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콕/ 아다마/ 카나1-1/ 헬렙/아다미 네켑 (이스라엘 북부 하부 갈릴래아의 카나 지역 1)

이스라엘 북부 하부 갈릴래아 카나 지역 지도

(이스라엘 북부 하부 갈릴레아 카나 지역의 후콕, 아다마, 카나1-1, 헬렙, 아다미 네켑 지역 지도)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인 후콕, 아다마, 크파르 칸나, 헬렙, 그리고 아다미 네켑은 하부 갈릴래아의 카나 지역에 위치합니다. 이 각 고을들의 특징과 역사 및 성경 속에 등장하는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순서



1. 후콕(Hukkok, [חוקק], 제정된/ 야쿡[Yaquq])

1) 후콕의 위치: 32º 53’ 07. 19” N 35” 28’ 47. 92” E

2) 후콕의 특징과 역사

납탈리 지파의 서쪽 경계에 있었던 납탈리 지파에 속했던 후콕은 즈불룬 지파와 아세르 지파 경계선에 있었던 성읍이었습니다. 후콕은 아즈놋 타보르 옆에 있었으며 요르단 강과 가까운 지역에 위치했습니다(여호 19, 34). 후콕은 일반적으로 아랍 마을이었던 야쿡(Yaquq)과 같은 장소로 여겨졌으며, 1968년 이후에는 이스라엘 군인 훈련소로 사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고대 마을이 있었던 야쿡은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입니다. 야쿡은 갈릴레아 바다에서 서쪽으로 약 9km 떨어진 나할 훅콕(Nahal Hukkok) 옆의 구릉 지대에 있으며, 가까운 곳에 고대 거주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3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훅콕 키부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을이나 강이나 산의 이름을 거의 성경 지명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까운 곳에 성경의 장소가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지요. 후콕을 훅콕과 같은 장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장소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3) 성경 속의 후콕

  • 여호 19, 32-34: 여섯 번째로, 씨족별로 나뉜 납탈리의 자손들을 위한 제비가 나왔다.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2. 아다마(Adamah, [אדמה ], 땅/ 칸 하틴(Qarn-hattin)

1) 아다마의 위치: 32º 47’ 57. 37” N 35” 27’ 34. 06” E

2) 아다마의 특징과 역사

납탈리 지파가 상속받은 요새로 된 성읍인 아다마는 칸 하틴(Qarn-hattin)과 같은 장소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여호 19, 36). 칸 하틴은 해변의 길로 통과하며 상부 갈릴래아와 하부 갈릴래아로 통하는 간선도로와 지중해와 요르단 계곡으로 가는 간선도로가 지나가는 중요한 지역에 있지요. 이 장소의 지형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천연 요새로 적합한 둥근 언덕입니다. 

이곳은 화산 활동에 의하여 형성된 해발 326m의 언덕이며 갈릴래아 호수에서 서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187년 7월 4일에 십자군과 살라딘의 이슬람 군대가 싸웠던 힛틴 전투(Battle of Hittin)가 벌어진 ‘힛틴의 뿔(Horn of Hittin)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석동기와 청동기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가나안 시대의 성읍이 존재했으므로 납탈리 지파의 성읍이었던 시팀(여호 19, 35)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크파르 힛틴(Kfar Hittin)으로, 로마 시대에는 크파르 힛타야(Kfar Hittaya)로 알려졌으며 기원후 4세기에는 유다인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1838년에 에드워드 로빈슨은 돌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라고 기록했으며, 1945년 이후에는 아랍 마을었다가, 1950년대에 크파르 제이팀(Kfar Zeitum)이라는 모샤브가 설립되었지요. 크파르 제이팀에서 동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에는 유다인 정착촌 아르벨(Arbel)도 힛틴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동쪽으로 약 3km 정도에 가면 1936년에 설립된 크파르 힛틴(Kfar Hittin)이라는 모샤브가 있습니다.

3) 성경 속의 아다마

  • 여호 19, 36-39: 그 경계는 다시 아즈놋 타보르를 향하여 서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후콕으로 나간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즈불룬에 닿고 서쪽으로는 아세르, 또 해 뜨는 쪽으로는 요르단의 여후다에 닿는다. 그리고 요새 성읍은 치띰, 체르, 함맛, 라캇, 킨네렛, 아다마, 라마, 하초르, 케데스, 에드레이, 엔 하초르, 이르온, 믹달 엘, 호렘, 벳 아낫, 벳 세메스, 이렇게 열아홉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이것이 납탈리 자손 지파가 씨족별 상속 재산으로 받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3. 카나1-1 (크파르 칸나(Kfar Kanna)

(성경 속의 카나로 알려진 크파르 칸나 마을의 혼인잔치 기념 성당)

1) 크파르 칸나의 위치: 32º 44’ 49. 46” N 35” 20’ 18. 56” E

2) 크파르 칸나의 특징과 역사

크파르 칸나는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보여주신 곳인 카나(갈릴레아)는 갈릴래아에 위치하고 있어 갈릴래아 카나(요한 2, 1)라고 불렸습니다. 이곳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 중 나타나엘의 고향으로 나타나엘은 갈릴래아 카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요한 1, 43-51; 21, 2). 예수님은 이곳에서 카파르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의 병을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요한 4, 46-54). 성경에는 ‘카나’라는 장소가 세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갈릴래아의 카나, 아세르 지파의 카나와 에프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 사이 경계선이었던 카나(Kanah) 시내(여호 16, 8; 17, 9)가 있습니다. 

