련의 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대숙청을 했습니다. 자신의 독재 정권을 확립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자 연합국에게 보상을 요구했는데요. 그결과로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을 편입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이 국가들에 공산주의 제국을 세우고 실현하려는 목적을 달성해 나갔습니다.
소련 공산당은 1917년부터 1931년까지 14년 동안 소련에 있는 가톨릭교회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파괴를 자행했는데요. 이 기간 동안 681개의 교구와 980개의 성당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160만 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살해되거나, 체포 또는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1954년부터 이 동구권 국가들을 합병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에 15,700여 명의 사제들에게 다른 직업을 갖도록 강요했습니다. 또한 3,334개의 신학교가 해체되었고, 1,600여 개의 수도원이 국유화되었으며, 31,779개의 교회가 폐쇄되었습니다. 그리고 레닌이 7년간 집권할 때 2천만 명, 스탈린이 30년간 통치할 때 는 4천 6백만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볼 때, 성모님께서 왜 그렇게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대해 걱정하셨는지를 알 수 있지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자유화 물결이 일어나고,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었습니다. 1991년 엘친이 급진적인 개혁을 하고, 마침내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소련은 해체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오기 전인 1952년 7월 7일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 교서를 통하여 러시아와 그 백성을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파티마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9.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의 의미
코바 다 이리아에서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은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습니다.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가톨릭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민중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성모님 발현 이후인 1918년 11월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1920년 5월 13일 최초의 파티마 성모상 축성식이 거행되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동원된 군대가 순례자들과 군중들에게 밀려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1922년에 정부가 금지를 했는데도 6만 여명의 순례자들이 국민 시위 운동을 성공리에 마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포르투갈 가톨릭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던 제1 공화정도 1926년 5월 28일 군사 쿠데타로 사라졌지요.
1929년 5월 포르투갈의 새로운 대통령 ㅏ르모나는 장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와 함께 파티마를 순례하고 나서 포르투갈 전 국민과 정부를 묵주기도의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1930년 5월 13일에 성모님 발현 13주년 (성모님 발현하신 날이 13일이어서 숫자를 중요시 함)에는 3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에는 1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 앞에서 레이리아 교구 주교가 발현을 공인했습니다. 묵주기도 신심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포르투갈의 주교를 비롯해 온 국민들은 1938년 파티마 성모님께 드리는 대규모 감사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인 1940년에는 포르투갈과 로마 교황청이 우호조약을 맺으며 당당하게 포르투갈의 가톨릭이 회복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전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신심을 회복하는 방향을 다시금 제시해 주셨습니다. 평화를 위해 날마다 묵주기도를 봉헌하라는 메시지와 주님을 위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야 일정 부분의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의미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존 레퍼트는 1946년에 카르멜 수도원에 있는 루치아 수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는 루치아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공산주의가 회개하고 세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우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성모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루치아 수녀는 ”매일 자신의 모든 의무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그 봉헌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해퍼트는 즉시 루치아 수녀의 도움을 받고, 레이리아 교구 주교의 승낙을 받고 푸른 군대(Blue Army)를 창설했습니다. 푸른 군대는 파티마에서 세계 사도직이라고도 불리지요.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에 따라 복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키며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 파티마 발현 성지 소개
파티마 성모님 발현 성지는 대성당과 경당 등이 있는 중심 성지와 시현자들의 생가와 발리뉴스가 있는 시현자 성지, 그리고 교구 성당이 있는 성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중심 성지는 파티마 버스터미널에서 거리가 400m 정도라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시현자 성지는 동쪽으로 3km 떨어져 있고, 교구 성당은 4km 정도 더 떨어져 있습니다. 우선 중심 성지에는 대로변에 원형 건축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성지 안으로 들어가면 발현 기념 경당과 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 관련 시설들과 성상이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발현 기념 성당까지는 참회의 길이 놓여 있는데요. 이 길은 무릎 걸음으로 가면서 참회의 기도를 바치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여 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걷습니다.
성지의 맨 안쪽에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묵주기도의 성모대성당은 1953년 10월 13일에 봉헌되었는데요. 이 성당은 1954년 대성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성당 전면에는 64m 높이의 첨탑이 있고,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파티마 발현 내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단 좌우측에는 시현자 3명의 묘지도 있습니다. 1928년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며 대규모 광장도 같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광장은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07년 10월 12일에는 파티마 발현 90주년을 기념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이 봉헌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성당입니다. 순례자들이 전액 기부해 2004년 6월에 착공하였고, 총 공사비가 8천만 유로였다고 합니다. 원형의 외관을 하고 있는 이 대성당의 크기는 길이 95m, 너비 115m, 높이 20m가 됩니다. 수용 규모는 약 8천 5백석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봉헌한 초석은 성 베드로의 묘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때도 사용되었던 대리석 조각이랍니다. 입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묵주가 걸려 있는데요. 이는 묵주기도의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 주위에는 파티마를 세 번이나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46년 파티마 성모상의 대관식에 대한 라디오로 메시지를 낸 교황 비오 12세, 1967년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념하여 파티마를 교황 방문한 바오로 6세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광장 주변에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성당, 베를린 장벽 전시관 등이 있습니다. 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 회랑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높은 기둥 위에 예수성심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성지이지만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재림을 위한 과정이니 당연히 예수성심상이 성지 한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시현자 성지로 가면 카베수 언덕에 평화의 천사가 성체와 성작을 들고 있고 그 앞에서 세 시현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모습의 성상이 있습니다. 이 근처 가까운 곳에는 시현자들이 감금 당한 후 풀려났을 때 성모님께서 네 번쩨로 발현하신 발리뉴스가 있습니다. 또한 파티마 성모상을 모신 발다키노도 거기에 있습니다. 큰 길에서부터 발리뉴스아 카베수까지 십자가의 길이 이어져 있으므로 기도와 묵상을 하며 걸어서 평화의 천사와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장소들을 둘러 볼 수 있습니다. 발리뉴스에서 500m 떨어진 거리에는 세 시현자들의 생가가 있습니다. 루치아의 생가와 프란치스코, 친야친타의 생가는 서로 200m 떨어져 있는데요. 시현자들의 침대 등 당시의 모습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어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루치아 생가 근처에는 세 시현자들과 천사의 성상이 세워져 있어 천사가 나타난 우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교구 성당으로 이동하면 시현자들이 세례받은 곳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11. 파티마 발현 성지 찾아가는 방법
파티마 성모님 발현 성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편리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역(Jardim Zoologico)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버스터미널(Terminal Rodoviario Sete Rios.)이 위치해 있습니다. 파티마는 버스의 종착지가 아니고 경유지이기 때문에 중간에 내려야 하지요. 파티마 버스터미널은 성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서 성지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지를 걸어서 순례하기에는 쉽지 않지요. 그래서 꼬마 기차를 이용하면 대성당이 있는 중심 성지뿐만 아니라 세 시현자들의 생가와 성모님께서 네 번째로 발현하신 발리뉴스와 교구 성당까지 모두 돌아 볼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는 Sanctuary of Our Lady of Fatima로 검색해 찾아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