갈리레아의 카나로 추정되는 장소는 두 곳이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성당에 관한 증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증언들에 의하면 물동이 한두 개가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그리고 마을에는 샘이 있었다고 하네요. 초창기 증언들 가운데 하나는 6세기에 기록되었지요. 세포리스-디오카이사리에서 출발한 무명의 순례자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5킬로미터 정도 지나 우리는 주님의 혼인 잔치에 참석했던 카나에 도착했다. … 그곳에는 여전히 물동이 두 개가 있었다. 물동이 하나에는 물을 채웠고, 다른 물동이에서는 포도주를 따라냈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가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축복의 샘에서 몸을 씼었다(Itinerarium Antonini Piacentini, 4 (CCL. 175.130).”

 나자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지점에 있으며 고고학적인 증거는 다소 부족하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승 때문에 지지를 받고 있지요. 이곳은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로 가는 길에 있어서 갈릴래아 호수로 가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방문하기 쉬운 곳이어서 카나로 정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곳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순례 장소가 되었습니다. 샘으로 식수를 해결했던 촌락은 적어도 기원전 2,3세기 무렵의 것이라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모후인 헬레나 성녀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당 위에 다시 건축된 성당 유적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지하 방을 발견했습니다. 1641년에 프란치스코 수사들이 그 마을에 정착했지요. 그들은 유적지 복구를 위해 협상하고 노력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879년이 되어서야 복구가 시행되었다고 하네요. 1880년에 작은 성당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후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증축되었습니다.

가톨릭 성당 가까운 곳에그리스 정교회의 성당이 있습니다. 가톨릭의 혼인 잔치 기념 성당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사도 바르톨로메오 기념 경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마믈룩 시대까지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카나 샘(Hanna Spring) 가까이의 발굴을 통해 초기 석동기 시대 유적이 있는 초기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요. 이는 성벽을 갖춘 요새 성읍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카나는 아마르나 서간에 언급된 성읍이며, 요세푸스도 이 고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881년 팔레스타인 조사에 의하면 200여명의 그리스도교인들과 200여면의 회교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후 1945년에 503명의 그리스도교인들과 672명의 회교도인들이 거주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교인들과 회교도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입니다. 

3) 성경 속의 카나

  • 요한 2,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 요한 1, 43-51: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요한 21,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 요한 4, 46-54: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4. 헬렙 (Heleph, [ חלף], 바꾸다/ 키르벳 이르바다(kh. ‘Irbadah)

1) 헬렙의 위치: 32º 43’ 24. 86” N 35” 24’ 48. 76” E

2) 헬렙의 특징과 역사

납탈리 지파 영토의 남쪽 경계에 위치했던 헬렙은 성경에 한 번 언급된 곳입니다(여호 19, 33). 이곳은 납탈리 지파의 경계가 시작되는 중요한 성읍이었지요. 헬렙은 키르벳 이르바다(kh. ‘Irbadah)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이곳은 타보르 산에서 4km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직사각형 건물 유적이 발견되었고 지표 조사를 통하여 후기 철기, 헬라, 비잔틴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도로와 남북으로 가는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오스만 터어키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대상들의 숙소로 이용되던 유적(Kh, et-Tuggar)이 있습니다. 이곳은 1944년에 설립된 키부츠 베이트 케세트(Beit Keshet)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고 1878년에 시작된 크파르 카마(Kfar Kama)에서 서쪽으로 2km 정도되는 거리에 있지요. 이곳에서 기원전 9-8세기의 토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3) 성격 속의 헬렙

  • 여호 19, 33: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5. 아다미 네켑(Adami-Nekeb, [אדמי הנקב ], 좁은 길의 붉은 곳/ 키르벳 엣 텔[Kh. et-Tell]) 

1) 아다미 네켑의 위치: 32º 44’ 56. 57” N 35” 27’ 33. 61” E

2) 아다미 네켑의 특징과 역사

아다미 네켑은 성경에 한 번 기록된 성읍으로 납탈리 지파의 남서쪽 경계에 있었던 곳입니다(여호 19, 33). 아다미 네켑은 갈릴래아 호수와 타보르 산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다미 네켑의 아담은 ‘사람’이나 ‘땅’이란 뜻이고, 네켑은 ‘관통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입니다. 아다미 네켑은 키르벳 엣 텔(Kh. et-Tell)로 추정되기도 하고, 또는 키르벳 에드 다미예(Kh. ed-Damiyeh)로 보기도 합니다. 키르벳 엣 텔과 키르벳 에드 다미예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적이지요. 그런데 키르벳 엣 텔이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텔 아다미(Tell Adami)라고 부르기도 하며, 아다미 계곡(Nahal Adami)의 북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1949년에 설립된 모샤브 스데 일란(See Ilan)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3) 성경 속의 아다미 네켑

  • 여호 19, 33: 그들의 경계는 헬렙과 차아난님 참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다미 네켑과 야브느엘을 지나 라쿰까지 다다랐다가 그 끝이 요르단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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